쪼코파이

새로운 공간, 관계를 대할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나요?

by 서가지현

“나는 은경아라고 해.”


중학교 2학년 첫날입니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아이들. 새 학기마다 늘 그렇듯 머리도, 입도 긴장으로 멈춰 있었습니다. 큰 소리로 다가오는 인사에 사고도, 눈도, 손도, 목소리도 삐걱거리기만 했습니다. 끝내 경아의 인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나한테 왜 그래.’


나는 새로운 공간과 사람을 대할 때 긴장도와 경계가 높은 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확실한 대문자 ‘I’이지요. 하지만 반전!한 학기 동안 탐색을 마치고, 2학기가 되면 꼭 반장을 맡곤 했습니다. 낯선 순간에는 움츠러들었지만, 익숙해지면 또 다른 자아를 꺼낸 듯 살았습니다. 완벽한 E로요. 돌아 생각하니 가히 지킬 앤 하이드 수준.


성장하며 E의 성향이 강화된 건 ‘쪼코’라는 별명이 생긴 후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얻은 이름인데, 원래는 ‘쪼코파이’였다가 줄여서 ‘쪼코’가 되었지요. 까맣고, 동그랗고, 작고, 귀여운 이미지를 담겠다며 선배들이 붙여 준 별명입니다. 이후에는 쪼코누나, 쪼코 언니, 쪼코 선생님으로 확장되며 저를 부르는 친근한 호칭이 되었습니다.


쪼코 이전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별명을 붙이고 싶어했습니다. 깜둥이, 깜치, 시커먼스 등. 그래요. 나는 동양인치고 까맣습니다. 이 별명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생득적 조건에 비하와 조롱을 담은 겁니다.

참 시커멓네! 한국인이 맞니? 탄 게 아니라 본래 그렇다는 거지? 속 살도 시커멓니? 손바닥은 하얗구나! 어마나, 경계가 이리 선명하다니!


불쾌합니다. 어렸을 땐 그 불쾌함을 설명하고 대응할 방법을 몰라 울었어요. 대충 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울었습니다. 해석하자면 I인 내가 가진 최선의 표현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어른들은 머쓱해했고, 아이들은 사과했습니다.


어디에나 피부색에 대해 ‘기어이’ 한마디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쪼코’는 의도없는 악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까지만. 당신이 내 피부색을 언어화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쪼코’라는 별칭은 상대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아무리 의도가 없더라도 무례가 될 수도 있었던 말을 달콤하게 전환해 주는 장치, 어색할 수 있었던 순간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장치가 되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처음’이라는 낯섦이 덜 무겁게 느껴지고, 오히려 경쾌하게 시작될 때가 많았습니다. ‘쪼코’라는 별칭은 종종 상처를 주는 말 대신 건네줄 수 있는, 관계를 지켜내는 완충제 역할을 합니다.


난 여전히 새로운 공간, 관계에 놓이면 마음도, 몸도 굳습니다. 하지만 ‘쪼코’라는 완충제를 손에 쥐고 긴장을 헤쳐 나가던 경험 덕분에 새로운 공간과 관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설렘과 낯섦을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되어 가고 있다고 자평합니다. I에서 E로 변신할 시간이 여전히 필요하긴 하지만, 내 안의 I와 E를 적절히 운영할 줄 알게 되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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