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모아나

나의 최애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by 서가지현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면 멀미를 합니다. 멀미를 하는 것 같다가 아니라 진짜 멀미를 해요. 이야기가 자꾸 뒤집히고 앞뒤가 안 맞는데 속도감까지 있어 그런 듯합니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휘리릭 읽곤 해요. 그래서인가요. 궁금합니다. 루이스 캐럴이 세팅한 세계의 구석구석이요. 앨리스가 만난 모두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하지만, 겁이 많고, 생각이 많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내가 토끼굴로 뛰어들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습니다.


포기하려다 생각합니다. 나의 최애 그녀와 함께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요.


호기심 많고 행동력이 넘치는 소녀 족장, 모아나요. 모아나는 고향 모투 누이 섬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납니다. 마우이를 만나야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바다 항해는 오래전 멈췄고, 모투 누이 사람들은 섬에서의 정착에 집중해 삶을 꾸려왔거든요. 하지만 모아나는 떠납니다. 두려움과 반대를 호기심과 결단력으로 이겨내죠. 이런 모아나와 함께라면 토끼굴에 뛰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공작부인과 하트 여왕을 만나야겠습니다. 영화에서 거대한 게, 타마토아를 상대로 씩씩하게 맞섰던 장면처럼, 공작부인에게도 “지금 뭐라고요?” 하며 날카로운 일침을 날릴 겁니다. 크로케 경기는 도구와 룰 모두 바꾸거나 다시는 열리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겁니다. 체셔 고양이도 만나야 합니다. 늘 애매한 대답만 던지는 체셔와 대화한다는 건 사실상 언어 퍼즐 맞추기나 다름없을 겁니다. 혼자라면 주저하다 놓쳤을 퍼즐도 모아나와 함께라면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며 끈질기게 물어볼 용기가 생길 것만 같습니다. 혹은 그냥 “됐고요, 방향만 알려주세요” 라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요. 몸이 커지고, 작아지는 알약도 먹어볼 겁니다. 세상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 겁내지 않고 여유롭게 웃으며, 변화를 즐겨보렵니다. 참. 모자 장수의 차 파티에도 꼭 가봐야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기묘한 차 문화와 모아나의 남태평양 바다 감성이 섞이면 어떤 파티가 될까요?


모아나와 함께라면 이상한 나라의 기묘한 세계도, 멀미없이 웃으며 탐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모아나가 나의 최애인 이유입니다.


마음속에 작은 계획을 품고 있습니다. 온라인 책모임 운영자로 시작해, 언젠가는 책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요. 직장과 병행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모아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 바다로 나가봐!” 하며 등을 떠밀었겠지요. 모아나와 함께한 이상한 나라 여행으로 내가 이런 용기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상상’합니다.


이런. 또 ‘생각’만 하고 있군요. 현실의 나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고민만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50대를 앞둔 지금도 이런 상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건, 최애로 모험과 결단의 소녀 모아나를 꼽는다는 건 내가 품고 있는 가능성이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모아나처럼 결단을 선택할 날이 올 지 모른다는, 그리하여 이상한 나라가 펼쳐질 작은 토끼굴 속으로 뛰어 들어갈 날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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