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지금 보고 싶은 존재가 있나요?

by 서가지현

아빠와의 처음은 언제일까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였다는 것은 아빠가 기억하는 시간이고. 나에게 아빠의 처음은 언제일까요? 기억과 사진, 그리고 전해들은 이야기가 뒤섞여 잘 구분이 되지 않아요. 그래도 최대한 집중해 봅니다.


국민학교 2학년때였어요. 분명히 그렇습니다. 학교에 한 살 일찍 들어갔으니 8살 봄. 아빠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좌우로 움직이는 아빠 팔의 기운과 목소리만 기억나요. 일기는 매일 쓰는 거야. 아빠랑 약속할 수 있어? 짜장면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제대로 신이 나있었고요. 덜컥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꼬박 5년. 때로는 칭찬, 때로는 격려, 때로는 불호령 속에서 일기를 썼어요, 그리고 아빠는 그 일기장을 교과서, 노트 등과 함께 결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발사였던 아빠는 주말에 출근을 하시고, 수요일에 쉬셨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계셨어요. 낮잠을 주무시다 일어나서 삼남매에게 300원, 500원 용돈을 주셨지요. 받은 즉시 새마을금고로 쪼로로 달려가 통장에 넣었는데, 그게 그렇게 뿌듯하고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나선 아빠와 함께 여의도로 자전거를 타러 가거나 동서울 롤러 스케이트장을 가거나 농구나 배구 경기장을 갔지요. 그래서인가. 난 지금도 수요일이 좋습니다. 수요일엔 긴장없는 편안함과 여유가, 그리고 아빠가 있습니다.


아빤 삶엔 크고 작은 계획이 있으신 분이었어요. 지현이가 다섯 살이 되면 사각팬티를 입을 거야. 지현이가 학교를 가면 생일은 양력으로 지내가 할 거야. 지현이가 열 살이 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발소를 운영할 거야. 지현이가 대학을 가면 등록금까지만 줄 거야. 당신이 50이 되면 성당을 갈 거야. 운동을 1시간 이상 할 거야. 모두를 해내셨어요. 지나 보니 아빠의 계획엔 다른 사람에 대한 바람이 없어요. 아빠의 자유의지로 가능한 계획들. 아버지의 일기 상자 선물, 휴일 용돈, 경기 관람도 그중 하나였겠다 싶어요. 아빠의 계획 덕분에 난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암을 오래 여러 번 앓으셨어요. 입원을 하고, 36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조직검사를 하고, 퇴원을 하고 다시 입원을 하는 생활을 여러 번 하셨지요. 병원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셨어요. 완치판정을 받고, 또 다시 새로움 암이 찾아왔을 때도 아빠는 의연하셨어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섬망이 있는 상황에서도 허리춤을 잡고 화장실에 가셨습니다. 간호조무사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셨죠. 단 한 번. 병문안을 간 제게 간병인이 기저귀 교체 도움을 요청했어요. 아빠가 싫어할텐데 싶었지만, 아빠와 단둘이 있을 간병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어요. 아빠 나 어릴 적 아빠가 해준 것처럼 나도 하는 거예요. 수치스러운 거 아니야. 나, 아빠 딸이잖아. 아빠가 날 알아보지 못했어요. 아주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완벽하게 낯선 눈빛으로 날 바라봤어요. 며칠 전 나를 의식해 바지춤을 잡고 어렵사리 화장실을 가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울던 아버지가 나를 기억하는 마지막 아버지였어요.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슬픔을 함께 했습니다. 친구들, 직장 동료들, 마을 사람들. 사람 많은 곳에서 주목받는 것 좋아하시던 아빠와 잘 어울리는 장례식장이었습니다. 벌써 3년도 더 지났습네요. 아직도 그날 오셨던 분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드리고 있습니다. 겁이 나요. 인사를 드리고 나면 아빠가 떠나신게 정말이 되어버릴 것 같아요. 아빠를 언제든 볼 수 없는 게 정말이 되어버릴 것 같고요.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 동안 하지 못했어요. 이 글을 쓰며 처음으로 입밖으로 내봅니다.


아빠, 보고 싶어요.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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