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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Jun 24. 2023

반도체, 유럽으로 눈을 돌리다

삼성전자가 인텔의 기습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Keywords

-IDM 2.0 전략: 제조 부문 분리하기

-자동차: 물밑 작업

-연구소: 인재 쟁탈전

-보조금: 양날의 검

-글로벌 전략회의: 고객과 협력하기


지난 주부터 인텔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46억 달러를 투자해 폴란드에 반도체 후공정 팹을 짓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이스라엘에는 25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최대 30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한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장의 보조금과 관련해서도 독일 정부와 협상을 거의 마친 것으로 추정되며, 아일랜드 레이슬립 공장에도 120억 유로를 투자해 첨단 반도체 라인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번 주 수요일, 인텔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데이비드 진스너는 2024년부터 반도체 설계 부문과 제조 부문의 실적을 따로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팻 겔싱어 CEO가 인텔의 부활을 꿈꾸며 준비한 IDM 2.0 전략이 드디어 시험대에 오른다는 뜻이다. 인텔 파운드리가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따라잡기 위한 IDM 2.0 전략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1. 자동차,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인텔이 유럽으로 눈을 돌린 가장 주요한 이유는 내로라하는 자동차 기업들이 유럽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메가트렌드이고 특히 독일에는 유럽의 국민차 폭스바겐부터 명품차 벤츠, BMW, 아우디가 건재하다. 또한 포르쉐를 비롯한 스포츠카 브랜드에서도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전장 부품과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꾸준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용 반도체는 스마트폰이나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TSMC와 삼성전자보다 파운드리 기술력이 떨어지는 인텔에게는 최선의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인텔은 독일에서 칩을 만들고 바로 옆에 있는 폴란드에서 칩을 조립하고 검사해서 바로 고객사에 납품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인텔이 유럽에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는 반면 TSMC와 삼성전자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 레거시 팹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보조금 협상 문제로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다. TSMC는 이미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에 팹을 건설하고 있는 데다가 생산기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과 관련하여 대만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므로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전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유럽 투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삼성전자는 10나노 이하 어드밴스드 팹에 집중하고 있고 유럽의 택지비와 인건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섣불리 투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텔에게 차량용 반도체 고객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물밑 작업은 계속해야 한다.



2. 연구소, 브레인을 선점해야 한다.


인텔은 이스라엘 사랑은 1974년부터 50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인텔은 예루살렘과 하이파에서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키르얏갓에서는 첨단 반도체 팹을 가동하고 있다. 또한 인텔은 2017년 모빌아이, 2019년 하바나랩스, 2022년 타워세미컨덕터 등 이스라엘의 반도체 기업들을 인수하기도 했다. 인텔이 한때 반도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압도적인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설계 부문에서는 미국의 힐스보로 연구소와 이스라엘의 하이파 연구소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가장 앞서나갈 수 있었다. 인텔의 이스라엘 투자는 현지의 인공지능 및 자율주행 반도체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반도체 생산 능력까지 확대함으로써 설계와 제조 양 부문에서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스타트업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나라이다.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배경에는 종교 전쟁으로 인한 방위 산업의 발달, 국가 주도로 창업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생태계가 주로 거론되지만 전세계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대인의 두뇌과 네트워크를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인도와 더불어 반도체 기업들이 인재 쟁탈전을 펼치는 핵심 요충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 퀄컴 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은 이미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에 R&D 센터가 밀집되어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이스라엘에 연구소를 두고 있지 않지만, 몇몇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스라엘에서 찾아야 하는 보물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과 인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3. 보조금, 덥석 물면 위험하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총 430억 유로를 투자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TSMC와 삼성전자가 망설이는 사이 인텔은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자국 정부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해외로 손을 뻗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도 인텔에게 유리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대다수 반도체 기업들이 팹리스와 파운드리 중 하나로 노선을 굳힌 것과 반대로 인텔은 설계와 제조를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갖은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 지켜냈던 반도체 공장은 인텔이 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다. 인텔은 이인삼각처럼 묶여 있던 설계와 제조의 고리를 풀고 진정한 양발잡이가 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게 보조금은 양날의 검과 같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운영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 조건이 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수많은 기회를 포기하고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불량품을 구매하면 안 되듯이 기업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더라도 수익성이 없는 투자를 집행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100조 원을 넘지만 용인과 테일러에 수백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M&A에서도 빅딜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삼성전자에게 지금 필요한 건 생산 지역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제품을 개발해서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상반기 마지막 주를 앞두고 삼성정자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은 파운드리 수주 확대, 중장기 기술 개발, 미래 유망 시장 등에 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독일, 이스라엘 등 4개국에 출장을 마치고 온 경계현 사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들과 협력하여 이루어 내는 혁신과 토탈 솔루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유럽에 반도체 공장이나 연구소를 짓는 것과 별개로 유럽에는 수많은 고객사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경영 환경도 예측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고객과의 끈끈한 파트너십으로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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