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본주늬 Jul 15. 2023

메모리반도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Keywords

-치킨게임

-삼성전자: 차량용 메모리 진격

-SK하이닉스: 고부가 메모리 선점

-마이크론: 중국 후퇴&인도 전진

-블랙스완


이번 주 화요일 SK하이닉스는 이천 수처리센터를 약 1조 원에 매각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이번 주 목요일 삼성전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메모리 솔루션인 UFS 3.1을 양산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들썩이는 것은 AI 이슈 때문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두 차례의 치킨게임 이후 DRAM에서는 3개 업체, NAND에서는 5개 업체가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업체들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할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례 없는 불황에 메모리 업체들은 사상 최악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도 발생할 것이고 평화로웠던 메모리반도체 시장에는 다시 피바람이 불 수도 있다.



1.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양산에 들어간 UFS 3.1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특화된 범용 플래시 스토리지 제품이다. 앞선 세대 제품보다 성능은 높이고 전력은 줄임으로써 속도와 안전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량용 배터리는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온과 고압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UFS를 통해 전성비를 향상하면 전기차의 원가가 절감되고 모빌리티 혁명을 앞당길 수 있다. 차량용메모리 시장에 경쟁사보다 늦게 진입한 삼성전자는 2017년 차량용 UFS를 선보이며 2025년 마이크론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용메모리 시장에서도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UFS는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평정을 위한 마지막 퍼즐인 동시에 새로운 수요처를 창출해 제2의 전성기를 열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메모리반도체는 경기에 가장 민감한 부품 중 하나로 전방 수요가 살아나는 정도에 따라 사이클의 크기도 달라진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1990년대 데스크탑, 2000년대 스마트폰, 2010년대 데이터센터가 수요를 주도하는 가운데 1990년대 인터넷 버블, 2000년대 차이나 버블, 2010년대 암호화폐 버블이 가세하며 슈퍼사이클을 경험했다. 그리고 2020년대는 오토모티브가 수요를 주도하고 인공지능 버블이 가세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2025년 2나노 공정과 GaN 전력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승부수를 걸었고 그룹사 차원에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ADAS 개발에 집중하며 자율주행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차량용 UFS와 엑시노스 오토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모빌리티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2.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이천 수처리센터를 SK리츠에 매각하며 자금 확보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며 메모리 퓨어플레이어가 가진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현금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했기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올해 1월에는 1.7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4월에는 2.2조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생했고 5월에는 하나은행으로부터 2천억 원 규모의 대출까지 받았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작업이 수비를 위한 수혈이었다면 이천 수처리센터 매각 자금은 공격을 위한 실탄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빠르고 크게 다가온 AI 혁명은 SK하이닉스에게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되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기회에 자산까지 유동화시키면서 물 들어올 때 노를 제대로 저어보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감산을 미루면서 궁지에 몰렸던 SK하이닉스는 HBM으로 기사회생했고, 오히려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애플이 공개한 XR 헤드셋 비전 프로에 특수 DRAM을 단독 공급할 것이라는 루머까지 흘러나왔다. 메타가 불을 붙이고 애플이 기름을 부은 확장현실 시장은 최소한 PC와 노트북 시장 규모 만큼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구글, 퀄컴과 함께 자체 XR 헤드셋 출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같은 라이벌 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선두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지만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은 자멸하는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두 기업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오랜만에 흥분되는 일이다.



3. 마이크론.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발을 빼서 인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미국 백악관에 국빈으로 초대되어 빅테크 기업의 수장들과 미팅을 가졌고, 마이크론이 한화로 3조 원이 넘는 금액을 인도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자 인도 정부는 50%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다음 달에 삽을 뜨기 시작해서 2024년 말에 제품을 출하하겠다는 이 계획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모디 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구자라트 주에서 진행되는 본격적인 첫 투자이기 때문에 미국과 인도는 탈중국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를 공들여 성공시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마이크론의 인도 상륙 작전의 성패 여부는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모든 기업들의 경영전략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생각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디커플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대화의 물꼬를 텄고, 대중국 압박의 선봉장인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까지 중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화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정권이 바뀌고 경기가 바뀌면 언제든지 다시 대립할 수 있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은 한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특히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비중이 두 자릿 수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보다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미중관계가 개선될 때마다 생산라인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10년 만에 가장 커다란 변화 앞에 서 있다. 2013년 엘피다가 마이크론에 합병된 것처럼 2023년 키옥시아가 웨스턴디지털에 합병될 것으로 보인다. DRAM과 NAND 시장을 대한민국의 두 기업이 앞에서 끌고 미국의 두 기업이 뒤에서 미는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블랙스완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와서 대한민국이 제패한 메모리 시장에 진입하는 도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이 치열하게 개발하고 있는 양자컴퓨터 같은 기술이 반도체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면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것처럼 대한민국도 암흑기에 빠질 수도 있다. 메모리반도체 전쟁의 끝에는 DRAM과 NAND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금부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반도체 바닥, 아직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