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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Aug 26. 2023

반도체 업계에도 정치가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핵심 고객사 3인방을 상대하는 방법

저번 달까지 달아 오르던 반도체 업계의 분위기가 이번 달부터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중국 부동산발 금융위기라는 매크로 이슈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도체라는 산업만 마이크로하게 보더라도 상황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AI라는 테마로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하나 싶었지만 몇몇 업체만 실질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을 뿐 전통적인 반도체 수요처인 PC, 모바일, 데이터센터에서는 아직까지도 반등이 요원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반도체가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이고 오히려 SK하이닉스에게 기술 리더십을 빼앗긴 상태이다. 하지만 파운드리에서는 반대로 점차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고 TSMC로부터 리더십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리더십이 바뀌는 배경에는 기술과 함께 정치적인 흐름이 작용한다.



1. 엔비디아: 황제의 대관식에 동행하기.


이번 주 전세계가 주목한 기업은 엔비디아였다. 2023년은 곧 생성형 AI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하고 엔비디아의 실적과 전망이 향후 생성형 AI의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는 이미 높아져 있던 컨센서스를 상회했고 내친 김에 가이던스를 상향하며 스스로 생성형 AI의 황제임을 증명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은 엄밀히 말하면 AI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에는 현재 그 어떤 반도체보다 우월하다. 추후 학습형 AI의 성장이 둔화되고 추론형 AI의 시대가 열리더라도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은 유용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는 공급이 수요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TSMC가 엔비디아의 물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삼성전자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실적 발표에 앞서 엔비디아는 H100과 A100 칩의 뒤를 이을 신제품 'GH200'을 공개했다. 일반적으로 CPU나 GPU의 신제품이 출시되면 성능과 전력에 관심을 많이 갖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GH200의 메모리 용량이 이전 칩보다 3배 가량 커졌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A100에는 HBM2E가, H100에는 HBM3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년 출시될 예정인 GH200에는 HBM3P 또는 HBM3P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아직 HBM3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HBM3 양산에 돌입하고 내년에는 HBM3P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HBM은 AI 시대의 옥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어떤 기업이 5세대 HBM을 납품해서 황제의 대관식에 동행할 수 있을지가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AMD: 서러운 2인자끼리 머리 맞대기.


AMD는 엔비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MI300 시리즈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대부분 개발자들이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에 익숙하기 때문에 AMD의 칩으로 바꾸기보다는 엔비디아의 구형 칩을 쓰거나 신형 칩을 기다리는 선택을 내린다. 2인자가 1인자에 맞서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춰서 고객을 유인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다른 기업과 손을 잡고 선두업체의 제품에 없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AMD는 세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엔비디아가 TSMC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AMD는 삼성전자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AMD가 삼성전자와 AI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경쟁사들도 TSMC에만 매달려 있을 필요가 사라진다.


얼마 전 AMD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AI 가속기 칩 수주를 위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에 메모리 솔루션과 패키징 서비스까지 턴키로 제공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에 엔비디아와 TSMC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엔비디아는 현재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솔루션과 TSMC 또는 ASE의 패키징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업체 간 시스템이나 퀄리티를 조율하는 데 있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퀄컴 대비 부족한 GPU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AMD와 손을 잡고 엑스클립스를 개발했고, AMD는 엔비디아를 추격하기 위해 MI300X에 탑재되는 HBM 용량을 대폭 확대하며 지속적으로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서러운 2인자끼리 머리를 맞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3. 퀄컴: 헤어진 전 애인과 재회하기.


얼마 전부터 퀄컴의 향방에 관한 루머가 돌고 있다. 스냅드래곤8 Gen1까지 삼성전자와 함께 하다가 스냅드래곤8 Gen1+부터 TSMC로 넘어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퀄컴이 내년 갤럭시S24에 탑재될 예정인 스냅드래곤8 Gen3부터는 다시 새로운 파운드리 전략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어디서는 지금처럼 TSMC에 전체 물량을 위탁할 것이라고 하고, 또 어디서는 TSMC와 삼성전자에게 물량을 나눠주는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검토할 것이라고 하고, 심지어 어디서는 TSMC를 떠나 삼성전자로 다시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시장이 3년 연속 역성장하는 게 기정사실화되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퀄컴은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 자율주행과 확장현실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퀄컴이 또 한번의 과감한 선택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TSMC의 고객 라인업에서 퀄컴은 3순위와 4순위를 오가고 있다. TSMC의 VVIP 고객사는 애플이고, 나머지는 엇비슷했는데 최근에는 엔비디아가 VIP 고객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AMD, 퀄컴, 인텔이 치열하게 자리싸움하고 있다. 이 중에서 생성형 AI라는 테마에서 가장 뒤에 있는 퀄컴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5순위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화려한 도약을 꿈꾸며 TSMC로 넘어갔지만 곤경에 처한 퀄컴에게 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잘해보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비록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과거에 협력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두 기업의 니즈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헤어진 전 애인과 재회하면 결혼까지 가거나 파탄으로 끝나는데 둘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시장은 독점을 싫어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1위가 있으면 경쟁을 유발해서 2위를 밀어주는 언더독 효과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메모리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CPU에서는 인텔과 AMD, GPU에서는 엔비디아와 AMD, AP에서는 퀄컴과 애플, 파운드리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라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다. 여기서 퀄컴과 애플을 제외하면 점유율이나 기술력 측면에서 1위가 2위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경제적 논리 뿐만 아니라 정치적 논리가 작용해서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이 균형을 깨는 것은 결국 다시 기술이다. 삼성전자로 우주의 기운이 모아져서 TSMC를 따라잡는다 할지라도 확실하게 구도를 뒤집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흐름을 잘 살리되 본질에 집중해서 정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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