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생 심리지원을 했던 퍼스트레이디의 영향이 보인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장애인 정책을. 바이든의 선거공약 페이지에서 갈무리해봤습니다. 곧 KBS 제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이 중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좀더 자세히 리뷰해보려고 합니다.
1. 바이든의 장애정책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보고 깜짝 놀랐다. 장애정책이 무려 40페이지가 넘게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 장애와 관련된 각종 미국법을 빠짐없이 나열하고 해당 법들을 강화하거나 보완하겠다고 꼼꼼히 적어놓았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19 장애인 대응책에 대해서는 아예 별도의 정책을 만들어 놓았다.
2. 왜 이렇게 상세한 정책이 나온 것일지?
한국은 등록장애인이 전 인구의 5%인데 미국의 경우에는 3억25백만 인구 중에 61백만명이 장애인으로 분류되므로 18%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한 올해가 미국 장애인법이 생긴지 30주년이라는 점도 감안됐을 것이다. 장애인법의 정신을 이어받고 보완할 점은 보완하겠다는 다짐이 돋보였다.
바이든 당선자는 40년 이상 미 정계에 몸담아 온 베테랑 정치인으로써 특히 민권신장이 급속도로 이뤄진 1970년대에 정치 초기 시절을 보냈다. 이런 경력을 토대로 대선 캠페인 내내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하는 등 여성 권리 증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는 상반된 성향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민권 신장에 큰 관심을 보인 바이든이 장애 인권에 대한 공약도 상세하게 준비한 셈이다.
3. 대표적인 공약은 어떤 게 있는지?
우선 장애인 정책 개발에 장애인 당사자를 완전히 포함시키고 장애인의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것. 우선 장애계 의견을 수렴하고 장애 정책 조율을 위해 백악관에 장애정책 관련 고위직을 신설하겠다는 게 눈에 띈다. 장애 정책이 복지부, 교육부, 교통부, 주택도시개발부 등 여러 부처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참 맘에 든다. 우리로 치자면 청와대 사회수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청와대 사회수석이 장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면 백악관은 한발짝 더 나아가 아예 장애이슈를 전담으로 다루는 고위직을 임명하겠다는 거다. 또 인상깊은 것은, 비단 장애 정책을 다루는 부처뿐 아니라 백악관과 내각 어느 자리든 능력있는 장애인을 적극 기용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또한 눈에 띄는 건 선거권 향상을 위해 투표소 직원들에게 장애인권 인식교육을 시키고 물리적으로 투표 보장을 하겠다는 점. 이번에 미국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몇몇 주의 투표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을 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선거는 한국에 비해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우리나라는 투표명부에 저절로 이름이 올라가지 않나? 그런데 미국은 유권자가 직접 투표명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이것도 어렵고 주마다 투표하는 방식도 다르다. 직접 나가서 투표하는 데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투표 방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투표권을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겠다는 거다. 그런데 사실 이부분은 미국 50개주가 서로 다른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잘 될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의욕에 손을 들어준다.
4. 장애인들의 경우 건강 보건 이런데 관심이 많을텐데 관련 공약도 있는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선보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바이든 당선자는 더욱 강화하겠다고 다짐한다. 사실 미국은 모두 아시다시피 통합 국민건강보험이 없어서 아프면 치료비 폭탄 맞고, 아프면 안 되는 나라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가 없애려고 했던 오바마케어를 강화해서 특히 기저질환이 있는 장애인들의 건강권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민간건강보험회사들이 장애인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적극 활용하여 차별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정신 건강 관리를 포함하여 고품질의 저렴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가정 및 지역 사회 기반 서비스를 확대하며 각 개인의 필요에 적합하면서도 장애인 스스로의 결정에 기반해 장기 서비스와 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노인, 장애인이 자기가 직접 지정한 가족 구성원에게 케어를 받고 이를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부분에 대한 논란이 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5. 요즘 국내 장애인 이슈 중에는 시설에서 살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독립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소위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던데 이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공약도 있는지?
‘옴스테드 판결’ -- 루스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내린, 시설에서 살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며 시설에서 독립하기 위해 소송을 냈고 장애인 권리에 대법원이 손을 들어 준 판결인데, 바이든 공약에는 이 옴스테드 판결을 더욱 강화하여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던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6. 장애인들에게 또 관심있는 분야가 아무래도 고용일 텐데?
장애인들에게 경쟁력 있으면서도 비장애인과 통합된 고용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계획에 들어 있다. 고용분야를 보면, 한국에서 이미 도입한 제도들도 있다. 장애인 고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준다던지, 장애인 고용 중소기업과 이런 고용을 촉진하는 지방정부를 지원하는 등은 한국에 이미 도입된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미 연방정부부터 적극적으로 미국 장애인법에 의거하여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겠다는 공약이다. 최근에 우리나라 공공기관들의 장애인 고용 비중이 상당히 낮아서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았던 게 기억났다. 앞으로 미국과 한국의 정부기관 장애인 고용이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7. 장애아동, 학생 교육에 대한 내용도 있는지?
조 바이든의 배우자인 질 바이든은 교육학 박사로 장애학생 심리지원 경험이 있다.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장애유아, 장애학생에 대한 지원 공약은 특별히 더 자세하다.
장애 학생이 유아교육부터 고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우선 눈에 띄었던 건, 장애유아를 가진 부모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는 것이다. 특히 유아 보육시설의 장애유아들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과 교사들이 장애유아를 돌볼 수 있도록 훈련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나 또한 수많은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를 거부한 경험을 갖고 있어,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대통령 공약에 들어간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자체를 장애친화적으로 물리적으로 바꾸는 것도 공약에 있고, 특히 특수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특수교사 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특수교사 보조 인력도 늘리겠다는 게 계획이다. 아예 비장애 수업에서도 소위 유니버설디자인 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장애 경계에 있는 학생도 포괄할 수 있도록 일반 교사 양성 과정을 고치겠다는 내용도 놀랍다.
장애학생의 대학 진학이나 직업훈련과정에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에서 특히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바이든 공약 중 하나는, 발달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이 가능하도록 과감하게 대학 과정에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8. 그 이외에는 어떤 정책이 있는지?
접근 가능하고 통합적이며 저렴한 주택, 교통 및 보조 기술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고 비상시 장애인을 보호하겠다는 계획도 상세하게 제시했다.
빌딩이나 주택에 적용하는 유니버설디자인 개발에 투자하는 한편, 장애인들이 쉽게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보조공학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 증액 계획도 눈에 띈다.
대중교통, 특별교통수단의 접근성 향상에 대한 내용도 있다. 제일 자세하게 나온 건 항공 서비스 이용시 접근성 향상이다.
또,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산불이나 허리케인, 수해 등의 자연재해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임시 보호시설 등에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지침을 내리겠다고 한다. 국제적으로도 장애인권 특사를 UN에 파견하고, 국제 장애 협약을 준비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장애인들의 생애 전체와, 비상상황까지 챙기는 걸 보면서 바이든 캠페인측에서 장애인정책을 상당히 오랫동안 상세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