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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눈박이엄마 Nov 13. 2020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에 최대 위협이 될 이유

공화당은 정신차릴 생각이 없다

이번 대선이 '트럼프의 선거'가 될 거라고 예전 브런치 글에서 예상한 바 있다. 바이든이 좋아서 찍기보다 트럼프가 싫어서 찍는 선거. 그런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앞으로 최소한 4년, 길면 10년 이상 트럼프는 미 대선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 대선 결과가 나온 후, '여론조사 또 틀렸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바이든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란 예측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트럼프 지지율이 거의 대부분의 유권자층에서(일부도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유권자층 맞다) 당초 예상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역대 최대 표로 당선된 것도 맞지만, 트럼프도 2016년에 비해서 500만표를 더 얻었다. 역대 최대 표를 얻고 재선에 실패한 거다.



여론조사기관들은 많이 노력헀다. 2016년 여론조사에서는 백인 노동자, 고졸 이하 유권자가 과소대표됐다는 평가가 많았고 이를 감안해 보완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오로지, 도시 교외(suburban)지역 유권자만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라틴계, 흑인, 노동계층. 다 예상을 빗나갔다. (트럼프는 2016년에 비해 2020년 선거에서 라틴계 표는 압도적으로 더 얻었고 심지어 흑인 표도 더 얻었다)



여론조사에서 맞춘 교외지역 유권자는 대졸 이상, 어느 정도 부유한 곳이다. 결국 2016년에 비해 고졸 이하 노동계층의 민심 이반이 더욱 심해졌다는 거다. 미국 정치뉴스쇼 'Rising' 호스트인 크리스탈 볼(Krystal Ball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에 비해 저조한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닥 민심을 읽지 못했다. 민주당 엘리트 정치인들이 기업에서 돈을 받고 신자유주의를 추종한 게 역풍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고 일갈했다. (크리스탈 볼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민주당 기득권 세력을 대차게 까는 걸로 유명하다)  미국 민주당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쪽으로 이동하게 됐는지는 시사인 천관율 기자님이 너무너무 잘 분석하셨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아래 세 가지 사례를 보자.



첫째.


뉴욕타임즈 여론조사 담당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론조사가 이번에도 빗나간 이유는,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기관을 믿지 않아서 아예 답변 자체를 안 했기 때문일 수 있다.


둘째.


이번에 남부 조지아주에서 바이든이 1992년 이후 최초로 조지아주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가 됐다. 그런데, 조지아주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부정선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지아주에선 내년 1월 상원의원 최종 결선투표가 치러지는데 공화당 후보인 현 상원의원 두 명이 주 개표의 총책임자(주의 Secretary of State)에게 사임하라고 요구 중이다. 바이든이 근소한 표차로 이긴 것 자체가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조지아는 주지사, Secretary of State를 비롯한 주 선거관리 담당 공무원, 주 의회까지 싹 다 공화당이다.


셋째.


트럼프 불복에 빌 바 법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공화당 주요 상원의원들(매코널 원내대표, 린지 그레이엄 의원)들이 트럼프 편을 들기 시작했다.  린지 그레이엄은 아예 트럼프에게 "끝까지 싸워라"며 비장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세가지 모두,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신뢰 자산이 무너졌거나 어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그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거다.


신뢰를 자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민주주의엔 치명타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불복과 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움직임, 공화당 중진들의 이런 시도 자체가 '쿠데타'에 준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리적 쿠데타가 실제로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 자체가 거의 쿠데타와 맞먹는 수준으로 민주주의에 균열을 낸다는 우려가 있다.


이번 선거 전부터,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휘둘려 가는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주의적 원칙을 수시로 외면해 왔다. 의회 내부에서 관례적으로 지켜졌던 원칙도 깼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대법관을 임명하지 못한다는 2016년 공화당 원칙을 꺠고, 대선 직전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인준한 과정이다.



사실 2000년 공화당 조지 W.부시가 전체 투표수를 더 많이 얻었지만 선거인단 수를 더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 자체가 '권력이면 장땡'이라는 공화당 성향을 더욱 부추겼고, 그 결과 권력만 잡는다면 원칙을 저버리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다. 아직도 주로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남부 지역에서 유색인종 대상으로 자행되는 투표 탄압(voter suppression)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뭔 X소리냐 하겠지만 미국에선 버젓이 일어난다.


이를테먼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투표를 갖은 수단을 써서 무효화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8년에 조지아 주지사 후보로 나온 흑인 여성 후보 스테이시 에이브럼에게 갈 것으로 생각되는 표들을 공화당 주지사가 대거 무효표로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유색인종, 특히 흑인 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주 단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대법원까지 들고 가서 판결을 해달라는 식의 법적 챌린지가 많아질 거다. 그러면 헌법을 당시 쓰여진대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문자주의(textualism) 보수성향 대법관이 6명으로 다수가 된 대법원에서, 이렇게 유색인종 투표를 탄압하는 성향의 판결이 더 많아질 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고 존 매케인이나 밋 롬니가 공화당의 주류이던 시대가 가고 공화당이 더욱더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천착할 거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에 맞선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매케인은 오바마를 '테러리스트 옹호자'라고 말하는 자기 지지자에게 '아닙니다. 저랑 생각이 다르지만 오바마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던 클래스 있던 정치인이었다) - 비디오는 아래에.



왜? 계속 음모이론을 우기면 그걸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고, 진보/중도 언론매체가 실시하는 여론조사에는 아예 응하지 않는 식으로 계속 이들 여론조사기관을 엿먹일 수 있다.


트럼프 당선 전부터, 국가를 포함해 어떤 권위있는 기관을 불신하는 성향은 미국에 존재해왔다. 그런데 4년동안 거짓말을 지껄이면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분노를 끌어모아서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게끔' 만들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2020년 선거 결과로 공화당이 확실하게 습득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트럼프가 4년 동안 더 활개를 칠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거추장스럽게 국정 따위 맡지 않아도 되고, 유세가 되었든 자기 케이블 TV를 차리든 계속 시끄럽게 사사건건 바이든 정부에 어깃장을 놓을 거다. 이미 좋든 싫든 트럼프의 당이 된 공화당은 트럼프 지지자들 눈치를 볼수밖에 없다. 이미 트럼프가 묵인한 음모이론인 큐아넌(바이든은 애들을 납치한다. 힐러리가 애들 피를 마신다 등등의 허무맹랑한 소리)을 지지하는 공화당 하원의원이 몇 명 당선됐다. 무려 하원의원이라고!!!!



게다가 트럼프 유세는 '재밌다'. 트럼프는 거짓말과 남의 비난을 유아적 단어로 아주 쏙쏙 박히게 말한다. (트럼프는 임팩트 있는 단어를 문장 끝에 배치하는 커뮤니케이션 귀재다) 4년 동안 트럼프 헛소리를 중계해서 시청율을 높인 케이블 뉴스가 그걸 중계 안하고 배길 수 있을까? 자극적 소식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게 전부인 미디어 /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과연?


트럼프의 언어를 분석한 유튜버 Nerdwriter 영상



반면 바이든 정부는 반대편 국민까지 끌어안고 민주적 절차에 맞춰 가야 하는 데다가, 말할 때 재수없어서는 안된다. 바로 그 엘리트적 재수없음 (대도시 잘사는 놈들이 우리 개무시해!)이,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노동계층의 민심을 멀어지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국정 운영 보도를 보는 게 재미있겠나? 트럼프 유세보다 재미있을 리가 없다.  


앞으로 트럼프는 사사건건 트집잡을 거다. 바이든 정부가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추진하면 "석유산업 일자리가 없어진다"며 비난할 거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 "자유를 뺏는다"며 비난할 거다. 건강보험 개혁을 하면 "세금을 올린다"며 비난할 거다. 환경이나 복지는 당장 효과가 나는 게 아니다. 당장 어떤 부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재미가 없고 반발도 심할 수 있다. 이걸 트럼프는 사사건건 이용해 먹을 거다. 이미 공화당의 킹메이커는 트럼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이 2024년에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폭스 채널에서 트럼프 칭송으로 큰 인기를 모은 터커 칼슨이 공화당 대선후보 물망에 있다는 얘기도 있다. 2028년엔 딸 이방카를 대선 후보로 밀 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이걸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반대편을 설득해 힘든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피즘(트럼프식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힘든 길을 가고자 하는 공화당의 '내부 동력'이 적어도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편을 들까 말까 눈치를 봤다. 그런데 선거 후 확실해졌다. 트럼프 노선을 타면 콘크리트 지지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분노를 자양분 삼아 인종차별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트럼프 하는 대로 따라 하면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그렇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일부 국가의 독재정권에서 나오는 행태다.



이러면 누구 손해인가? 궁극적으로 미국의 손해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거나 백신을 맞으라고 국민들한테 말할 때 트럼프 지지자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공공 보건에 위협이 되고 통치에 균열이 간다.


2016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페이스북을 이용해 여러 가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등 공작을 펼쳤던 이유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함이라고 미국 주요 언론들은 분석했다. 2020년, 음모이론을 퍼뜨리고 자신의 정부조차 못 믿는다며 반발하는 미국인들의 자중지란, 과연 누가 웃으며 보고 있을까?


바이든 정부는 이 모든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바로잡는 동시에 경제도 잡고 기후위기에 다시 팔을 걷는 등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예전의 수준으로 돌려 놓을 수 있을까? 트럼프에 여전히 목매고 있는 공화당의 현재 상황을 보면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 민주당의 젊은 피들, 특히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모두 '1월 조지아 상원 결선투표'에 집중하고 있는 거다. 상원이 현재 공화 50 민주 48명인 상황에서, 1월 조지아 상원의원석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그러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의장으로서 1표를 더 행사해 민주당이 상원 다수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을 당선시킨 진보연대의 힘은 생각보다 약하다. '트럼프 타도'외에는 별 공통점이 없어서 내부 어젠다가 엄청 다양하기에 벌써부터 내부 분열 이야기도 나온다. 할 일은 힘들고 많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듯 민주당 정치인이라면 색안경 끼고 보는 미국인이 7천만명으로 4년 전보다 늘었고 성향도 더 공고해졌다. 민주당은 '재수없는 엘리트'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단순히 이미지만 극복하는 게 아니라, 진짜 서민과 노동계층을 위한 정책을 내야 한다. 그런데 그게 포퓰리즘도 아니어야 하니.


한국은 미국을 '민주주의 본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 환상이 트럼프 시대에 많이 깨졌다. 바이든 당선이 되더라도 트럼프라는 신기루는 계속 미국 민주주의를 좀먹을 것이다. 전세계 열강 구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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