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타트업>에서 그려진 장애 관련 서비스에 대한 '시선'
드라마나 매스미디어에서 장애를 불쌍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볼 때 비판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배수지가 출연한 화제의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시각장애인 서비스가 주요하게 다루어진다고 해서 챙겨보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달달한 로코...) 혹시 그런 시선이 있을까? 싶어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서달미가 CEO 가 된 스타트업 삼산텍은 이미지를 인식하고 목소리로 그 이미지를 알려주는 시각장애인용 앱 '눈길'을 개발한다. 눈길 서비스를 개발하자고 제안한 회사 CTO 도산(물론 서달미를 사랑하는 걸로 나온다. 로코가 그러니까)의 서비스 개발 계기가 달미 할머니가 시력을 잃어가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될까? 사실 상당수의 장애 관련 서비스가 그렇게 개인적 이유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달미의 할머니가 ‘나를 딱한 눈으로 보는 거 싫다’며 달미에게 시력 저하를 알리지 않았는데, ‘딱한 눈’이라는 대사가 논쟁이 되는 것 같다. 동정이나 불쌍함과 연결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비장애인이 서서히 장애를 갖게 되는 과정의 좌절감을 그렸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처음엔 절망으로 시작해 나중에 수용으로 가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어록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던지 손톱을 깎기 힘들어하는 부분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다소 비극적으로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달미의 언니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비극적 음악이 깔린다던지 하는 게 또 장애를 동정심으로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지만, 바로 이어서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등은 기존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장애인 클리쉐와는 사뭇 다른 독립적 캐릭터를 보여준다.
어쨌든 간에, 할머니는 극중 삼각관계를 만들었고 주인공들을 성장하게 하는, 이 드라마의 하드캐리이며 중심축이니까.
사실 그보다 더 문제점을 제기하고 싶었던 건 ‘눈길’이라는 장애인 앱을 보는 드라마의 눈길이었다.
드라마에선 눈길 서비스를 오로지 장애인 서비스로만 본다.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돈이 되지 않는다’ ‘기업 사회공헌 자금을 받아내야 한다’고 못박는다.
삼산텍을 멘토링하고 있는 벤처투자가인 한지평(서달미를 남몰래 짝사랑하는)은 이 서비스가 돈이 안되는데, 좋아하는 달미를 위해 투자로써 ‘적선’하겠다고까지 한다. 결국 눈길 서비스의 서버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삼산텍은 모닝그룹(서달미 엄마가 이혼 후 결혼한 사람이 바로 이 모닝그룹의 회장)의 CSR 자금을 받아낸다.
(어떻게 받아냈는지는 아래 비디오에...)
그 뒤 16화에서는 그동안 한지평의 투자를 거절하던 도산이(두 사람은 연적이다)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자율주행서비스에 지평이 투자하겠다고 하자 ‘적선이 아니기 때문에 받는다’고 말한다. 사실상 이 드라마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 적선 이라고 두 번 못박는 것과 같다.
나는 무의라는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지하철 환승지도’를 만들었다. 처음 시작은 휠체어 이용자인 내 딸이 환승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휠체어 이용자용 리프트가 불편해서 돌아가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지하철을 갈아탈 수 있는 지도다.
그런데 이 지도를 외부에 설득할 때는 ‘휠체어 환승지도’가 아닌 ‘교통약자 환승지도’라는 이름으로 설득했다.
실제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이 투쟁해서 만든 거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자꾸 장애인들이 떨어져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누가 가장 많이 타나? 1:6 비율로, 노인분들이 많이 이용한다. 즉, 엘리베이터는 ‘모두를 위한 장치’란 거다. 그러므로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유아차나 노약자, 짐 많은 사람들 모두를 위한 장치이므로 돌아가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환승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는 단순히 ‘장애인 지도’가 아니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도 이런 접근방식을 도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달미는 눈길 서비스를 피칭하는 데모데이에서 눈길 서비스가 한국 시각장애인 뿐이 아닌 세계 시각장애인을 겨냥한다고 말했는데, 조금 더 나아간다면 눈길 서비스가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이러저러한 때 유용하다고 하여 범용성을 더 강조했더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분명히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만한 서비스, 그리고 더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로 출발하지만 모두를 위한 서비스인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포용 디자인의 상업적 가능성을 더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서비스의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애플의 assistive service다. 비장애인들도 유용하게 사용가능한 '손쉬운 사용' 기능 말이다.)
이와는 별개로, ‘기술에 대한 고찰’이란 점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달미 할머니가 도어록 대신 ‘난 기술 싫어’라며 물리적으로 열쇠를 쓰는 장면이다. (손녀인 달미에게 시력 저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하얀 거짓말을 하는 할머니)
다른 하나는 AI 관제기술 때문에 해고 위기에 몰린 도산의 아버지가 데모데이에서 ‘혁신하는 것 좋다. 하지만 그 혁신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며 항변하는 장면이다.
둘 다 기술만능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다.
달미 할머니가 열쇠를 쓰는 장면은 사실 조금 더 강조했음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기술 만능주의가 좋은 게 아니다. 디지털화에서 노령층이나 장애인이 소외되는 건 무인 키오스크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기술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겠다. 몇 년전 계단을 올라가는 휠체어가 만들어진다는 기사가 나왔다. 내 딸이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며 많은 사람이 내게 관련 기사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보며 ‘이건 얼마나 비쌀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기술의 발전이 자칫, 세상의 장애물을 개인이 그 기술을 구입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우려스럽다.
또한, 도산의 아버지가 이야기한 ‘AI가 없애는 직업의 미래’는 실제로도 코로나 때문에라도 훨씬 더 앞당겨지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런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했지만 답은 제시하지 못했다.
드라마에 뭐 그리 많은 걸 바라냐마는, 그래도 전반적으로 스타트업은 IT분야, 스타트업 창업에 대해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갔다는 점, 기존의 장애 관련 클리쉐를 상당히 많이 제거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 한발을 뗀 듯하다. 장애인과 장애인 관련 서비스를 바라보는 IT 기술 관점에서 좀더 '혁신적인 눈길'을 그리는 드라마가 나오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ZPDHDLBY
* 이 리뷰는 스타트업 전문 유튜브 채널 EO에서 다뤄주시기도 했다.
이 채널을 운영하는 태용님과는 2017년에 ‘부산 이동권 실태’라는 부산에서 태용님이 휠체어 직접 타고 다녀보는 영상을 함께 기획했던 인연이 있다. 페이스북에 이 드라마가 보여준 장애에 대한 시선에 대해 태용님 페북 피드에서 한 마디 했다가, 태용님이 비디오 찍어 보내보라고 해서 집에서 딸이 찍어준 비디오;;; 으으으 그래도 유튜브 비디오 댓글 반응이 좋아서 좋다!
#스타트업 #유니버설디자인 #모두를위한기술 #장애
보는 영상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