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눈박이엄마 Mar 01. 2022

푸틴의 또다른 목표: 서방세계 시민 신뢰체계 붕괴

신뢰가 무너지고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독재가 싹튼다 

Centre for Democracy and Peace Building

지난 주말 내내 우크라이나(+러시아+푸틴)에 대해 내내 읽고 듣고 보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면서 구호기금을 내기도 했다. 잘 알지 못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를 속성으로 공부하게 되고 푸틴의 사고방식에 대한 분석글들을 읽었다. 미국 대선에서 역할을 한 걸로 알려진 러시아. 푸틴의 목표는 미국의 분열이었을 것이다. 분열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난다. 대선을 앞두고 꼭 한번 정리해 두고 싶었다. 



1.


푸틴이 끊임없이 시도한 건 서방 국가 내부에서 사회에 대한 '신뢰(trust)'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1-2차 세계대전 사이 동유럽과 소비에트 연방 역사 전문가인 예일대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는 신뢰가 무너지고 '믿음(belief)'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독재가 싹튼다고 말했다.


참고: <독재의 해부> NPR, Throughline  

https://www.npr.org/2022/01/05/1070569640/the-anatomy-of-autocracy-timothy-snyder-2021



2.

신뢰라는 건 내가 보지 못하는 낯선 곳과 낯선 이의 역할을 믿는 것이기에 토론과 다양성이 허용될 수 있다. 사회 신뢰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그와는 달리 (맹목적인) 믿음은 내가 이미 믿고 있는 것 이외 다른 생각, 성향을 배척하고, 팩트를 들어도 부인하는 것이다.




예일대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 (출처: 티모시 스나이더 홈페이지)



3.


푸틴은 군비를 늘리는 만큼, 서방 사회의 민주주의 신뢰를 깨뜨리기 위한 공작을 끊임없이 해 왔다. 그는 KGB 출신이자 유도 유단자다. 정보 전쟁의 중요성을 알고 유도에서처럼 타인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방법을 안다.


참고: <KGB 요원에서 러시아 최장기 리더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NPR, Throughline


https://www.npr.org/2022/01/26/1075904050/from-kgb-officer-to-russias-longest-leader-vladimir-putin



유도 유단자 푸틴에게 용인대가 준 명예학위는 박탈하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출처: The Guardian)



4.


러시아의 사이버 테러는 유명하다. 펜타곤을 해킹한다던지 하는 것 이외에도 미국과 유럽 민간인 사이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려 약한 고리를 끊임없이 흔드는 정보공격을 했다. 대표적인 게 2016년 미 대선에서의 역할이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가짜 정보를 퍼뜨렸다. 가짜정보에 취약할 만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알고리즘을 통해 가짜정보를 쏟아부었다. 그 유명한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에서도 로버트 멀러 특별검사가 끝까지 러시아와의 연계성을 파헤쳤다. (그러나 명확히 밝히진 못했다)



그 결과? 2021년 가짜정보를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참고: <스파이에서 대통령까지: 푸틴의 부상> Vox

https://www.youtube.com/watch?v=lxMWSmKieuc&t=392s



2021년 1월 6일 트럼프의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선거부정이라며 미 의회 의사당에 몰려든 시위대 (출처: NPR)



미국 뿐 아니다. 유럽에서 극우 정치인이 득세할 때 그 뒤에는 러시아의 정보전이 있었다. 유럽과 미국 사이도 갈라놓았다. 그런 쐐기 역할을 하기에 미국의 국제사회 역할론에 회의적인 트럼프는 제격의 파트너였다.



푸틴은 시리아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 유럽 국가의 극우주의 프로파간다 확산에 영향을 줘서 사회혼란을 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Vox)



5.


그런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내세운 논리는 논리라기보다는 이미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을 강화하고 그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서 갈라치기 위한 궤변에 가깝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하나라고 주장하는 논리 중


1) 우크라이나가 볼셰비키가 만든 국가니까 당연히 러시아꺼임


2)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나라는 건 (그리스 정교)신이 점지한 것이란 내용이 있다.



1번은 논리적 모순이다. 원래 소비에트 연방 자체가 '국가간 연방'이었고, 연방을 구성하기로 한 것 자체가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이 형태로 아니면 같이 못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2번은 전형적인 '논리 다 집어 치우고 신이 점지해 준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에 소구하는 거다.



월스트리트저널 "푸틴은 러시아정교회란 종교적 맥락에서 우크라이나를 점령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6.


정보를 장악하고, 해킹하고, 가짜정보를 퍼뜨리는 건 군사 침공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없애고 맥락을 생각하지 않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7.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다시 한국에 대입해 본다.



우크라이나가 지금 단결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건, 우크라이나라는 국가가 이뤄 온 민주주의 항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뭉쳐 일어난 일이다. 당장 내 목숨을 건지자면 푸틴의 가짜 논리에 굴복하고 그걸 일방적으로 믿으면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8.


한국도 우크라이나만큼이나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다.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기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국민이 어려운 순간에 똘똘 뭉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 정보로 만들어지고 폭압과 압제 때문에 갖게 된 억지 믿음 말고, 팩트와 토론과 합의에 기반한 신뢰에 기반한 민주주의 말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단순히 글 하나를 읽더라도, 쓰더라도, 퍼뜨리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글이나 제목이나 현재 현상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이건 왜 이렇지?' 라며 다소 시간이 걸려도 맥락을 파악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지금 당장 나의 이익에 즉자적으로 복무하는 대신 '신뢰가 있는' 공동체의 공통 이익을 장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 원리를 잘 알고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시민이 많을수록, 한쪽 믿음이 더욱 강화되도록 하는 갈라치기 행위를 단호히 배격하고 신뢰를 심어 주려는 리더가 뽑힐 가능성도 높아진다.



9.


70년 동안 거짓말 같던 장기적 세계 평화를 깨겠다는 푸틴을 보며, 두렵지만 민주주의를 택한 우크라이나를 보며, 우리를 돌아본다. 당장의 평화를 담보하는 건 군비경쟁, 무력시위, 자본이다. 그러나 장기적 평화를 담보하는 건 신뢰와 민주주의다.


아인슈타인 "평화는 무력으로 지킬 수 없다. 오로지 이해로만 쟁취할 수 있다" (출처: Democracy and Peace Building Organization)




        

작가의 이전글 중학생 딸은 메타버스가 별로라고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