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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Oct 16. 2020

한밤의 퇴근길에 배우는 겸손

나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은 많다

  

새벽배송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즈음 마켓컬리 물류센터를 취재했다. 2017년 12월이었다. 물류센터 가동이 개시되는 오후 3시부터 배송이 완료되는 새벽까지 마켓컬리 물류센터에 머물며 ‘밤에 주문한 식재료가 출근 전에 도착하는’ 신통한 서비스가 어떻게 가능한지 들여다보는 기획이었다.


거대한 물류센터를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삭막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창고에 토마토, 고등어, 밀크티, 식빵 등 너무도 익숙한 식재료가 질서정연하게 들어왔고 진열됐다. 신선식품에서 상한 것을 골라내는 팀, 주문 물품을 선반에서 꺼내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는 팀, 플라스틱 바구니를 전해 받아 매뉴얼에 맞춰 포장하는 팀 등 물류센터의 분업은 정교하고 빠르게 돌아갔다.


물류센터의 클라이맥스는 자정께 모습을 드러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1톤 트럭이 속속 집결했다. 외부인은 알 수 없는 어떤 규칙에 따라 트럭은 나란히 배열됐고, 출격 준비를 마친 택배상자가 트럭에 차곡차곡 실렸다. 마켓컬리 배송차량이니까, 트럭에는 당연히 보라색 부엉이가 도색됐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마트나 티몬 같은 경쟁업체 트럭이 적지 않았다. 새벽배송 택배기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란 걸 그제서야 알게 됐다. 낮에 일반배송을 하고 자정부터는 새벽배송을 하는, 60대 ‘투잡’ 기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자정부터 트럭이 차례로 물류센터를 빠져나갔다. 나는 마켓컬리 직원이 직접 모는 트럭을 타고 가장 마지막에 출발했다. 모두가 잠든 도시는 고요했다. 마지막 배송 현장까지 동행한 뒤 사진기자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왔다. 새벽 4시. 대충 씻고 쓰러졌다.




새벽 6시의 퇴근자

[pixabay]


며칠 후 보충 취재차 새벽배송 기사 한 분과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를 둔 마흔 즈음의 가장이었다. 새벽배송 외에도 마켓컬리 도급업체에서 일했다. 오후 3시 물류창고로 출근해 포장 일을 하다가, 자정부터 트럭을 몰았다. 새벽배송을 마치고 귀가하면 보통 아침 6시라 했다. 집 나선 지 15시간 만에 귀가하는 것이다.


그는 퇴근해 밥 먹고 내내 잠을 자다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와 잠깐 놀아준 후 다시 출근한다고 했다. 휴일은 토요일 새벽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월요일 새벽배송을 위해 일요일 오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으세요?” 그에게 물었다. “뭐, 아직 젊으니까요. 이렇게 벌어 생활도 하고 저축도 조금씩 하니까 열심히 해야죠.”     


2018년 12월의 어느 밤에는 경남 창원역 앞 스타벅스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렸다. 이날 새벽 창원으로 내려와 사진기자를 만나 창원과 거제 일대의 조선업 현장을 취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녁 7시 넘어 역에 도착했더니 가장 빠른 열차가 9시 반에 있었다. 오송역에서 SR로 갈아타고 집에 가면 새벽 1시간 넘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오송역까지 가는 기차한적했다. 하지만 오송역에서 내려 대합실로 올라갔다가 놀랐다. 자정께인데도 열차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았다. 술을 마셔 불콰해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양복 차림의 야근에 찌든 직장인이었다. 아마 세종시 공무원들이겠지, 생각했다. 동행자가 많은 덕분에 한밤의 기차는 고독하지 않았다. 종점인 수서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역 앞에는 '빈차' 등을 켠 택시가 즐비했다. 각자가 바쁘게 집을 향해 흩어졌다.





어디까지 가는 트럭일까

[pixabay]


회사 건물의 지하 2층부터 지하 6층까지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가 설치돼 있다. 밤 10시가 지나 차를 몰고 퇴근하면 지하 2층의 발송 파트를 지나게 된다. 그 시각 발송 파트에는 지방으로 내일자 신문을 배송하는 트럭이 모여든다.


들어오는 트럭, 나가는 트럭, 그리고 트럭 기사들로 한참 분주한 그곳으로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슬금슬금 올라오면 나이 지긋한 기사 분들은 재빨리 길을 비켜줬다. 신문 실어 나르느라 바쁜데 왜 이쪽으로 나오느냐고 언짢은 얼굴을 하는 분은 없었다. 어이, 이쪽으로! 스톱! 하며 차량이 뒤엉켜 사고가 나지 않게 수신호를 보내주었다. 수고하셨어요, 하고 인사도 해주셨다. 아무리 피곤하고 짜증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퇴근길이라도 이 순간에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한밤에 일의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끼리 나누는 작은 응원이었다.


가끔은 신문을 실은 트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로를 달렸다. 나는 한남대교를 건너 올림픽도로로 빠지고 트럭은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헤어졌다. 저 트럭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저 기사 분은 댁이 어디일까, 몇 시에 집에 들어가실까, 궁금하곤 했다.     


회사 다니면서 야근을 숱하게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야근이 잦아서 몹시 피곤하고, 그러니까 회사는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걸 알아줘야 하고, 가족은 내 신경을 건드려선 안 되며, 지인들은 나를 되게 바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우주가 '야근하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착각에 빠질 때마다 나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한밤의 퇴근길에 만난 그들에게서 나는 겸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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