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둘의 퇴사

19년 연차와 정규직 버리기

by Jeenam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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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배가 불렀구나.”


수년 간 고민했던 ‘저는 이만 퇴사하겠습니다’란 대사를 정말로 해버리고 만 날, 퇴근해서 곧장 옆 동네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 A를 만나러 갔다. 나의 퇴사를 가장 반대했던 친구라서, 그 반대를 무릎 쓰고 일을 저질렀다는 ‘보고’를 꼭 얼굴 보고 하고 싶었다. “자, 그냥 한 대 때려” 하며 내민 나의 머리통을 A는 진짜로 한 대 쥐어박았다.


스물네 살. 대학을 졸업한 해에 공채를 통해 입사한 회사였다. 정규직이었고, 나는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다. 그 노조의 힘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국장 인사에 반대할 권한을 가진,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노조였다. 그러니 한직으로 발령 날지언정 형사법상 문제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될 가능성은 낮았다.


연봉은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섭섭하지 않은 정도였다. 솔직히 다른 데 가서 이만큼 벌 자신도 없다. 야근도 문재인 정부를 맞아 크게 줄었다. 입사 후 죽 나를 괴롭히던, ‘야근 자주 해야 일 잘한단 평가를 받는다’는 조직의 암묵적인 룰은 거의 사라졌다(고 믿는다). 내 일만 밀리지 않으면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 전에 퇴근할 수 있었다(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최소 주 2회, 밤 11시 넘어 퇴근했고, 종종 주말 근무도 했다).



존버가 상식인데


여러모로 ‘존버’가 상식이었다. 나는 여성이고, 마흔 둘이고, 딱히 전문성이나 자격증도 없는데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둘이니까. 멀쩡한 회사원인 남편이 있지만, 남편이 아프거나 실직하거나 이혼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게 인생이니까.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창궐한 시대다. 일자리가 점점 더 메말라간다. ‘여성이 제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기만의 방과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까지 빌려올 필요도 없다. 월급이 들어와야 ‘카드 값’을 내니까.


자기만의 방도 없으면서 수입까지 포기하기로 한 이유를 딱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보려고 지난 며칠간 고민했다. 육아 때문에, 싫어서, 지쳐서, 이직하려고, 돈이 많아서….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밤 10시 전에 집에 도착하면 “엄마 일찍 왔네!” 할 정도로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게 뼈에 녹은 맞벌이 자녀이고, 19년차는 싫고 지친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인드로 버티면 된다는 것을 체득하는 연차다.


성취 지향적 인간이기에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고 있고 오라는 곳도 없다. 대출 없는 건전한 가계를 일궈냈지만, 카드 값은 너무 무섭다. 퇴사하겠다는 내게 지인이 “애들 학원 보낼 돈, 있어요?” 하고 물었다. “어…. 아끼고 살면 영수는 보낼 수 있지만, 국어·과학은 못 보낼 거 같아요” 했다.



Eat, Care, Exp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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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 연차에 정규직을 스스로 버린 것은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지 못할 것 같아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회사 일에 매진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밀린 육아와 살림을 해치우는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나를 돌봐주고 싶다. 20년 가까이 글 쓰는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나와 내 삶을 짚어보는 글은 거의 쓴 적이 없다. 직업인이 아니라 오로지 나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싶다.


영어에 ‘Eat Sleep Drink’라는 표현이 있다. 사람이 살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세 가지 행위(먹고 자고 마시고)에 해당하는 단어를 나열해 ‘나는 ~로 산다.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줄리아 로버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제작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도 이 표현을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이 표현을 알게 됐을 때, 나만의 표현을 만들었다. ‘Eat Care Explore’. 먹고, 돌보고, 탐험하는 삶. 여전히 철없고 무모한 결정이었다는 두려움이 뒷덜미를 잡지만, 용기 내어 이 표현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마흔 두 살의 청년으로, 앞으로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