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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Sep 18. 2020

그리니치 빌리지의  협상하는 여자

19세기의 조, 20세기의 조, 21세기의 조에 대하여

“돈 때문에 여주인공을 결혼시켜야 한다면, 내가 그 돈의 일부를 가져야겠어요(If I'm going to sell my heroine into marriage for money, I might as well get some of it).”


지난 겨울 개봉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 나오는 이 대사가 나는 좋았다. 원작에 없는 내용이지만, 조 마치(Jo March)가 프로페셔널한 작가로 발돋움하는 모습이 근사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가득 띤 채 뉴욕의 복작한 거리를 달리는 조. 어릴 적 나의 우상이었던 조라면 이처럼 당찬 청년으로 자랐어야 마땅하다.


출판사 사장 대쉬우드는 저작권을 넘겨주는 매절 계약을 제안하지만 조는 “목돈은 됐고 인세를 받겠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로 자신을 구슬리는 그에게 조는 ‘당신 주장대로 여자라면 당연히 결혼하는 결말로 내 소설을 끝내야 한다면, 높은 인세라도 받아야겠다’고 되받아친다. 조는 애초 5%로 제안된 인세를 6.6%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조에겐 꼭대기층이 어울리는데


이번 뉴욕 행을 앞두고 ‘그리치니 빌리지에 있는 조의 하숙집에 반드시 가보리라’ 맘먹었던 것은, 나의 오랜 친구 조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실재하는 조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종종 해보곤 했다.


조의 세계에 좀 더 가깝게 가려면 매사추세츠주(州) 콩코드에 있는 오차드 하우스(Orchard House)에 가야 한다. 오차드 하우스는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콧(Louisa May Alcott, 1832~1888)과 그 가족이 20년간 살았던 집이며 <작은 아씨들>의 주 무대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차로 4시간 거리인데다 내겐 자동차가 없다. 설령 어렵게 간다 한들 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문 닫힌 상태다.


조의 하숙집 주소는 맥두걸 스트리트 130번지(130 MacDougal Street). '비긴 어게인' 등 뉴욕 배경 영화들의 단골 촬영지인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국그릇 등 뉴욕 새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장만하러 소호의 크레이트 앤 배럴(Crate and Barrel) 매장에 가기 전, 워싱턴 스퀘어에서 버스를 내려 맥두걸 스트리트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처음 와봤는데, 맨해튼의 다른 동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과 푸른 가로수가 많아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 한 프랑스 식당은 ‘산토리니 블루’라고 할 파란색 차양 아래 같은 색 테이블보를 씌운 2인 좌석을 길게 늘여놓고 유럽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었다. 뉴욕대 본거지답게 뉴욕대 깃발을 내건 건물도 곳곳에 보였다.


130  MacDougal Street.

곧이어 조의 하숙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벽돌로 지은 3층짜리 타운하우스. 나란히 지어진 두 채의 집을 훗날 하나로 합쳤기에 현관문 2개가 사이좋게 붙어있다. 현관문을 감싸는 철제 기둥에 세월의 두께가 남아 멋스럽다.


조, 아니 루이자가 머물던 방은 2층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에게는 맨 꼭대기 층이 어울릴 것 같아, 하고 길 건너에서 건물 전체를 한 눈에 넣으며 생각했다. 조가 힘차게 뛰어 오르내렸을 계단에는 부랑자로 보이는 흑인 할아버지가 한참을 앉아 있다 어느새 사라졌다.     

     


6.6% 인세의 의미


조의 팬들에게 루이자 메이 올콧은 곧 조 마치이고, 조는 곧 루이자다. 네 자매 중 둘째, 호기심 많고 천방지축이며 글쓰기를 열망하는 소녀. 루이자가 조에게 자신을 깊게 투영시켰을 것이란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니까 올콧이 한동안 머물면서 <작은 아씨들>의 일부를 썼다는 이곳을 조가 머물렀던 커크 부인의 뉴욕 하숙집으로 여겨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So the curtain falls upon Meg, Jo, Beth and Amy. Whether it ever rises again, depends upon the reception given the first act of the domestic drama called Little Women.


메그, 조, 베스, 그리고 에이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이야기가 다시 이어질 지는 ‘작은 아씨들’ 1막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에 달렸다.


- <Little Women> 마지막 문단

      

루이자는 자신의 삼촌이 1852년부터 1870년까지 소유한 이 집에서 <작은 아씨들>의 마지막 문단을 썼다고 한다. 루이자가 곧 거윅이 창조한 조라면 그녀는 출간 계약을 맺고 이 집으로 뛰어와 콩코드의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빠른 속도로 휘갈겨 쓰지 않았을까. 6.6%의 인세는 <작은 아씨들>에 매겨진 실제 인세와 같다. <뉴요커>에 따르면 출판사가 루이자에게 매절 원고료가 아닌 6.6%의 인세를 받으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거윅의 영화를 계기로 오랜만에 <작은 아씨들>을 다시 꺼내 읽는 와중에 아동 문학가 코닐리아 매그스가 1933년에 펴낸 루이자의 전기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가 번역돼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뉴욕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에 갓 나온 이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전부 읽었다. ‘좌절 속에서도 작지만 빛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삶’. 매그스가 말하는 루이자의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루이자에게 '빛나는 희망'은 글쓰기였다. 가난, 그리고 가족이 루이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올컷 씨가 여자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꼭 써주면 좋겠어요.”

너무 절박해서 무엇이든 할 기세였던 루이자는 이번에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가난은 도전을 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루이자는 그 도전을 시작했다.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178쪽  

   

‘여자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출판업자 토머스 나일스의 요청에 ‘여자아이들을 잘 모른다’며 처음에는 거절했던 서른다섯의 루이자는 결국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작은 아씨들>을 쓰기 시작했다. 1968년 10월 책이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루이자는 이듬해 5월 <작은 아씨들> 2부를 출간했다. 이후 6.6%의 인세는 올콧 가족을 가난으로부터 건져 올렸다.     



조와 로리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

루이자 메이 올콧(왼쪽)과 최근 출간된 루이자의 전기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작은 아씨들>의 팬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의문은 왜 조가 이웃집 소년 로리와 결혼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나도 어릴 때 <작은 아씨들>을 수십 번 반복해 읽으며 조와 로리가 결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좀 더 커서 <작은 아씨들> 2부를 읽었고, 로리가 엉뚱하게도 에이미와 결혼하고 차라리 평생 혼자 살았으면 좋았을 조는 뜬금없이 독일 남자와 결혼하는 이야기 전개에 분개(?)했었다.


이상한 짝짓기는 ‘결혼한 행복한 여성’이라는 고리타분한 프레임을 루이자가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 <작은 아씨들> 성공 이후 루이자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소녀들은 작은 아씨들이 누구와 결혼할지 묻는다. 마치 그것이 여자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결말인 것처럼. 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조와 로리를 결혼시키진 않을 거야.’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작은 아씨들> 이후에도 꾸준하게 글을 써온 루이자에 대한 존경일까, 동의일까. 거윅도 영화를 ‘각자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작은 아씨들’로 몰아가지 않는다. 물론 조가 독일 남자와 결혼해 대고모가 물려준 대저택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진짜 결말이자 하이라이트는 <작은 아씨들> 원고가 인쇄되고 빨간 가죽 커버가 입혀지며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거윅은 “소녀가 소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소녀가 책을 얻는 것을 그리고자 했다( it’s not girl gets boy, it’s girl gets book)”고 말했다.


19세기의 루이자와 21세기의 그레타가 조 마치를 통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20세기의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을 탐독한 나는 생각한다. 조처럼 네 자매 중 둘째였고 책을 좋아했던 내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조를 좋아했었는지, 조를 좋아해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는지 선후 관계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둘 다였겠지. 연애나 결혼보다 나만의 인생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왔지만, 나는 20세기에 나고 자란 사람답게 예외 없이 모든 면에서 진취적이진 못했다. 그래서 21세기에 영리함과 현실 감각을 듬뿍 더해 다시 등장한 거윅의 조가 몹시 반가웠던 것 같다.     




나와 닮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

130  MacDougal Street.


그런데 반전이 있다. 루이자가 그리니치 빌리지의 삼촌 집에서 <작은 아씨들>의 결말 부분을 정말 썼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이 집을 소유한 뉴욕대가 루이자가 이 집에서 <작은 아씨들>의 결말을 집필했다고 밝힌 것 외에 진짜 그랬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조의 뉴욕 하숙집 가보기’를 버킷 리스트에 올려놨던 나로서는 김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매그스도 뉴욕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에 첨부된 연표에 따르면 루이자는 1968년 콩코드에서 <작은 아씨들>을 썼다. 1880년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올콧은 이 책을 보스턴에서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수잔 체버(Susan Cheever)라는 작가는 자신이 쓴 루이자 메이 올콧 평전에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의 집필은 ‘제조된(manufactured)’ 사실이라고 언급하며 “놀라운 점은 뉴욕대 기록 보관 담당자조차 그 사실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 아무 근거도 대지 못했다”고 일갈했다고 한다.


아무렴 어떠랴. 루이자가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작은 아씨들’의 한 대목을 썼든 그렇지 않았든, 이 동네에 수십 번 찾아간다 해도 조 마치를 만날 순 없다. 하지만 그리니치 빌리지의 낡은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겠다는 꿈을 키우는 21세기의 조들이 있으리라. 비단 이 동네뿐만 아니라 뉴욕이든 서울이든 세계 어디에든. 중요한 건 자신과 닮은 사람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아닐까.


비록 오늘의 미션은 세간 마련이지만, 이 거리를 뛰어다녔을 조처럼 추진력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맥두걸 스트리트를 걸어나오며 나는 다짐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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