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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Mar 10. 2018

길 위의 안식년

- Lost & Found

<허가제 VS 신고제>  

  

   1968년생 나는 2017년에 우리 나이로 50세였다. 반백이라니 정말 ‘헉’ 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지나간 50년을 되돌아보니 특별한 사건, 사고 없는 평범한 50세 대한민국 아줌마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십 대와 이십 대, 점점이 드물게 생각나는 삼십 대와 사십 대까지 이제 반백의 고개에서 나머지 생애를 위한 세리머니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다! 무조건 축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셀프로 축하하고 셀프 선물을 안기고 셀프 댄스로 마무리한다면 완벽한 세리머니 아닌가. 잠복해 있던 역마살이 꿈틀거리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결국, 머릿속 어딘가 박혀 있던 ‘산·티·아·고·’가 종소리처럼 또렷하게 울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귀에서 종소리가 댕댕댕 들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운명적인 만남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귓전을 때리듯 명확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홀로 걷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완벽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오롯한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나온 50년 인생 동안 엄두도 못 낸 ‘지랄 총량의 법칙’을 시도할 타이밍이다. 그 무렵 읽은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윌리엄 새들러)의 한 구절은 마지막 확인을 하듯 내 마음을 강타했다.     


 “‘자유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마음 깊이 믿는 대로 행동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윌리엄 새들러)    


 나는 이제 그만 주변인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여태 나 자신을 속이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무엇이라는 술래가 되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속한 한국 사회가 정해준 역할놀이를 그만두고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내 결정이 실현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 그중에서도 남편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내기까지 갈등과 진통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내가 넌지시 꺼낸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남편을 당황을 넘어서 황당과 ‘멘붕’에 이르게 했다.

더군다나 혼자 가겠다는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두 아이 중 큰애는 군에 입대했고 작은아이도 대학에 들어갈 터이니 엄마로서 역할은 어느 정도 완수했고 가정주부와 아내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인생의 안식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확신하고 있던 터였다. 남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나는 단번에 산티아고 여행과 영국의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 방문까지 6개월 여행을 선언했다. 남편은 여전히 내 선택과 결정에 굳은 표정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안전 문제를 들며 홀로 여행에 난색을 표하고 남은 가족은 생각지도 않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이라며 냉전에 들어갔다. 그의 불안과 불쾌감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난 여전히 내 선택을 접을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협조 없이 결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해와 설득이 필요했다. 우선 내가 왜 이런 선택과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했다. 나보다 먼저 반백을 넘긴 남편은 ‘내가 원하는 특별한 세리머니’를 이해해야 했고, 국내가 아닌 지구 반대편으로 가서 새로움을 극대화하고 싶은 나를 이해해야 했고, 기존의 모든 익숙함으로부터 예측 불허의 모험과 도전을 경험하고 싶은 내 욕망을 이해해야 했다.

연애 기간과 결혼 생활까지 합쳐 25년, 내 나이 반생을 함께한 사람이지만 나를 어떤 역할도 아닌 자연인인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기는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떠나고 돌아옴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라고 말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떠나는 날까지 흔쾌히 응원하고 격려하기보다는 굳은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가족과 대조적으로 과천에서 함께 클럽 활동하는 지인들은 “대단하다”, “부럽다”, “용감하다”며 응원과 부러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

떠나자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나 살던 곳으로부터

나 아는 이 없는 곳으로

내가 아는 이 없는 곳으로    

익숙함과 낯섦이 정반합으로

새로움을 잉태하고 성장시키는

황량한 고립의

그곳으로


<지랄 총량의 법칙> 

 

  2017년 나이 50에 스스로 안겨주는 자축 선물, 안식년을 남들은 ‘특별한 용기’라고 했다. 나 스스로는 용기라기보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뒤늦게 검증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천명을 실현할 나이에 거꾸로 제2의 ‘사추기’를 맞아 십 대 아이처럼 좌충우돌 기존의 틀을 거부하며 무지를 핑계 삼아 무모하게 도전하는 돈키호테쯤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지난 50년의 익숙함을 버리자.

지금 내 모습을 형성한 오랜 생활 패턴, 사고와 행동 스타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생활 장소, 환경 변화는 필수다. 삶의 현장을 그대로 두고 옛것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 다시 구태로 안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집으로부터 가장 먼 곳, 가족을 떠나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야 사춘기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조건 반항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직관적인 자기방어였던 거다.

일단 떠나겠다는 결정 하나만으로도 폭발력은 충분했다. 그동안 꾹꾹 눌러 두었던 세포 하나하나가 아우성을 치듯 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딱딱한 옥수수 알갱이들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막 터져 나오듯이 무엇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던, 미뤄 두었던 버킷리스트의 항목들이 밀려 나왔다. 50세 이후와 이전으로 타임 라인이 변곡점을 찍듯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 느낌이었다. ‘땅’ 하고 달리기의 출발을 알리는 그 순간처럼 내 심장은 간질간질 오글오글거렸다.     


  둘째, ‘너답게, 나답게’의 프레임을 깨자. 첫째의 익숙함의 연장선에서 ‘무엇답게, 누구답게 프레임’은 자의로 또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기대치들을 다시, 한 번 뒤집고 흔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여자니까 엄마니까 이래야 하고 성실하니까 착하니까 이래야 한다는 Shouldbe 놀이는 여태 충분히 했다. 누군가 나에게 정해진 틀을 고수해야 한다고 기대한다면 그건 그 사람 생각의 자유일 뿐 난 더 이상 그 기대를 만족시킬 필요도, 의무감은 더더구나 없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 무언의 압력에 압도되어 자신의 목소리와 욕망, 필요가 얼마나 많이 폐기되었나. 자신을 먼저 만족시키고 사랑하는 것이 거대한 밑바탕으로 든든하게 자리한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덤으로 흘러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먼저 집중하고 내 욕구, 욕망, 감정을 챙긴다는 것 또한 연습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갓난아기는 일정 기간 엄마의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아야 안정적인 사회성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진정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유아기에 애정결핍과 분리불안을 겪었다면 마음속에 성장이 멈춘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고 건강한 성숙의 단계로 이어가야 한다. 인생 2막에 앞서 1막에서 포기했거나 거절당했거나 미루었거나 폐기했던 또는 상상만으로 그쳤던 것들을 생각날 때마다 토닥여 주고 실천해 보기로 했다.


  가장 이기적으로 최대한 자유롭게 ‘나’를 대방출하는 거다. 지랄의 향연이 된다 하더라도 충분히 지랄 맞게 가능한 한 미련 없이 자기 검열이 온다 해도 지랄 총량의 법칙을 충족시키는 거다.

그래서 난 6개월 동안 집을 떠나 홀로 여행하는 것이 미뤄 둔 지랄을 방면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불행을 피하는 선택이라고 믿었다.  
                                                                                                                                      


<떠나라!>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를 위해 떠나는 것만 결정한 채 장기 순례에 관한 많은 정보와 여행기들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겨우 준비물 목록과 비행기 왕복 티켓, 파리에서 첫 출발지까지 이동할 테제베(TGV, 프랑스 고속열차) 티켓, 파리 도착 첫날 숙소만 예약했다. 아, 새 신발은 한 달 전에 사서 발에 익숙하도록 미리 신고 다니긴 했다. 그 이외 많은 정보와 준비물은 현지에서 해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치 오지 탐험이라도 떠나는 아이처럼 무지한 채 무모한 모험심과 열정만을 챙긴 셈이었다. 순전히 내 힘으로 닥치는 순간순간을 살아 보고 싶었다. 나와 달리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는 많은 이들은 항공권, 숙박, 관광지 예약에서 교통정보는 물론 맛집 정보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빛의 속도로 알뜰하게 이용했다. 실제, 순례 기간 동안 나는 그들의 깨알 정보를 얻어 쓰기도 했다.

 이전에 나는 간단한 쇼핑에서부터 인생의 중요 결정들을 나름 꼼꼼히 따져보고 준비해서 실행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준비에 비해 그 결과들이 늘 비례해서 만족스러웠던 것 같지는 않다. 때론 우연히, 때론 운 좋게 결과가 기대 이상이 되기도 했고 때론 정반대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예상과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이번엔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그때그때 내 상태와 상황을 먼저 고려해서 선택하고 실행해 보기로 한 것이다. 결국, 성지 순례의 길 산티아고의 A부터 Z는 고사하고 산·티·아·고· 이름만 듣고 떠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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