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H Choi Aug 01.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55  수교도와 아기돼지 통구이


  오늘은 세고비아에 가려고 숙소를 나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왔다. 오늘까지 노동절 휴가라 세고비아행 버스 티켓 줄도 만만찮다. 역시 한국인 관광객도 많다.


  한 시간 남짓 버스 타는 동안 옆 사람에게 쓰러질 정도로 졸았나 보다. 시끌벅적한 룸메이트들 덕분에 밤새 깊은 잠을 못 잤다. 나는 기질적으로 싫은 것이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어떤 악센트나 음색이 강력하면서도 높은 톤의 끊임없는 수다에 저절로 불쾌해진다. 심리적, 물리적으로 피하고 싶을 만큼 불편한 것들이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비 온 뒤 날씨도 완벽하고 기온도 관광하기에 적당했는데도 미어지듯 몰려오는 사람들 틈에 정신이 산만하고 피하고만 싶어 사람들이 드문 일명 백설공주의 성(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배경이 된 성) 아래 숲길로 내려오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초록 잎과 풀, 꽃, 새소리, 바람 소리가 자연스럽다. 사람 무리를 떨어져 혼자만 살 수 없음에도 떼 지어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같은 거부 반응이 나오곤 한다.


  세고비아에서 최고는 역시 로마 시대 세워진 수도교(Aqueduct)다. 진흙도 아닌 화강암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올린 것으로, 최고 높은 곳은 건물 5층 높이(?) 정도라고 한다. 17킬로미터 떨어진 산의 계곡물을 끓어 왔던 실제의 관개수로(canal)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인간의 도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도 놀랍지만 기원전 1세기, 2000년 전에 이 구조물을 세웠고 현재까지 건재한 것도 불가사의이다. 처음 도착한 곳에서 수로가 끝나는 곳까지 따라가 봤다. 언덕으로 서서히 올라갈수록 수로의 높이는 낮아지고 결국 지면 바닥까지 내려와서 끝이다. 그 길이가 총 13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나머지 4킬로미터는? 전쟁 중 이슬람이 일부 파괴하고 나중에 이사벨 여왕이 복구시켰다고 하니 남아 있는 수로의 길이는 내가 2,30분 안에 걸은 거리 정도니 2킬로미터 이하쯤인가? 수로 끝의 구멍을 들여다보니 커브가 없었더라면 그 물길은 한 점으로 보였을 텐데. 수로의 끝이 궁금한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일부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오늘날 수도시설은 모두 지하에서 파이프를 통해 펌프로 끌어올려 개개인의 집과 빌딩으로 공급된다. 건물이 높을수록 전기를 이용해 끌어올려야 하니 중력을 거스르는 반자연적이다. 이 정교하고 거대한 구조물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은 대만족이다. 이 수로의 물이 이사벨 여왕의 궁전, 일명 백설공주의 성까지 흘러갔다니 그 길이가 얼추 13킬로미터에서 17킬로미터가 될 것 같다.


  거대한 수도교 아래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애저구이 식당들이 연휴 손님들로 가득하다. 미식의 나라 스페인이 자랑하는 음식, 새끼돼지구이(cochinillo asado) 요리는 어미젖만 먹은 생후 21일 이전 새끼돼지를 양념 없이 통으로 구워 겉은 바삭하고 살은 부드러워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먹는 음식에 토를 달고 까칠하게 보고 싶진 않지만,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사찰음식 전문가 선재 스님 말씀이 떠올라서일까? 아무거나 먹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간장부터 끊어라.”라고 일침을 주셨다. 전통 발효 식품 된장, 고추장, 간장이 우리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생명을 살리는 음식인데 반해 화학간장은 결국 병원비만 나중에 더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애저 구이가 가공식품보다 더 건강한 음식이긴 할 것 같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생명을 통구이로 요리해서 즐기는 것과 ‘음식은 생명이다’라는 그의 말이 자꾸 오버랩된다. 생존을 위한 최소 살생 이상으로 남의 살을 먹는 건 인간뿐인 것 같다.


  세고비아에도 당연히 ‘우아한 귀부인’ 느낌의 대성당이 있고 이사벨 여왕의 왕궁 백설공주의 성, 마요르 광장이 볼거리였지만 나를 사로잡은 건 로마식 수도교와 성벽을 둘러싼 한적한 숲길 산책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Sabbatical Year on the roa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