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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Aug 29.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67  절대 안정! Slow & Lazy


  어제 세비야에서 9시간을 달려 포르투갈 리스본(포르투갈어로 리스보아 Lisboa)에 늦은 밤 도착했다. 세비야를 떠나 포르투갈 국경을 넘으면서 여권과 짐 검사에 시간이 한참 걸렸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라 간단할 줄 알았는데 테러 위험 때문인지 이민자 단속인지 검문이 삼엄했다. 포르투갈에 넘어오니 자연 풍광은 스페인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분위기다. 왠지 차분하고 소박한 느낌이랄까. 늦은 밤 터미널 주변 야경도 어두운 편이고 사람들도 적었다. 피곤하던 차에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해서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발견한 침대 앞 조망이 여태 묵었던 도미토리 중 최고다. 멀리 바다같이 넓은 강(대서양으로 흘러가는 테주 Tejo강)이 보이고 유럽 중세 이후 건물들이 차곡차곡 예쁘게 들어서 있다. 오늘은 정말 편안히 가만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조식 제공까지! 아직까진 완벽하다. 음식 종류도 기대 이상으로 풍성한 편.


  2층 침대 5개에서 10명이 정원인 도미토리 방에 대여섯 명이 묵고 있나 보다. 혼성이라 남자도 둘인데 다행히 모두들 얌전하다. 아직 코골이는 없는 듯. 다들 늦은 아침을 먹고 단장에 한창이다. 난 침대에 엎드려 멋진 강과 도시 전망을 즐기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절대 안정!


  순례 이후 스페인에서 유적지 관광과 도심에 너무 지치고 피곤했었나 보다. 텅 비우고 멍 때리고 싶으니. 다행히 포르투갈은 차분하고 편안히 받아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라고 속삭여 주면서. 도심이지만 조용한 편이고 호스텔은 편리하고 쾌적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에서 리스본은 인상적이었다. 그다지 튀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고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영화 속 이야기의 이야기 속에는 1974년 포르투갈 40년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비극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었지만. 현재 리스본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무혈혁명으로 이기고 얻은 평안과 안정 위에서 서서히 느리게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2016년부터 그다음 해 초까지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우리나라도 이제 사이다 같은 정치 뉴스들로 국민을 즐겁게 한다니 평온과 안정이 강물처럼 흐르기를 조심스레 기도했다.

리스본의 첫날은 slow & lazy 토요일이다.


느지막이 오후에 강가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토요일 오후라 관광객과 가족 단위 지역 주민들이 모두 강가로, 광장으로 마실 나온 모양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산미겔 음식 시장처럼 여기도 더 큰 규모의 Time Out Market이라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나 싶을 만큼 꽉 차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강가를 따라 걸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데이트하는 사람들, 왁자한 친구들, 사진찍기 바쁜 여행자들, 길거리 공연자들, 노점상들이 보인다. 원래 땅의 모양 그대로 7개의 언덕 위에 들어선 리스본에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부터 버스, 유명 관광지엔 툭툭(삼륜 택시)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이 모두 뒤엉켜 공존하고 있다. 내일은 구식 트램을 타고 도시를 돌아볼까 싶다. 강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곳이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엄청 큰 돈 호세(Don Jose) 1세 동상을 가운데 두고 ㄷ자로 펼쳐진 광장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광장 한가운데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는 개선문 안쪽 아우구스타 쇼핑거리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거리 공연자들의 흥겨운 연주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춤을 추었다. 춤추는 이도, 구경하는 이도 모두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빵집 앞에서 나도 끼어들어 치즈랑 생선살이 들어간 크로켓도 사 먹고 포르투갈에서 가장 맛있다는 에그타르트도 시식! 에그타르트의 속은 부드럽고 고소하고 겉은 바삭한 게 계속 먹고 싶은 맛이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건물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낯선 리스본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사람들은 오래되고 낡은 건물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벽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하고 문틀이며 지붕, 창문 난간들도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새 그대로다. 그래도 묘하게 화장 안 한 영화배우 김혜자 씨나 주름살 그대로 나이 들어간 오드리 헵번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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