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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Oct 12. 2018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71 팩트 체크


  리스본 안녕~

처음 도착한 다음 날 아침 테주강 양편을 보며 호스텔 제공 조식에 완벽한 날이라며 좋아했다. 떠나는 오늘도 그날 아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 달라지는 건 내 마음과 태도일 뿐. 여전히 주홍색 지붕에 삐죽이 나온 다락방 창문들이 정겹고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그 아래 강물과 나란히 고요히 흐르고 있다.


  포르토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철을 타러 왔다. 세비야에서 두 개의 터미널을 오락가락했던 해프닝을 피하려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물었고 인터넷 검색까지 했지만 정보들이 일치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검증하러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일은 살짝 모험이라 생각할 수 도 있고 짜증스럽거나 긴장 가득한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역시 마음과 태도의 문제다. 어떻게 느끼는가는 본인의 상황이 결정할 터. 내 경우엔 복잡한 도시로 갈수록 긴장 스트레스가 크다. 참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길을 잃을 경우 헤매면서 그날 한정된 에너지가 방전되곤 한다. 결국, 다음 일정이 줄어든다. 휴대폰 배터리만 정직한 게 아니라 내 몸의 배터리도 그렇다.

 

  오늘은 다행히 성공적이다. 사실 확률적으로 실패보다 성공 케이스가 더 많았을 것이다. 실패가 더 쓰리게 기억에 남아서일 뿐. 우리의 기억 시스템은 참으로 방어적이다. 원시시대부터 살아남느냐 죽느냐라는 생존 문제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일까?


  포르토 버스가 중간에 파티마에서 한 번 정차할 때 한국인 모녀가 내 뒤에 탔다. 나보다 연배가 더 돼 보이는 어머니는 같은 나라 사람 만났다고 엄청 반가워하신다. 한동안 한국인을 통 못 보셨다고. 포르토에서 헤어질 땐 손을 꼭 잡으시며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측은해하셨다. 한국 어머니들의 정을 듬뿍 느꼈다. 포르토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도 구글 맵을 보며 잘 찾아왔다. 인간 GPS를 폐기한 것은 아니고 병행하는 것.


  포르토도 엄청 큰 항구도시 같아 보인다. 리스본만큼 활기가 넘친다. 숙소는 시내 곳곳의 중요 유적지들이 밀집한 구시가 상벤투 기차역 앞에 있었다. 구시가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야 할 것 같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눈에 띈다. 몇 분 내려가니 바로 도루 강이다.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강가에 크루즈며 카페들이 즐비하다. 와이너리 방문, 크루즈, 버스투어 등 다양한 즐길 거리로 관광객을 모집하는 여행 에이전트들도 곳곳에서 호객 중이었다. 강 건너편 주홍색 지붕 집들 위로 케이블카도 둥둥 떠 강을 건너가고 있다. 도루 강의 명품 ‘동 루이 1세 철교’ 규모는 어마어마하고 높아서 다리 위에 서면 포르토 전체 조망도 가능하다. 그 위엔 트램과 인도교가 함께 있어서 사람들이 양쪽으로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1886년에 에펠의 제자가 172미터 길이의 철제 아치형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3시간 30분 정도의 버스 여행 피로를 살짝 풀어줄 만큼만 어슬렁거리려고 했다가 자꾸 여기저기 구경하게 됐다. 숙소 바로 뒤 성당 생 미세리코르디아 앞에서 반가운 표식을 발견하고 한참 바라봤다. 노란 화살표! 산티아고 순례길 890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나의 인도자였던 방향 표시다. 포르토에도 순례길이 있다 더니 이 교회 앞을 지나가나 보다. 갑자기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확 들었다.


  이틀 전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또 다른 버전을 여기 포르토 대성당에서 보는 것 같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여전히 한껏 치장한 화려함의 극치라면 포르토 대성당은 한때 대단히 화려했음을 짐작하게 할 만큼 곱게 늙으신 할머니 같은 느낌이다. 옛날 보물을 고이 모셔두고 하나하나 펼쳐 보이며 옛일을 회상하는 듯 교회 안, 회랑은 파란색 타일, 아줄레주 장식으로 아름다웠다. 거의 문 닫을 시간에 가니 줄도 서지 않고 사람도 없어서 호젓하게 감상하기 딱이었다. 성당 마당에 높이 솟은 탑은 보기엔 멋졌는데 사연은 섬뜩했다. 수치심의 기둥이라고 옛날에 죄인을 묶어두는 용도로 썼다니.


  포르토 첫날 오후부터 이끌리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미로 같이 오밀조밀한 동네 골목에서 포르토의 속살들을 엿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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