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안식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로니무스 수도원 가는 길 숙소에서 걸어가기엔 좀 멀어 보여 버스를 선택했는데, 버스 안에서 엉뚱한 역을 가르쳐 준 젊은 여성 덕분에 한 시간 이상을 길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헤맸다. 우연히 같은 처지에 있는 듯한 프랑스인 부부를 만났고 택시 합승을 하고 요금을 나눠 내자고 즉석 제안을 했다. 우선, 택시기사에게 얼마인지 물어보니 9유로 아니면 10유로일 것 같다 하기에 9유로 해달라고 ‘please×2’를 하면서 올라탔다. 수도원 가까이 왔을 때 미터기는 7유로 정도였는데 그는 9유로를 요구한다. 내 요구대로 하는 셈이니, 기사 아저씨 오늘 운수 대통하세요~ 아무튼, 일인당 3유로씩 내고, Bon voyage~(즐거운 여행)
멀리서 봐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풍모였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성당에 버금갔다. 당연히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고. 어딜 가도 효도여행(?) 나오신 시니어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수학여행쯤 온 청소년들, 끝으로 가족 단위, 자유여행자들 순이다. 옆으로도 상당히 긴 수도원 건물과 성당인데 반이나 3분의 2 정도는 박물관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티켓 사는 줄도 길다. 나는 수도원 입장용만 구입했다. 아침에 너무 힘을 뺐다. 기프트숍을 지나 수도원 2층 회랑에 도착하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교황님의 옷에 놓아진 금박 자수만큼이나 섬세한 문양들이 회랑 기둥 위부터 아래까지 눈부시다. 위층과 아래층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사각 정원(중정)도 수도사들의 심신을 평안하고 차분하게 할 만해 보였다. 포르투갈을 대항해시대의 선봉이 되게 한 두 영웅,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엔히크(Henry, the navigator) 왕자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이 수도원과 성당의 규모와 화려함만 봐도 그들이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대단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스페인에 치인 이인자가 아니라 일인자로 등극할 만한 부를 가져다주었으니 당연지사일지도. 그래서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이 성당 입구에 안치되어 있다. 거의 왕에 버금가는 대접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지진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항해 왕자 엔히크와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 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1502년 마뉴엘 1세가 짓기 시작해 1672년에 완공되었다. 성당 2층에서 1층의 성당 내부를 볼 수 있는 발코니가 널찍하다. 발코니 한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그 어느 것보다 눈길을 사로잡았다. 십자가 저 위에서 고개를 떨구고 계신 피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처절하다. 대성당으로 내려가 주 제단(main alter) 앞에 앉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길 기다리기도 하고 교회를 구경거리로만 보고다닌 것에 대한 반성도 할 겸 한참을 앉아 있었다. 관광객이 많다 보니 주기적으로 ‘Silence(조용)’라고 안내가 나온 다. 잠깐뿐이지만 사람들은 ‘여기가 교회지’라고 새삼 알아차린 듯 고요해진다. 여태 내 신앙생활이 그런 수준이다. 실컷 떠들고 구경하듯 살다가 ‘앗, 주님!’ 이런 식이다.
원래, 내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산티아고 순례로 시작해서 마지막엔 영국의 기독 공동체 브루더호프(Bruderhof)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크리스천들이 우여곡절 끝에 이룩한 종교 공동체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깨닫고 배우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올해 방문 인원 초과로 내년에 가능하다고 거절당했다. 3개월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 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도원을 돌아보며 수도사들과 수녀님들의 맑은 얼굴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진다. 특히 성당에 울려 퍼지는 수녀님들의 성가는 얼마나 평안하고 경건한지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어쩌면 더 유명한 것이 에그타르트다. 당시 달걀흰자로 흰 옷에 풀 먹이고 남은 노른자를 이용하는 차원에서 만든 타르트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디저트가 됐다니 재미있다. 이미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있는 중인데 가게마다 맛이 참 다르다. 달인이 있긴 있다. 열이 확 오를 때 고소하고 부드러운 에그타르트에 시나몬 가루를 뿌리고~, 슈거파우더를 솔솔 뿌려서 커피와 먹으면 완벽한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