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batical Year on the road
오늘은 일찌감치 구엘 공원에 가기로 정했다. 지난 밤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입장권을 며칠 후 날짜로 카드 예매해뒀다. 바로 다음 날 방문 예약은 원하는 시간엔 없었다. 역시 소문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인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관광 최고 시즌엔 어쩔 수 없는 건가. 슬로 여행자에겐 최악의 조건이 다. 지난 밤엔 젊은 여행자들이 자정 넘어 서너 명이 들어와서 키득거리고 떠들며 수면 방해 :( 젊은 남자애들 웃옷도 안 입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자식 같으니 봐준다. 이 나이에 도미토리에 자는 내가 좀 그렇긴 하지만.
숙소에서 전철로 한번에 가는 노선을 택해서 구엘 공원과 가까운 역에 내렸다. 가깝게 연결되는 전철 출입구를 찾는 것부터 인간 내비게이션 4명의 도움을 받아 관광객 물결에 합류했다. 언덕으로, 언덕으로 올라가는 야외 에스컬레이터가 정상 턱밑까지 이어져 있었다. 참 쉽게 바르셀로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왔다. 언제나 파란 하늘의 스페인도 대도시 바르셀로나에선 대기오염을 피하긴 어려운가 보다. 멀리 대서양의 뿌연 수평선과 눈에 띄게 삐죽삐죽 솟은 현대 건축물들이 낮은 옛 건축물들과 섞인 스카이라인이 차례로 보였다. 내려가는 길에는 입장료 없이 즐길 수 있는 구엘 공원 뒤편으로 조성된 가우디의 자연공원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했지만 당일 입장은 저녁 7시 30분에나 가능한 티켓만 판매 중이었다. 빨리 포기하고 배려심 넘치는 가우디의 무료 공원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유료 지역을 기웃기웃하며 휴대폰 사진이지만 줌을 있는 대로 당겨서 내부를 찍어본다. 마치 남 먹는 거 옆에서 부러운 듯 쳐다보는 기분이 이럴 것 같다. 바위와 작은 돌을 이용해 만든 회랑 아래에 앉아 쉬자니 서로 다른 국적 여행팀의 가이드가 영어와 한국어로 똑같은 내용의 해설을 하고 있었다. 돌과 바위, 흙을 이용해 만든 동굴 같은 회랑은 이질감 없이 자연과 가장 가깝게 만들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회랑 기둥은 물론 회랑 천장은 자신의 계획대로 자르거나 새로 만들지 않고 원래 재료의 모양과 크기를 그대로 잘 끼워 맞추어 어느 한 부분도 같은 모양은 없으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에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라곤 없다. 돌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저마다의 모양이 있다. 끼워 맞추기 위해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잘라버리는 독단적 재단이 아니라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배려와 존중이 가우디 건축의 굳건한 베이스다. 그의 신실한 신앙과 철학 위에 쌓은 건축은 실용성을 넘어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예술적 지평을 구축한 것 같다. 건물의 지붕 끝을 둘러 길게 이어진 유선형 벤치에 붙인 타일 하나하나도 같은 것은 없었다. 서로 다른 조각으로 퍼즐처럼 합체해서 새로운 하나가 탄생할 뿐. 유료 공원 내부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멀리서도 그의 천재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땡볕 아래 한 시간 이상 걸어 그의 처녀작이라는 카사 빈센트를 보러 갔다. 헐! 공사 중이다. 다시 되돌아서 전철을 타고 카사 바트요로 간다.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3만 원쯤. 다시 헉! 아무리 정부 보조 없이 민간이 관리한다지만 너무 비싸다. 당연히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짧다. 건물 밖에서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사진 찍기 바쁘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당대 유명 건축가 3명의 건물이 고맙게도 같이 나란히 있다.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여신들의 질투심을 이용해 전쟁까지 일으킨 사과 다툼처럼, 서로 미모를 경쟁하듯 세 개의 서로 다른 건축물 중 어느 것이 제일 일까? 카사 바트요는 1900년대 초 막 등장한 신흥 자본가, 바트요의 집을 건축해준 것이다. 당연히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눈에 띄는 특별함, 차별성을 원했을 것이다. 당시 건축 예술의 천재 가우디는 의뢰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당대, 역대를 훨씬 앞서가는 미래 지향적 개념들과 가치를 카사 바트요에 담아냈다. 저택의 외부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워낙 당대의 건축 스타일과 다르기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그의 건축 철학과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건물 내부도 기존의 틀을 훨씬 넘어선 파격적인 설계! 특별한 장식들과 구조는 천재적 상상력의 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상상하지 않았다면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을 내놓으니, 상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바르셀로나에 오던 날부터 시작된 두통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은 조퇴다. 도심의 혼잡과 소음, 담배 냄새에, 게다가 30도가 넘는 땡볕 더위까지 몸이 당최 견디기 힘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