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안식년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일어나 보니 8개의 침대 중 7개에 남자들이 자고 있었다. 나만 여자였다. 혼숙에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웃통인지 뭔지 벗은 남자들 때문에 애매하고 곤란하다. 어제 여행노트를 정리해 SNS에 올리고 아침으로 냄비밥을 해먹었다. 다른 숙소로 옮기는 날 아침에 한국인 투숙객 두 분을 주방과 방에서 만났다. 한 분은 내가 오늘 다시 체크인할 곳에서 이쪽으로 오고, 난 그분이 있던 곳으로 가고. 또 다른 남자분은 어젯밤 2시에 와서 한 방에 잤던 분. 한국 떠난 지 8년 된다는 그와 전철을 같이 타고 나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산티아고 순례에 관심이 있다며 이것저것 물었다. 새로 옮겨 온 숙소는 대규모 그룹 여행자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유스호스텔이다. 산속에 있으니 일단 한적하고 초록에 싸여 있어서 안정감이 든다. 휴우~ 다행이다.
오늘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국철을 타고 구엘 역에 내려 구엘 성당을 가는 여정이다. 지하철이 아니라 국철 구간이다 보니 지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초록이 많아져서 반갑다. 시골 역처럼 무인 역사에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드물다. 가우디의 작품이 있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서 일까. 아무튼 오랜만에 인산인해가 아니라 평화롭다. 역에서부터 안내소이자 티켓 박스까지 안내용 검은 발자국이 길 위에 이어져 있다. 흠, 마음에 든다. 찻길 하나 건너자 마을이 보이고 순례길 같은 오솔길로 발자국이 이어진다. 초록 나무들이 너무 반갑다. 한가로우니 더욱 좋다. 이런 모든 기운이 모여서일까? 비록 미완성의 예배당만 있지만 구엘 성당은 이제껏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본 성당들을 다 잊어버리게 했다. 엄청난 스케일이 아니라, 너무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위엄과 권위가 풍겨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빛나는 기품이 흐르고, 과시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면서 어느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이용함이 없는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와 존중이 교회 건물 전체에 흐를 수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니 더더욱 말문이 막혔다. 이런 교회라면 전도하지 않아도 홀린 듯 다닐 것 같다. 높지 않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유선형 기둥들, 길이도 둘레도 재료도 규격대로 맞춘 한 가지가 아니라 원래 모양과 상태를 변형시키지 않고 최대 존중해서 있어야 할 곳에 세워둔 것 같다.
교회 방문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밤 9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에서 여전히 해는 중천에 있다. 조명을 켜지 않은 교회 안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또는 간유리 조각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자연광만으로도 충분히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나비처럼 열리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동물의 척추나 식물의 받침을 연상시키는 천장이며 벽, 전체 공간이 모두 물 흐르듯 부드러운 유선형이다. 예수상과 마리아상도 과장 없이 친근하고 높이 세우지도 않았고 의자들도 모난 각 하나 없이 부드럽게 처리가 된 2인용 나무 의자들이다. 가만히 앉아 소박한 제단을 바라보며 한없이 낮아지고자 한 예수님을 바라본다.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아 꼭꼭 씹듯이 구석구석 하나하나 눈길을 주고 만져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을 작업하던 중 귀갓길에 전차에 치여 버려지는 바람에 죽어간 가우디가 성자처럼 느껴졌다. 당대 최고의 천재 건축가가 걸인인 줄 알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길에 버려지고 병원에서 거절당한 것은 그의 소박한 옷차림 때문이었다니. 신과 자연 앞에 겸손했던 천재 건축 예 술가가 일생을 통해 이룬 성취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