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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Jan 13. 2019

길 위의 안식년

-Sabbatical Year on the road

Day 81  스페인, 가우디가 먹여 살리다


  숲 속에 자리한 호스텔에서 안도하던 몸이, 가운데 부분만 유난히 푹 꺼진 침대 때문에 초록의 안정감과 고요함을 싹 잊어버리고 허리 불편한 것에만 반응한다. 유발 하라리가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더니 딱 그렇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에 내려 가우디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상 파우 병원이 나타난다. 카사 바트요와 경쟁에서 이긴 카사 레오 모레라를 건축한 몬타네르의 작품이다. 가우디와 함께 당대 최고 건축가였던 그가 은행가 파우 길의 기부를 받아 세운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고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이다. 몬타네르는 ‘예술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철학을 이 건축물에 담아내려 했나 보다. 다양한 색상의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을 고딕 양식과 카탈루냐 스타일로 버무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가 필수라고 해서 밖에서만 들여다봤다. 일부 바깥 건물만 봐도 대가의 작품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 작품이다. 부디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의 회복과 치유까지 경험하길 바라본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사그라다 주변엔 미리 예약한 입장시간에 맞춰 들어가려고 대기중인 사람들과 무작정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이미 당일 입장은 불가하다. 사그라다 성당은 입장객들의 티켓 수입과 기부로만 관리, 건축되고 있다니 전 지구적 펀딩 프로젝트다. 내가 낸 입장료로 사그라다에 벽돌 한 장 올렸다 생각하니 왠지 더욱 감동스럽다. 가우디 사후에도 다른 건축가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여전히 건설 중이고 2030년쯤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약 20년쯤 후 완성된 모습은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현재는 크레인과 공사판이 함께 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위용을 해치진 않는다. 압도한다는 것이 바로 이럴 때 정확할 것 같다. 여태 봐 온 대성당, 교회 건축 양식은 그의 상상력과 아이디어 속에 배어있을 뿐 전면에 드러난 것은 초현실적인 SF영화의 한 배경 같은 분위기다. 지구에서 탄생하고 부활한 인간들의 신이 전 우주에 가스펠(기쁜 소식)을 발신하고 있는 형상이다. 가장 지구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가장 지구적인 상징들로 형상화한 그의 기독교관은 네 개의 파사드(정면)와 성전 내부 인테리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개의 파 사드에서 첫 번째 주제, 예수 탄생을 사실적인 조각으로 섬세하고 빈틈없이 수려하게 표현하고, 두 번째 수난사는 예수의 공생애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를 현대적인 조각 스타일로 묘사해냈다. 50미터 높이의 옥수수 모양 탑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면서 타워 밖 전망과 타워 내부 천공으로 들어오는 빛에 감탄하고, 달팽이 모양 계단을 따라 뱅글뱅글 돌아 1층 예배당으로 도착한다. 예배당을 둘러싼 사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은 차가운 파란색 계열에서 서서히 뜨겁게 타는 듯한 붉은 기운으로 퍼져간다. 예배 공간을 가득 채운 자연광만으로 이토록 경건함을 끌어올리다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다.


  온 세상 밝히는 빛처럼 인간으로 오신 예수는 고개 떨구지 않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 기도했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매달려 계신다. 교회 천장은 물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도 역시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나무, 꽃, 동물의 모양들이다.


  어제 구엘 교회 후 다시 한번 그의 천재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전 스페인의 성당들이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었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로 데려다 놓은 듯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 카탈루냐만의 자랑이자 유산이 아니라 전 지구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19세기 말에 이미 초현실적 이미지를 종합예술 건축으로 총화 하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워 멍해질 정도다. 미완성 구엘 교회의 수백, 수천 배 크기지만 그의 기본 콘셉트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그의 모든 철학과 가치들이 온갖 상징으로 재현된 걸작 중의 걸작,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인류의 자존심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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