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길을 대중교통으로 찾아가야 하는 날 돋보기가 없으면 지도앱을 보기 난감할 때가 있다. 지도앱을 확대해도 그 안에 글씨들은 커지지 않는 것이 가끔 야속하다. 예를 들어 지하철 출구 번호가 식별이 되지 않는다. 3번인지 8번이지... 안경이 아닌 진짜 돋보기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 싶다.
그럴 땐 화면을 캡처해서 갤러리에서 사진으로 열어 확대해서 보고 있다. 다행히 아주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장거리 여행 시 차 안에서 볼 책 한두 권은 꼭 챙겨 다닌다. 우리 아이들은 차에서 책을 보면 멀미가 난다는데 나는 여행길 차 안에서 책 보는 걸 즐긴다. 하지만 요즘 같이 강한 여름 햇빛이 쏟아지는 차 안에서는 선글라스를 끼고는 어두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노안이 오니 아주 밝은 곳에서 글씨가 잘 보이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또는 선글라스를 끼거나 어두운 곳에서는 글씨가 더 보이지가 않는다. 실외로 나오면 렌즈색이 진해지는 그런 안경을 써야 하나^^;
이젠 오가는 길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오디오북이라도 들어야 하나 싶었는데 책에서 눈을 떼니 여행길 창 밖 국도의 소소한 시골풍경이 아름답다. 흔한 산과 시골집 담벼락에 핀 꽃들이 유난히 예쁘고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오가는 길엔 먼 곳에 시선을 두는 풍경을 눈에 담고 책은 여행지에서 환한 불 켜고 읽어야겠다.
출퇴근 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주로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거나 유튜브를 영상이 아닌 오디오로만 듣게 된다.
출퇴근 1호선 타인의 어깨가 친구보다 가까이 닿는 시간, 만원 지하철에서는 핸드폰을 들어 앞쪽으로 팔을 뻗을 공간이 없다. 최대한 눈과 거리를 두고 핸드폰을 멀리 보내야 글씨가 보이는 노안이 반강제적으로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 건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한참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영어 공부를 했다. 남편과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자유여행을 계획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문장이 되지 못하고 늘 머릿속에 맴돌다 사라는 단어들의 나열에서 탈출해보고 싶었다. 자막없이 소리로 듣는 영어 공부는 꽤 괜찮은 학습법이었고 덕분에 고3 수능 이후 흥미를 느낀 자발적인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한동안 미드를 열심히 보며 출퇴근을 이용해 학습한 미국인들의 연음을 알아듣는 나를 기특해하기도 했다.
남편 회사의 급박한 프로젝트로 인해 결국 20주년 기념 여행은 무기한 연기 되었지만 나의 여행영어 수준이 한단계 레벨업 되는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얼마 전엔 노안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서류 지원한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갔는데 예상치 않게 면접 전에 테스트 설문지를 작성하라는 것이다.
설문지를 받아 드니 글씨가 작다.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돋보기가 없어 안 보인다 할 수도 없고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질문지 내용이 간단한 문장들이라 대충 보고 적어 냈지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나는 그 당황스럽던 회사의 면접에 최종 합격하여 채용이 되었다.
출근하면 돋보기도 되면서 눈가의 노화를 가려주는 덜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세련된 안경을 쓰고 근무하려고 한다.
노안은 눈에 있는 수정체의 탄력이 감소되어 가까이 있는 물체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현상이다.
노안을
백과사전에서는
"명사, 늙어 시력이 나빠짐. 또는 그런 눈"이라고 정의했다.
네이버 건강백과에서는 이렇게 정의했다.
수정체의 탄력이 감소되어 근거리 시력이 떨어지는 눈의 변화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비가역적입니다. 보통 40대 초반부터 증상을 느끼기 시작하고, 60대까지 증상이 점점 심해집니다. 근거리용 안경을 이용하는 것이 기본적인 치료입니다.
*비가역적
정반응만 가능하고 역반응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며, 환경에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함.
결국 노안은 눈의 수정체의 탄력 감소와 섬모체(수정체의 양끝에서 수정체의 굴절력을 조절하는 근육이 존재)의 기능저하로 인해 야기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눈도 우리 몸과 똑같이 근육의 노화로 탄력성이 떨어지며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었다.
가까운 것이 갑자기 안 보인다는 현상에만 집중해서 본질을 간과했다.
몇 년 후면 50이 되는 나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비가역적인 생의 노화현상에 대해 그토록 참담해했고 불편하다고 불평한 것이미안해지고 만다.
40년을 넘게 내 눈이 누구보다잘 보이도록 애쓰고 고생해 준 나의 수정체에게 감사해야지.
60세가 될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는 노안인데 이제 불청객이 아닌 같이 적응하고 살아가야 할 친구로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