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 아들의 9주기

셀 수 없이 많은 빗줄기 속에서 , 유일한 단 하나의 빗줄기를 만나는 우

by 다시봄아

출근해서 정신없는 오전 업무 중 엄마와 우리 삼 남매의 단체 카톡방이 울린다.

캡처한 시우사진과 시우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카톡이 미리 보기에 슬쩍 보였다.

시우 기일은 내일이다.

제사를 지낼 것도 아니고 날짜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때쯤 이 계절쯤 시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걸도 충분하다.



저녁에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물으시며 우리 집 앞으로 오시겠다는 엄마.

바쁜 와중에 6시까지는 전철역으로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오전 잠깐 사이에 단체 카톡방에서는 시우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우리 한비가 19살이네, 18살이네 하는 엄마와 동생들의 대화를 대충 훑으며 눈물을 글썽일 여유도 없이 업무에 집중해야 했다.




작년 9월, 만 46세인 나는 디자이너에서 마케터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 회사에서 내 인생 최고로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1년을 보내면서(아직 1개월 남았다) 어쩌면 감상에 젖을 시간적 여유가 (다행이라 해야 할지) 거의 없었다. 슬픔도 누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였다.


머리로는 브런치에 글도 써야지 생각은 했지만 내 몸, 내 멘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시간이었기에 몇 편의 글을 끄적이고 저장하긴 했으나 거의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재취업 직전에 썼던 작년 시우 8주기 글을 읽고 나니, 글은 꼭 쓰여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나, 그날의 나의 감정, 나의 생각, 그것은 기록되어야 비로소 살아난다. 기록되지 못한 모든 것들은 그저 소리 없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햇빛처럼 이내 사라진다.




작년 시우 기일엔 스카에서 중간고사 준비를 하던 우리 딸 고3 한비는 올해는 부천에 있는 미용 전문 직업학교에서 헤어디자인과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다. 오후 5시 30분에 수업을 마치고 오늘은 외할머니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저녁 6시, 우리 엄마와 나, 우리 딸 이렇게 모녀 삼대가 한자리에 있다.

한비도 요즘 제 삶이 고되었는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왜 오시는 거냐고 물어서 내일이 오빠 기일이라 밥 같이 먹자고 오신대라고 말했다.


매년 시우의 기일에 치킨을 시킬 때마다 한비에게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물으면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안다고 했던 아이다.

막내 동생이 한비한테 용돈을 보냈다보다. 한비는 그래서 삼촌이 나한테 용돈 보내준 거냐고 물었다.


엄마가 꽃을 한 다발 사 오셨다. 정말 놀랍도록 조화같이 생긴 생소한 생화였다.

조화 같은 생화를 들고 우리는 저녁으로 족발을 먹으러 갔다.

우리 엄마는 고기를 안 드시지만 우리 딸은 족발이 먹고 싶다 한다. 나는 우리 엄마에겐 막국수를 권하면서 딸이 고른 족발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한비가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빵을 고르고 수박을 사고 싶어 하는 딸에게 너무 무거우니 복숭아를 사자고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로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혼자 떠안고 어느새 열아홉 살이 되어버린 우리 한비에게 오늘은 그 미안함을 조금 보상하고 싶었다.

그 찬란한 웃음과 눈부신 명랑함을 잃어버린, 표정 없이 차가운 아이가 그래도 이제는 가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2년 전 17살의 한비는 내 생일 축하 카드에 처음으로 오빠의 이야기를 내가 묻기 전에 제 목소리로 꺼냈다.



엄마


나는 오빠가 우리를 떠난 열 살 때 우리 가족은 다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라진 것은 오빠뿐인데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리고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변했다는 걸 느꼈어요. 무엇보다 오빠를 잃은 슬픔보다는 나에게 가장 든든하고 강한 엄마 아빠가 하염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덮었어요. 그것을 견딜 수 없던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 안에 꽁꽁 숨었어요. 그렇게 죽음이란 것이 단숨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파괴하는데 "나는 지금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고 하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잃었고 점점 무감각해졌어요. 나는 열 살 아이로 인생이 무상하고 허무하다 느껴버렸어요. 그것은 나를 어린아이답지 않게 만들었고 사춘기라는 이유 있는 반항의 타이틀 뒤에 교묘히 숨겨 놓고 나를 잠식시켰어요. 이렇게 아픈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오빠도 지키지 못한 나약한 엄마 아빠를 미워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엄마 아빠가 미웠지만 그만큼의 사랑도 필요했어요. 하지만 내가 완강히 밀어내자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어요. 나를 혼자 두었어요. 나는 많이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결국 혼자서 힘겹게 버텼어요. 외로움도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둔해져요. 점점 내 마음은 딱딱해졌어요.


다행히 시간이 흘러 나도 성장했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무방비로 잠식당하는 연약한 아이가 아닌 이제는 오빠와 함께한 기억들을 행복했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만큼 저도 자랐어요.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나한테 실망하는 엄마 아빠한테 미안했어요. 사랑해요. 저도 이제 행복해지고 싶어요. 우리 이제 함께 행복해져요.

-한비가-




나는 많이 울었으나 아이에게 그 편지에 대해 답장을 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미뤄왔다. 편지를 쓰고 난 후에도 작년까지는 한비는 들쑥날쑥한 감정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느 날은 괜찮은가 싶다가 다시 어느 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춘기 반항아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올해 고3이 된 후에는 정말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질풍노도에서 빠져나온 여유가 느껴진다. 종종 아이가 말랑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차갑고 딱딱하던 아이가. 그리고 전보다 더 자주 웃는다.


이번 시우의 기일에는 꼭 그 편지에 답장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사랑하는 한비야

한비가 준 편지를 받고 어린 한비가 가엽고 불쌍해서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이제 한비가 많이 컸구나 싶어 기쁘기도 했어. 그래서 엄마는 많이 울었어.

처음으로 너의 입으로 오빠 이야기를 꺼낸 편지는 한비의 상처가 스스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아물었다는 증거니깐. 한 번도 오빠가 보고 싶다거나 오빠 이야기를 꺼내어 함께 추억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깊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이제는 그때 내가 많이 아팠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된 거니깐.


매일같이 반항하고 화가 나있던 너에게 대체 뭐 때문이냐고, 뭐가 문제냐고 엄마, 아빠가 왜 너의 공격 대상인지, 뭐가 불만인지 말하라고 네게 소리칠 때마다 그때 너의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던 그 대답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너의 소리 없는 대답들이 그 편지에 담겨있었지.


오빠가 떠난 후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네게 다가오지 못하게 날카로운 날을 세웠어. 조금만 가까이 가려하면 곱절로 튕겨저 멀어져 가는 너의 십 대를 엄마는 바라만 보았어. 어느새 너무 멀어져 버린 너와의 거리를 다시 좁힐 수 있을지 엄마는 종종 두려워졌어.

엄마 아빠를 밀어내려는 너의 그 행위만 보면서 속상해했어.

어리석은 엄마는 너의 심연의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해 추측은 했으나 적극적으로 자세히 바라보지 못했지. 이 모든 걸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그때 너를 어떻게 도울 수 있었을까.


오빠의 사고로 인해 너의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생각했고 그 사춘기가 지나면 좋아질 거라 믿었어. 사춘기의 방패에 몸을 숨긴 너를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기다렸어. 아무것도 돕지 못했어. 아니 안 한 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시작된 너의 사춘기는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어. 너는 말을 하지 않았고 눈을 바라보지 않았고 늘 화가 나 있었어. 곧 폭발을 기다리는 시한폭탄 같았지. 너의 마음이 그만큼 아프고 힘들다고 소리치고 절규하는 것을 엄마는 잘 알아듣지 못했어.


엄마 아빠도 너무 미성숙해서 각자 자신의 슬픔에 잠식되어 곁을 돌아보지 못했어. 한 번도 오빠 얘기를 꺼내지 않는 한비를 더욱 먼저 돌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가 감히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의 실체 안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떨고 있는 너를, 혼자서 너무도 외롭던 한비를 건져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이렇게 단단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가-




열 살의 한비가 19살이 되었다. 이제 곧 스무 살이 된다.

시우는 22살, 청년이다.

요즘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저런 아이들이 우리 시우의 친구들일 텐데 하며 얼굴을 자세히 본다. 저 나이의 청년들이 저런 모습이구나 하며 오래 바라본다.

아직도 나에겐 13살에 멈춰 있는 시우는 어른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비를 보며 시우의 얼굴을 그려본다. 어린 남매의 웃는 모습이 겹친다.







셀수없이 많은 빗줄기 속에 유일한 단 하나의 빗줄기를 만나는 우연으로 내게 온 너




사랑하는 시우야

올해 한비는 공부대신 직업학교를 택하고 심사숙고해서 대통령도 뽑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도 벌고 있어. 많이 컸지?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 게 느껴져. 시우가 있었다면 한비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 잘 웃고 그 나이만큼 가볍고 밝았을 텐데. 속이 깊지만 차갑고 냉정한 지금의 한비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빠는 요즘 좀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인가 봐. 그걸 한비가 알아보고 아빠를 측은해하더라.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이 아빠처럼 보인대. 엄마는 아빠가 감정의 기복이 없고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이라 그런 측은함으로 아빠를 보지 못했는데, 한비는 그 단단해 보이는 아빠의 이면에 있는 연약함을 꿰뚫어 보더라고. 그래서 사실 많이 놀랐어. 한비가 아빠랑 성격이 비슷해서 아빠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아. 시우가 있었으면 아빠한테 정말 큰 힘이 됐을 텐데. 많이 지친 아빠를 위로해 주렴. 시우를 떠나보낸 것이 분노와 억울함으로 원망하고 아파하지 않도록. 이제는 평안해질 수 있도록.


엄마는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엄마의 팀장님은 엄마보다 10살 이상 어리고 같은 팀의 팀원들은 시우보다 고작 3,4살이 많은 아주 어린 친구들이지만 나름 잘 어울려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단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엄마가 잘 버텨냈더니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더구나.


시우가 떠난 후 엄마는 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고 엄마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은 그 도전이 성공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 그저 너희들을 키우며 프리랜서로 소일거리를 찾던 주부에서 이젠 어엿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되어있다는 것도 그때는 상상을 못 했던 일이잖아.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과연 시우가 떠난 이후의 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었을까 싶어. 불혹의 나이에 엄마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려고 스스로 노력했고 그렇게 가다 보니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이 생겼어.


엄마의 터닝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에 고용노동부의 수기로 공모해서 우수상도 받았단다. 상금도 100만 원이나 받았고 시상식에도 초대됐었어. 시우가 있었으면 엄청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한비는 시크하게도 별 반응이 없었단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아주 좋아하던 엄마는 덕분에 글을 써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겼어. 그래서 예전부터 블로그에 써오던 글들을 모아서 이렇게 브런치에 옮겨오고 있지.

지금 회사에서도 마케터로서 글을 쓰는 일을 가장 많이 하는데 엄마한테 모두들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해서 엄청 뿌듯해.


엄마는 지금 삶에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지금 이 일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거야. 시우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있고 엄마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음을 잊지 않을게.

너무나 많이 보고싶고 그리운 나의 아들 시우.


2025.07 시우의 9번째 기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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