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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선 Aug 01. 2024

시험

주제를 정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겨 공부를 하려고 할 때, 주로 시험을 알아보고 응시하는 편이다. 목적 없는 공부는 효율이 떨어지는데, 시험은 목적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응시를 해놓으면 갑자기 시험 보기가 싫어지고 공부하는 게 재미 없어진다. 희한한 일이다. 하고 싶었던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은 보기 싫다니 도대체 왜 싫은 걸까?

 시험은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이 목표다. 내가 진득하게 공부를 해서 남는 것이 있든 없든, 점수만 잘 나오면 된다. 그런 면에서 시험 볼 때 벼락치기는 꽤나 효과가 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점수로 내 실력이 바로바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시험이기도 하다. 점수에 내가 많이 휘둘리는 사람이라(점수로 나의 효용 가치를 판별당하는 것만 같아, 잘 못 하면 시험 치르는 것조차 피하고 싶다.) 과정과 별개로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역시 내게 안 맞는 것일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느긋하게 스스로 만족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다는 사실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치른 시험은 결과와 상관없이 내게 좋은 것을 주었다.



 유독 시험 공부하기 싫은 한 달이었다. 원하던 자격증 시험 응시에 실패하고, '이거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합격했던 시험의 실기를 급하게 응시했다. 사실 내게 제일 필요한 건 시험이 아니라 쉼이었겠지만, 불안함이 날 또 움직이게 했다. 이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딱히 원하던 공부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당장 자격증을 따는 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공부의 목적이 불분명하니 공부를 계속 미뤘다. '이것만 하고, 저것만 하고, 내일, 모레, 좀 이따...'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을 다음으로 미루면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수 없이 고민하고, 좋아하는 것도 잘 모르겠다고 한숨만 쉬는데. 시험이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다른 유혹을 뿌리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번 시험이 중요한 건 아니니 경험상 응시는 하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자!"하고 말이다. 그래서 읽었다.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그리고 썼다. 평소에 미뤘던 글쓰기를 매일매일. 궁금했던 티브이 프로그램도, 마음에 담아두던 영화도, 미뤄뒀던 집안일을, 재밌는 게임을. 세상에 이렇게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니!! 재밌는 하루가 쌓이면 쌓일수록 행복은 배가 됐다. 시험 덕분에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내 삶이 재미로 가득 찬 것이다.(물론 시험공부도 죄책감에 찔끔 하긴 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생소했다. 유혹을 뿌리치지 않은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도를 찾아냈다.



 물론 공부는 지루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생존에 반하는 행동이라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유튜브에서 봤다.) 그런 면에서 시험은 더더욱 그렇다.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깃들어 있으니까. 공부도 시의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성인이 되고 그 시기를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할 땐 하고, 놀 땐 놀자! 마인드를 잘 새기며 마음 내려놓고 진짜 방학을 즐겨야겠다.

 쉴 때를 아는 것, 이번 시험이 내게 준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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