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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선 Aug 02. 2024

지각

주제를 정해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

 7시 58분. 2분을 남기고 가까스로 지각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지각을 절대 하지 않는 편이다. 출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와의 약속도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무조건 미리 가서 기다린다. 늦을 것 같은 초조함이 너무 싫어 아예 일찍 다니는 버릇이 들었는데, 그 덕분에 직전 회사에선 2년 넘게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나만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간에 대한 강박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내게 이로운 면이 많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하고, 너무 게을러지지 않는 동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을 잘 지키는 건 내가 만든 중요한 약속이자, 자존심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 당연히 늦은 적은 없었다. '늦을 거면 아예 안 가는 게 낫지'란 생각을 가질 정도로 늦는 일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늦잠을 자고 말았다. 

 8시 출근이라 7시 10~15분쯤엔 기상해 준비를 마치고 35분에 집에서 출발하면, 53분 정도 매장에 도착한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청소를 시작하는 것으로 아르바이트 일과가 시작되는데 오늘은 41분에 일어난 것이다. 머리가 하얘졌다. 매장에 전화를 해 늦잠을 자, 5~10분 늦을 수 있다고 말을 전했다. 차인표보다 빠른 분노의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집히는 아무 옷을 입고 뛰어나갔다. 지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뱉은 말을 지켜야 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꿀 같다고 느낄 정도로 전력질주 했다. 매장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58분. 그제야 숨이 트였다.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소변도 보지 못하고 급히 나와 긴장이 풀리니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고, 출근 후 매장 직원에게 인사를 한 뒤 화장실로 바로 갔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화장실은 더웠다. 옷을 내리고 입을 때 땀 때문에 불편했다.


 지각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애초에 지각을 안 하면 좋겠지만, 사람인지라 언젠가 한 번은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거지. 왜 나한테는 일말의 예외도 두지 않으려고 했던 걸까. 늦는다고 전화했으니 화장실도 갔다가 조금 빠르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였는데. 지각하지 않아 내심 뿌듯했지만, 내가 만든 틀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일을 할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누가 늦는다고 하면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급하게 오다 다치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와~"라고 말한다. 급한 일이 아니면 진심으로 괜찮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왜 그게 잘 안 되는 걸까.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게는 엄격한 기준에 맞추려고 애를 쓰다 보니 한 번의 실수에 무너지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오늘 한 번의 지각할 뻔했던 일 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한 느낌이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언제든 예외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내게 너그러워지자.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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