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1] 캐나다가 어딘데...

토론토가 제일 싸다고? 그럼 가야지.

by Jee

고2 때였나, 엄마 회사에 가끔 들리신다는 어떤 점쟁이 할아버지가 그랬다.

"둘째는 외국 나가서 공부하겠네. "


공부치고는 두 달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어찌됐든 사실이 됐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방문자 0명의 블로그에 열심히 전 세계 여행지를 긁어모았고, 언젠가 꼭 전 세계를 여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일까, 평생 손에 닿지 않을 것만 같아 욕구가 더 짙었는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대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 형편은 좀 나아졌고, 용돈도 생겼다.

밥 사 먹으라고 주신 용돈이지만 악착같이 모았다.


아싸, 나가야지.


아무리 형편이 나아져도 어학연수는 꿈도 못 꿨고, 꿀 생각도 안 했다. 오로지 내 목표는 학교에서 지원금 빵빵하게 주는 해외현장실습 프로그램이었다.

방학 두 달 동안 해외에서 공부도 하고 실습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후보지는 뉴욕, 뉴질랜드, 토론토였다.


토론토가 제일 싸네.. 결정!

근데… 토론토가 어디야…?


방문자 0명의 내 블로그에 미국은 있어도 캐나다는 없었다. 캐나다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던 내가 토론토는 알리 만무했다. 내 블로그를 채운 것들은 인도의 타지마할, 페루의 마추픽추, 캄보디아의 치첸이트사였지, 토론토의 CN타워는 아니었다.


300만 원을 지원해 준다길래 일단 지원했지만, 호기롭게 도전하는 것치곤 나는 영어를 정말 못했다.

(여전히 못하고, 관심만 있는데 또 어찌어찌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영어 면접은 당연히 망쳤지만, 학교에서도 외국 나가서 사고 치지 않을 학생이 있었으면 싶었는지 높은 학점에서 신뢰(?)를 얻어 합격을 했다. 역시 공부는 해두면 손해는 안 본다니까?


일단 토론토를 좀 찾아보니 멋진 곳 같았다.

높은 건물, 바다 같은 호수, 빨간 트램, 서양사람 가득한 거리..

그중 제일 멋진 건 캐나다 국기였다. 강렬한 빨간색과 단풍 모양이 맘에 쏙 들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캐나다 국기를 보면 마음이 설레곤 한다.



아, 저기가 도깨비 촬영지야? 가면 되지.

내가 캐나다에 간 건 2017년 6월 말~8월 말 시기였는데,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쯤엔 TV에서 드라마 ‘도깨비’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두 달이 캐나다에서 1년 중 가장 날씨 좋은 기간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조금만 늦게 들었어도 벌써 이민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은탁이와 김신이 올드퀘벡의 푸른 잔디밭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순간 촉이 왔다. '아, 나 저기 가겠구나.'


뭐, 그냥 가면 가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가끔 알 수 없는 촉이 강하게 올 때가 있지 않나?

그 장면을 볼 당시 내가 그랬다. 푸른 초원에 앉아서 그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했고, 나는 토론토 가기 전 일주일을 퀘벡에서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드디어 출국, 비행기 경유, Help me…

26인치 가득 담은 캐리어, 오른쪽 어깨엔 바우처 잔뜩 담은 에코백, 왼쪽 어깨엔 노트북 가방을 짊어진 채 삼선 슬리퍼를 신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갔다.

노트북이 너무 무거워서 면세점은 쿨하게 패스했다.


“Air Canada”

크.. 뭔가 이름부터 멋있다.

고작 두 달이지만 괜히 내가 대단한 유학생이 된 것 같은 긴장과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13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도 난 지루할 수가 없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영화도 보고, 기내식도 먹고, 미니 와인도 종류별로 시켜 먹다 보니 오 나 쫌 멋진데?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졌고, 착륙이 얼마 안남았을 때는 걱정하느라 시간을 다썼다.


강렬한 빨간색의 에어캐나다 티켓과 22살 때 처음 비행기에서 먹어본 기념비적 와인


비행기는 점점 캐나다에 가까워졌고, 그럴수록 나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내가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 못 어울리고 겉돌면 어쩌지.

아, 참. 비행기 경유는 잘할 수 있겠지? 퀘벡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떻게 해야 하더라?


드디어 캐나다 땅을 밟았다.


자, 침착해. 넌 이제 비행기 경유를 할 거야,

블로그에서 본 대로만 하면 돼!


타국의 공항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환승시간이 여유로웠음에도 너무 긴장됐다. 어느 블로그에서 본 대로 짐을 찾아서 다시 부치고, 보라색 표시만 쫓아갔다.


그러다 내가 이상한 곳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지 검은 옷의 건장한 아저씨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기내식 이후로 처음으로 외국인이 말을 걸었고, 나는 용기 내서 한 마디 했다!


“ticket here.. gate.. where?”


다행히 알아들으시고 길을 알려주셨다.

길을 찾은 건 다행이었는데, 이런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버티지…?


나는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내 머릿속 숨어있던 언어능력이 그 진가를 발휘할 줄 알았다.

무의식 속 영어가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무의식에도 영어 실력은 안 쌓였나 보더라.


에효, 환승이나 기다리자.


퀘벡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처음 마주한 캐나다의 하늘.


몇 시간이 지나고 퀘벡행 게이트가 열렸고, 작은 비행기가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거 경비행기 아녀..?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하도 어질어질해서 기억도 잘 안 난다.


도착한 퀘벡 공항 밖은 캄캄했고,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살면서 우버도 처음 타봐서 가는 내내 길이 맞는지, 돈은 자동 결제인 건지 열 번은 찾아본 것 같다. 우버기사가 가는 동안 누구랑 통화를 그렇게 하던데, 모든 게 처음인 나에겐 그마저도 조금 긴장됐다. 뭐, 결국 잘 도착해서 짐도 척척 잘 내려줬다.


Howard Johnson by Wyndham Quebec city

-퀘벡에서의 첫날 묵었던 공항 근처 숙소이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폐쇄했다고 한다.


호텔 카운터 직원은 친절했고, 체크인도 문제없었다.

이제 문제는 이 늦은 시간에 20kg가 넘는 짐을 들고 계단을 꽤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짐을 옮긴다고 옮겼지만, 여기저기 쾅쾅 캐리어 부딪히는 소리에 그날 최소 5명은 잠을 설쳤을 것이다.. 어찌 됐든 방에 무사히 입성했다.


캐나다에서 내 첫 번째 집은 많이 으슥하고, 무서웠지만 약간은 포근했다.




*2017년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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