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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Jan 09. 2021

TO. 나의 전두엽

FROM. 나의 마음들

전두엽아 안녕. 너무 싫은 너를 너무 사랑해보려고 편지를 쓴다. 네가 대뇌피질 어디쯤인가 검색해봤는데 백과사전 내용이 어려워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어. 앞 전에 머리 두 자를 쓰니 이마 쪽이겠거니 예상해 본다. 어쨌든 너의 역할은 충동과 감정 조절, 규칙과 계획 세우기, 단기 기억과 운동 능력 조절이래. 네 의무를 전부 팽개칠 거면 왜 그리 많은 것을 맡았니? 너는 일하지 않는 사장님 같아. 그렇다고 너무 나서면, 일하지 않는 게 나은 사장님 같아. 너한테 휘둘려 빙빙 돌던 난 결국 ADHD 휴먼으로 자라 버렸어. 그러거나 말거나 잡생각만 해대는 너 때문에, 나는 참 여러 가지를 못하고 살아. 싸울 수 없지만 네가 사과해. 세상 누구도 너처럼 내게 무책임하진 않았고, 너처럼 나를 무력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니까......


네가 어쩌다 남들과 달라졌는지 모르겠어. 너를 몰라서 나를 모르겠을 때마다 네가 정말 미워. 정치인 스캔들로 대신 욕먹는 대변인이 되는 것 같고 그 기분이 구려. 네가 미워서 이마를 쳐봤자 나만 아프니 이것조차 불공평하지. 내 두개골이 유달리 단단한 걸 어찌 알고 그 안에 숨었니? 네가 본능적으로 안전을 도모할 땐 신기하지만, 사실 내 바람은 그냥 일상성의 회복이야. 밥 먹고, 일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멀쩡했으면 좋겠어. 아무에게도 트집 잡히지 않고 아무에게도 실수하지 않으며 사소하게 개인적이고 싶어. 사람은 누구나 관종이지만, 누구도 이런 식의 관심을 바라지 않잖아. 어떤 연예인도 우리 같은 캐릭터를 꾸며내지 않으니 우리가 어떤지 알 것 같아?

우리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이야.

이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특징들의 총체야.


그러니 ADHD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멀쩡하게 사는지 알았을 때 나의 충격을 알겠지. 난 학업도 사회생활도, 대인관계도 결국은 망치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 다들 나만큼은 실패하며 막막한 스릴을 견디는 줄 알았어. 하지만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정렬과 안정이 있었어. 사람들이 나 빼고 행복의 공산주의를 이룬 것 같으니 쓸쓸해. 산다는 게 자꾸 남의 잔치를 바라보는 일 같아서 나는 외로워.


이 와중에 우리가 따로일 수 없다는 사실만 영원하다니...... 이제 난 슬프다 죽느니 슬픔을 전복시키자고 다짐해. 내 생각에 눈물을 멈추는 방법은 자꾸 닦는 것뿐인 것 같아. 볼살이 다 쓸려 추해질 때까지, 눈알이 너무 아파 ‘우는 것도 손해구나’ 싶어질 때까지. 눈물에 분해진 사람만이 슬픔에 시비를 걸 수 있어서, 가끔은 총알을 모으는 심정으로 울어 버려. 넌 누가 안구즙을 짜든 말든 끊임없이 잡생각을 불어넣지만...... 아마도 그것은 모자란 전두엽이 숙주(?)에게 보내는 나름의 위로 아닐까......


솔직히 아니어도 상관은 없어. 허튼 세월을 살아보고 느낀 건, 진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어. 내게 좋아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만이 진실이란 것 단하나였어. 남들보다 각성이 느린 네가 하루빨리 내 선언을 이해하고 협조하길 바라. 이건 부탁인데 실은 강제야. 우리는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을 전부 버리고, 되려 했던 모습들부터 포기하며 살게 될 거야. 그게 의외로 논리적이라 차근차근 웃게 될 거야. 그러다 보면 올해 가장 흔해 빠졌던 단어 ‘자기 자신’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자기 자신’이라는 게 심해에 가라앉은 보물선처럼, 사실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단 식으로 발견되지 않을까.


너와는 무엇부터 협의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는 하나인 적 없어서 늘 각자 툴툴댔잖아. 나의 머리통아! 일단은 아무것도 탓하거나 반성하지 않으며 친하게 지내자. 불시에 서로의 편이 될 수 있도록 협조의 양탄자를 깔자. 너의 과몰입과 나의 감수성...... 대충 둥글려도 태극무늬 비슷한 게 될 테니, 이건 아마 멋진 일이야.


이만큼 착하게 말했으면 아무리 너라도 협조를 해 주겠지. 네가 집중력이 없을 뿐 양심이 없는 건 아니니까, 이제부터 나 좀 챙겨줘. 내가 슬프지 않게 열심히 살아줘. 헛살아도 되니까 막살지는 않으며 함께 헤매자.


답장은 안 줘도 돼. 네가 전부 알았다고 할 것 같은 기분이거든. 알았다고 하기 싫다면? 답장은 더더욱 필요 없어, 제발 주지 마. 이만 쓰고 싶으니 이만 안녕이야. 새해 복 많이 받자. 아직은 널 사랑하지 않지만 곧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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