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음 Oct 18. 2020

사랑스러움이라는 기적

ADHD와 아기 고양이의 동거 일지 - (2)

고양이를 들이기로 한 이유는 생각보다 시시하다. 사실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허락을 해주었고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어 금전적 여유가 생길 예정이었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이 아닌 정서적 안식처가 필요했다. 나는 ADHD 때문에 그 두 가지에 대한 환상을 버린 상태였지만 공허하긴 했던 것 같다. 연봉 인상폭이 얼마가 되든 그 이상을 고양이에게 쓰겠다 다짐한 후 입양 절차를 밟았다.


난생처음 펫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내 품 안의 밀스톤이 너무 작아서 덜컥 불안해졌고 갑자기 스스로가 머저리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기대감이 샘솟아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본래 미치길 두려워하면서 정상임을 인지하는 사람이지만 그땐 진실로 불안했다.


내가 사실은 흥미 본위로 고양이를 들이는 것 아닐까? 이 고양이가 계속 내 흥미를 끌어주지 못하면, 내가 밀스톤을 짐짝처럼 여기게 되지 않을까? 밀스톤이 갑자기 죽으면 내 운명은.......


생각이 반죽처럼 뒤섞였고 어떤 빵으로도 구워지지 않았다. 밀스톤을 생각하면서도 실은 내 처지만 첨예하게 궁리하고 있었으니, 나는 이타적이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첫눈에 밀스톤이 좋았지만 아직은 내게 설렘보다 걱정만을 주는 존재였다.


결과적으로 만성적 허전함을 고양이로 채워보려 했던 생각은 틀렸다. 사람이 고양이가 아니듯 고양이도 사람 일 수 없었다. 그래도 함께 하는 내내 치유 효과는 톡톡했다. 밀스톤이 내 마음에 이미 뚫린 구멍을 막아주진 않았지만, 구멍이랄 게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것이다. 스스로를 단도리하기도 벅차 남을 챙기기도 어려운 내게 고양이란 미션이자 힐링이었고, 가족이면서 친구이기도 했다.


고민 끝에 우리의 관계성을 ‘베스트 프렌드’로 정의했다. 나는 밀스톤을 낳지도 않았고, 똥꼬를 핥아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걔네 엄마는 아니었다. 밀스톤보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인생이니 언니라고 하기도 뭣했다.


반면 친구라는 어감은 얼마나 정다운지. 나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떠올렸다. 우리가 그렇게 척하면 착 하는 우정을 나누길 고대했다. 그래서 밀스톤에게 예쁜 말만 쓰며 인생 파트너 대우를 해주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은 하자마자 개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의 아름다운 키티... 밀스톤은 착하고 귀여웠지만 착하고 귀엽지 ‘만은’ 않았다. 진짜 제멋대로에 협동심이 없고 은근 고집불통이었다. 물건을 아낄 줄 몰라서 맘에 든다 싶은 것도 맘에 안 든다 싶은 것도 모두 다 부셔 버렸다. 개처럼 버느라 매일매일 진이 빠지는 내겐 밀스톤의 폭군 같은 행동이 버거웠다. 성격이 형성되기도 전 데려온 아기 고양이가 점점 나랑 똑같아지니 위기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원해서 데려와놓고 징징거리다니 쓰레기 같은 짓이지만, 안 힘들다 부정하는 것보단 쓰레기 되기가 쉬웠다.


그러나 밀스톤은 경이롭도록 사랑스러웠다. 밀스톤이 한 나쁜 짓들은 얼마든지 서술 가능하나, 밀스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내 능력으로 묘사 불가이다. 내게 몸통을 붙이고 잠든 모습, 까드득 까드득 사료를 씹는 모습, 응가하느라 조그만 궁둥이를 바르르 떠는 모습, 갑자기 하품을 쩍 하는 모습, 사냥 후 전리품을 취해 자기만의 비밀공간에 저장하는 모습 등 밀스톤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회백색의 내 삶까지 컬러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매일 감동을 느끼는 삶. 그 단순한 조건의 충족은 내 마음의 용량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원래 20MB 정도였다면 갑자기 2TB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난 밝아지고 너그러워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대사들은 “어쩌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로 바뀌었다. 밀스톤이 치는 사고를 수습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해프닝에 대한 인내가 높아진 걸까 생각해 봤지만, 아닌 듯했다. 나는 좋은 습관에 쉽게 길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길들인 건 밀스톤의 존재 자체라고 봐야 옳았다.


밀스톤을 집에 두고 회사에 가면 짜증스러운 일도 많았다. 막히는 출퇴근 도로는 여전히 막막하고, 코로나 확산 소식을 들으면 없던 인류애도 떨어졌다. 내 처지는 시시각각 가난하고 외로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더 이상 그런 악조건이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는 거였다. 내 인생은 드디어 무기력과 우울의 궤도를 벗어나려나 보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저절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 왔다. 하지만 저절로 생기는 문제는 있어도, 저절로 이뤄지는 해결은 없었다. 밀스톤이 나를 구제한 건 사실이지만 밀스톤을 만나러 간 건 나다. 나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밀스톤의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그 전보단 훨씬 자랑스러워진다. 나는 이제 나아진 자기 인식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기 비하도 나름의 쾌감이 있지만 변태 같은 짓이라고도 생각한다. 변태로 오래 살아봤으니 이젠 변태가 아닌 삶을 도모할 때가 되었다.


사실 밀스톤은 마법사도 아니고, 혹자의 표현대로 ‘태어난 김에 사는’ 고양이이다. 하지만 태어난 김에 저렇게 잘 사는 것도 축복이다. 나도 태어난 김에 살지만, 죽을병도 아닌 ADHD 때문에 많은 시간을 버리며 괴로워했다. 완벽한 욕구 충족이 안 되는 건 밀스톤도 마찬가지 일거다.


하지만 밀스톤은 내 8평 오피스텔 안에서 허용되는 것 이상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밀스톤이 캣타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옆모습은 일견 경건하기까지 하다. 투명한 유리 너머 별의별 인간군상을 보며, 밀스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출근길에 헐레벌떡 뛰쳐나간 내가 조그만 점이 되어 나타나 주길 기다리긴 할까? 난 밖에서 언제나 우리 집 창문에 밀스톤이 비치길 기다리는데 말이다.


일단 지금, 밀스톤은 똥을 싸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싼 똥을 모래로 휙휙 덮는다. 나도 내일은 저런 일을 하러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은 이만 적기로 한다.



이전 11화 우리는 지옥에서 온 사고뭉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