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아기 고양이의 동거 일지 - (1)
2020년 6월 경, 나는 5주 령 아기 고양이와 반려 관계를 맺었다. 본가에 살 적 부모님이 납득하는 동물은 술 먹고 개가 된 나 정도였기 때문에, 진짜 동물 친구의 등장은 마약 같은 감격을 주었다. 나는 그 애의 이름을 ‘millstone(가명)’이라고 지었다. 이상하단 여론이 많았지만 밀스톤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으로 난해한 이름을 중화시켜 버렸다.
걔는 잘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똥오줌을 기가 막히게 가려 천재처럼 보였다. 얼굴이 너무 예뻐서 천사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그러나 같이 산다는 건 매일매일 환상을 깨부수겠단 결심이어서, 나는 곧 밀스톤의 잔악한 두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심한 ADHD라 어딜 가든 최고로 정신 사나운 역할이 되곤 했다. 누군가와 있을 때 난데없이 돌아다니고 가만있질 못하고, 자꾸 먹거나 하나도 안 먹어 걱정을 끼치고, 몸을 다치고 물건을 깨부수는 건 늘 내 쪽이었다. 하지만 밀스톤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더한 녀석이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밀스톤을 키우고 나서야 ADHD 주변인들의 고충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사고를 만드는 입장과 수습하는 입장. 내가 사고뭉치일 땐 수습 쪽이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밀스톤을 쫓아다니다 보니 이건 이것대로 힘이 들뿐이었다.
밀스톤은 정말...... 잠시도 쉬지 않았다. 많이 자기도 했지만, 깨 있는 시간엔 반드시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사부작 거리는 게 아니었다. 조랑말의 영혼이 고양이 몸에 갇혔나 싶을 정도로 뛰어다니고, 그러다 부딪혀 자빠지고 나뒹굴기 일쑤였다. 극도의 걱정은 때로 극도의 짜증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밀스톤이 터무니없이 높은 곳에 매달려 낑낑대고 있는 걸 볼 때마다 수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유년시절에 지치지도 않고 벌인 짓이기도 했다. 나 역시 정글짐에서 떨어지고, 철봉에서 떨어지고, 미끄럼틀에서 그네에서 자꾸만 떨어졌다. 재수가 없을 땐 꼬매야 하는 상처를 얻었지만 조심은 없었다. 그 옛날 엄마의 신경도 촉촉할 날 없이 말라갔을 거란 생각에 반성을 많이 했다.
마침내 밀스톤이 쉬폰 커튼을 타고 천장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천 쪼가릴 아예 떼 버려야 했다. 우리 집 창은 무방비하게 벌거벗었다. 나는 365일 창문을 가려 놓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타입이지만 고양이와 타협할 수단이 없었다.
어떤 날은 미친 척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밀스톤, 넌 생각이 없는 거야 양심이 없는 거야? 너가 고양이라는 사실이 우리 관계에 대단히 유리할 거라는 건 착각이야. 혹시 얼굴 믿고 그러는 거야? 내가 루키즘에 찌든 인간이라 그걸 이용하는 거냐구?”
그러나 고양이는 진짜 존나 관심도 없었다. 냐옹 소리 한마디를 안 하고 커튼 대신 타고 오를 것을 찾아다녔다. 나는 쟤가 날 뭘로 보는지 아직도 모른다. 장담컨대 지보다 높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그런데 밀스톤한테 분개하면서 깨달은 게 또 있었다. 고양이의 태도는 내가 타인의 잔소리를 생략해버리는 현상과 일맥상통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은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습관은 내가 어릴 때나 성인이 된 후에나 건재했다.
그즈음 밀스톤의 뒷담을 까는 내게, 회사 동료가 흘려들을 수 없는 성찰을 들려주었다.
“반려동물은 주인을 닮는대.”
반려동물은 주인을 닮는대... 닮는대...... 닮는대....... 그 말은 밀스톤이 사고를 칠 때마다 내 분노에 찬 물을 끼얹었다.
언젠가 맘에 안 드는 사료를 주자 밀스톤이 그것을 모조리 엎어 버린 일이 있었다. 나는 묵묵히 낱알의 사료 300알 정도를 주웠다. 그러면서 어릴 적의 나를 떠올렸다. 밥상머리에서 햄이 없다는 이유로 깽판을 치던 나, 엎지는 않았지만 박차고 나오긴 했었다. 밀스톤은 아기라서 밥을 흘리고 먹는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음식을 흘렸고, 지금도 신나게 흘리는 중이다. 밀스톤 또한 어른 고양이가 돼서도 밥을 흘릴 것인가?
친애하는 벗이 나처럼 클 거란 생각은 불안했다. 나는 밀스톤이 스마트한 고양이가 되었으면 했고, 스마트란 언제나 내 모습과 먼 것이었다. 비로소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자기 인식까지 단번에 캐치하게 되었다. 유쾌하진 않다만, 내가 나를 일견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상한 경로로 밀스톤을 이해하게 되자 불같이 화낼 일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남아있긴 했다.
예를 들어, 밀스톤은 호기심이 무척 많았다. 밀스톤이 인형이라면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건전지가 아니라 호기심일 거였다. 넘치는 호기심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공격성으로 치환되었다. 불행하게도 내 단칸방에서 움직이는 존재란 밀스톤과 나 둘 뿐이었다. 고양이가 저 자신을 물 리 없으니 그 이빨에 갈릴 대상은 나였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밀스톤은 정말 날 ‘지리게’ 물어댔다. 딛는 걸음마다, 내미는 손짓마다 밀스톤의 이빨질이 따라왔다. ADHD 특성상 여기저기 툭툭 다칠 일이 많은 나였다. 근데도 동물 이빨에 살이 찢기는 고통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상처와 피딱지가 늘어갈수록 내 팔다리는 경력직 일진짱처럼 변해갔다. 나는 밀스톤의 습성을 바꾸는 데 실패하여, 차라리 무결점 피부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우리 고양이는 광견병이 아니다. 광견병처럼 보일 뿐. 나도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가? 집중력이 없고 충동적이고 부주의할 뿐 바보는 아닌데 말이야.”
“밀스톤은 고등어 태비라서 나한테도 멋진 줄무늬 몇 개를 선물하는 건가 봐.”
“말을 못 하니 입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거 아닐까? 눈깔이 확 돌아서 게거품 물고 뜯는 모습이긴 하지만, 원래 너무 사랑하는 사이엔 게거품 물 일만 생기곤 하니까.”
하지만 이와중에도,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눈치껏 멈추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비슷했다. 나는 자기기만 같은 합리화를 퍼부었지만 물리적 고통은 마인드 컨트롤 따위로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밀스톤이 정말 나와 같다면, 내 대처는 어떠해야 할까? 현상보단 본질을 보려 애썼다.
내가 뻘짓을 할 때, 그걸 강제로 정지시키는 건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하기 싫은 걸 지독히 못하는 대신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ADHD 용사였다. 돌이켜보면 밀스톤도 못 물게 할수록 지랄같이 달려들곤 했다. 나를 물지 못하게 하는 것보단 물지 말아야 할 전혀 새로운 이유를 주는 게 나았다.
나는 밀스톤이 치발기마냥 물어뜯는 신체 부분들을 규정해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침을 바르기 시작했다. 우리 고양이는 입냄새가 심한 주제에 내 침 냄새를 싫어했다. 언젠가 입술에 침이 낙낙한 채로 뽀뽀를 시도했다 경악하여 도망치는 표정을 보고 알아낸 사실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다소 비위생적이고 역겨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침으로 보호한 부위는 물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난 밀스톤이 올라가선 안 되는 공간을 아예 없애버린다. 소중한 물건은 소중한 곳에 옮겨 둔다. 밀스톤이 나와 같다면, 유혹을 그냥 둔 채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길 바라는 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우리 사이 양보의 역할이 내게만 기우는 게 억울했다. 밀스톤은 많이 컸지만 아직도 5개월짜리 아가이다. 우리에겐 15년 이상의 전쟁 같고 선물 같은 세월이 남았을 것이다. 헛소리인 줄 알면서도, 힘들 땐 밀스톤이 좀 스스로 알아서 잘하길 바라게 된다. 심지어 언젠가는
“밀스톤! 돼지 고양이 새끼야, 너도 한 번은 양보해!”
하면서 운 적도 있다.
그치만 뭐랄까, 나는 밀스톤을 선택했지만 밀스톤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고, 우리의 만남은 오로지 나의 욕심으로 이뤄졌으므로...... 더욱 참아보기로 한다.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몹시 불행하지는 않은 ADHD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받은 사랑을 돼지 고양이에게 좀 나눠주려 한다.
나는 아직도 사람이 어렵고 사람과의 관계는 더 어렵다. 서툴고 자신 없는데 밖에서 보기엔 태연해 보인다고 한다. 심지어 내가 인싸인지 아는 사람도 있다. 밀스톤이 정말 나와 같다면,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뻔뻔한 얼굴 이면에 미숙하지만 뜻깊은 노력이 숨어있을 거다. 내게 미안하지만 전할 길이 없을 거다. 그리고 이제 너무 사랑하니까 아니어도 상관없다. 밀스톤이 나를 닮는 것이 뿌듯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그걸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