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 약물 부작용, 행복감과 마인드 컨트롤
ADHD 치료 5년 차가 된 나는 이렇다.
완벽하게 낫지 못해도 모자람에 조마조마하지 않아 괜찮고, 괜찮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 괜찮고, 괜찮음에 싫증을 내 공연히 나빠지는 일 없이 괜찮다.
썩 괜찮다는 느낌이 나를 썩지 않게 하므로 매일매일 새롭게 괜찮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는 면에서, 인격적으로도 괜찮아지는 중이다.
나는 혹시 어떤 ADHD 환자가 나보다 괜찮게 살 자격이 충분한데도 슬퍼하고만 있을까 봐 마음이 쓰인다. 내가 이렇게 괜찮아지는 데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그게 너무 아까웠다. 내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타인의 세월을 아끼고자 몇 가지 응답을 적는다.
스스로가 ADHD라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병원에 안(못) 가고 있다.
괜찮을까?
괜찮을 것이다. 일단 정신과 검사 후 ADHD 판정을 받으면 그 후론 도저히 아닐 수가 없게 된다. 병원 방문을 유예 중인 이 시점은 ADHD라는 워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마지막 보통날 일지 모른다.
치료비가 부담되거나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스스로 내키지 않거나 귀찮거나....... 병원에 못 가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자력구제를 미루는 게 아니라, 병원에 방문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에게 닥친 더 힘겨운 현실을 인내하는 중일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안 가고 있더라도, ‘그냥’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건 괜찮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정신과 진료엔 돈 말고도 감정적 비용이 든다. 나도 처음엔 지갑만 들고 가면 되는지 알았는데, 그보단 ‘인정’과 ‘솔직함’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파산 직전까지 지불해야 했다. 정신과는 위험한 곳이 아니지만 끝없이 도망가고 싶다는 기분을 준다. 뭐든지 다 괜찮지만, 약물 치료를 중간에 마음대로 끊는 건 안 괜찮으므로, 차라리 지구력과 의지가 충분히 확보된 후 찾는 것이 나을 수 있다.
ADHD 약물치료,
궁금하면서도 부작용이 두렵다.
실제로 먹으니 괜찮은가?
사실 이건 잘 모르겠다. 괜찮을 수도 있고 안 괜찮을 수도 있다. 뭐든지 개인마다 다르고, 먹는 사람이 어떤 기대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효능감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ADHD약이 내 나무늘보 전두엽에 화들짝 번개를 내려주길 바랐다. 놀랍도록 달라져 매일매일 놀랄 일 밖에 없을 만큼. 일종의 뇌파 혁명을 원했던 것 같다.
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새로운 삶을 주는 건 아니었다. ADHD가 한방에 낫는 일 따윈 없고, 약을 먹은 ADHD는 이런 거군, 하는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고양감은 있지만 짜릿하진 않다. 코카인과 비슷한 구조니 어쩌니 하는 썰이 있으나 합법적이면서 배덕한 환락 따윈 더더욱 없다. 나는 오히려 마약과 비슷한 각성제가 날 구할 열쇠라는 사실에 오랫동안 자존심이 상했고, 지금도 상하고 있으며 복구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콘서타를 먹으면 오히려 흥이 바싹 말라 건조해진다. 안 먹으면? 저절로 춤을 추거나 낄낄거림이 나올 정도로 신이 나 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느끼는 건조함이 바로 ‘차분해’ 지는 거라 했지만, 그건 몇 년째 이물감이 느껴지는 감각이다. 내가 차분해지길 원하는 건 내 주변이지 스스로는 아닌 것 같다. 평소 나는 미친 듯이 농담을 하는 스타일인데, ADHD 약을 먹으면 재미있고자 하는 의지가 멈춘다. 나는 약의 순기능을 부작용처럼 여기게 되었으므로 부작용이 뭐냐, 크냐 작냐 하는 질문엔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겠다.
또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약들을 먹어도 집중력 부스팅 효과는 매일 다르다. 약은 묘수이자 악수라서 신중하게 각을 재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약으로 얻는 게 100이라면 잃는 것도 60쯤은 된다. 망설임은 신중함이고, 절대 쓸 데 없는 일이 아니라고 응원하고 싶다.
ADHD여서 좋은 점도 있나?
이 질문은 마치... 개똥을 밟은 사람에게 기분 좋냐고 묻는 것 같다. 솔직히 ADHD 자체로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살아보니 미친 듯이 나쁠 것도 없었다.
나에게 질환에서 파생된 단점이 많은 것도, 그래서 일반인에 비해 어이없는 격랑에 쉽게 휘말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장단점의 총합이 플러스나 마이너스로 단번에 계산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주식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처럼 매우 변동적이다. ADHD의 최대 우량주는 창의력이다. 근데 그것만 믿고 안주하다간 예상치 못한 쪽박을 맞게 될 수 있다. 재능은 100% 발휘해야 빛나는 것이고, 어딘가에 막연히 존재하기만 할 때는 오히려 재앙의 빛깔을 띤다. 부단히 노력하고 적절히 조심해야 하는 건 ADHD나 일반인이나 똑같다.
아니 사실 똑같지는 않다. 같은 일을 해도 ADHD의 공수가 더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인생은 어차피 각개전투인데. 남들의 노력이 나에 비해 어떻든 자기들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걸어갈 뿐이다.
반면 부주의, 멍한 상태, 충동성은 페이퍼 컴퍼니가 날린 부실채권 같아도 결정적일 때 자가 구제 수단이 된다. 나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음으로써 문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수법을 자주 쓴다. 그렇게 살아도 의외로 별 일 없다. 가장 안전한 방공호를 머릿속에 구축한 셈이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ADHD는 너무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새로워지지만, 그 간격을 스스로 설정할 수 없다. 흉내 내지 않아도 특이하지만 보통이고 싶을 때도 평범을 가장할 수 없어 고통받는다. ADHD는 장점이 곧 단점이 되고, 단점이 한 바퀴 돌다 보면 장점이 되어 있는 순환적(?) 질환이라 할 수 있겠다. 모두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고 싶다는 세상에서 순간마다 스스로를 ‘새로고침’ 할 수 있다는 건 귀한 능력인 것 같다.
행복한 ADHD로 사는 게 가능할까?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되,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행복함을 정의하지 말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뭔지 정의하자는 뜻이다. 돈, 명예, 성공으로 가는 궁극의 10년 플랜보다 ‘내일 딱 하루만 알차게 보내기’라는 목표가 낫다. ADHD의 장기적 플랜은 대개 좌절로 돌아오고, 반복되는 실패는 행복에 큰 방해가 된다. 보잘것없는 성공 경험을 여러 개 쌓고, 그 티끌들이 보다 큰 성공을 견인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이다.
다만 뭔가 노력할 기운도 없을 땐 자신을 너무 채찍질 말고 놓아두어야 한다. 비난 같은 조언, 다정한 것 같은 다그침, 억지 열정 따위는 ADHD의 얼마 없는 인내를 좀먹는다. 저런 것들은 기본 문제의 탈을 쓰고 기분 문제를 만든다는 점에서 최악이다. 무기력에 대한 과집중이 곧 끝날 것이므로, 잠시 후까지만 행복을 유예하면 된다.
그리고 남의 말은 의외로 흘려듣는 게 낫다. 일이나 과제에 관한 육하원칙만 잘 챙겨 이행하면 된다. 나를 고치려는 남들의 사견은 얼마나 편파적이고 이기적인지. 나 역시 ADHD 진단 후, 너무 충격을 받아 내게 쏟아지는 타인의 피드백을 전부 수용하려 들었었다. 신경과민 평판 수집가처럼 굴면서 시 분 초 단위로 뭔가를 개선하려 했다.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거였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럴 땐 우리의 주특기인 ‘잊기’와 ‘노잼에 관심 끄기’를 사용해 안전해지자. 일단 안전해야 행복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