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면···
태어나 보니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가진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대한민국 최남단 모슬포는 섬에서 가장 너른 땅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지평선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겠지 하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 대신 아시다시피 수평선은 한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바다 너머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보다 저 한라산 너머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반농반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그 조건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밭일과 물질을 나누어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24절기에 맞춰 밭일을 하러 가기도 하고 물질을 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반농반어'라는 말이 이상해 보입니다.
자전거가 생긴 날을 기억합니다. 흔한 커다란 자전거가 아닌 날씬할 뿐만 아니라 앞에는 장바구니까지 달려있어서 멋지고 그렇죠. 실용적이었습니다. 들판을 달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을 때 저 멀리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나를 불렀습니다. 날이 곧 저물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고 했었습니다. 자전거를 돌려 돌아가려 할 때, 무언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을 때, 내 뒤에 있던 오름 뒤로 거대한 황혼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녹슨 철가루 같은 빛나는 인디언 레드와 터키 블루의 옥색, 깊은 파랑과 노랑. 온 세상의 오묘한 색을 다 합치고 섞고 재배열한 것 같은 거대한 노을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내 두 발은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목소리는 아련해지고 이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서른이 넘어 돌아온 제주에 어느 이제는 죽어버린 사람의 사진에서 그 노을을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나는 그 사진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진의 제목은 '삽시간의 황홀'입니다.
제주는 이제 인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제 방에 앉아 창밖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중국말이 더 많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위치가 그런 면도 있지만. 면세점 가는 길목이거든요. 그리고 이주민이라고 통칭되는 제주가 좋아서 아주 이사 온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한 달에 천 명을 넘겼다고 하죠. 그들은 제주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나 친지들이 놀러 올 때도 '제주는 이래.'라면서 서로 다르고 신기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러 방송을 통해서도 제주는 유사 이래 최고로 인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간혹 틀립니다. 제주에 대한 책이 넘쳐나지만,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기고된 글을 읽다가 자주 틀린 내용을 읽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그 의미와 현재까지의 변화의 과정, 어쩌면 작은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래를 그려봅니다. 그런 제주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제 이야기를 조금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푸념이나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