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돼지 잡는 날
돼지가 매달리는 날. 큰누나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전에 들어온 돼지 일곱 마리로 돼지우리가 가득 찼다. 돼지로 시작해서 돼지로 끝난다는 제주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이기도 하고 삼 일간의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며, 돼지 잡는 날, 손님 치르는 날, 그리고 결혼식 중 첫날이다. 가을로 잡혔던 결혼식이 불의의 사고로 연기되면서 을씨년스럽게 추운 겨울에 치르게 되었다. 어쨌든 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의견이 있어서였다.
돼지 한 마리가 밧줄에 묶여 끌려 나왔다. 집 앞에 있는 전신주 앞에는 경운기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돼지 목에 밧줄을 묶고 전신주에 걸어 경운기에 연결하고 출발하면 영락없는 교수형이다. 경운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돼지는 전신주 위로 딸려 올라가고 멱 따는 소리는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누군가의 집이 큰일을 치르려 한다는 신호로도 쓰였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겠지만 깃발처럼 달린 돼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 소리에 동네 사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마을에서 힘도 좀 쓰고 술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누군가 부러 임무를 부여하지 않아도 일사불란하게 빈자리를 꿰어차고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커다란 대야 몇 개와 양동이들. 보릿짚 단을 옮겨오고 누군가는 불을 피웠다. 전신주 아래에 보릿짚 단이 수북이 쌓이고 사내들은 전신주에 매달린 돼지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이윽고 돼지는 마지막 괴성을 지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사내들은 이제 됐다는 듯이 밧줄을 풀려 했다. 그때 잔치의 모든 돼지고기를 관장하는 ‘고기 도감’ 하르방이 “잠깐!”하고 소리쳤다. 사내들은 어린 시절 놀이라도 하는 듯이 얼음처럼 얼어붙었다가 미소도, 비아냥거리는 것도 아닌 멋쩍은 표정을 하며 한 발짝씩 물러섰다.
조금 더 기다리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돼지는 한 번 더 축 늘어지며 꼬리 부근에서 생전에 미처 버리고 가지고 못한 것들을 떨어뜨렸다. 인분을 한 번 더 소화한 것들과 여물들이 섞여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완전히 늘어진 돼지는 그래서 더 커 보였다. 사내들이 밧줄을 풀자 돼지는 전신주 밑 미리 깔아 둔 보릿짚 단 위로 푹신한 침대에 내려앉는 듯이 떨어졌다. 왠지 멋진 착지를 하는 체조 매트리스 생각을 했다. 다만 두 발로 사뿐히 하는 것이 아닌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을 밀착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보리짚 단에 불을 붙이고 그 짚단을 말아 돼지 털을 태운다. 마치 깨끗이 씻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물이 아닌 불을 붙인 보리짚으로 구석구석 앞다리 사이며 가랑이며 털을 다 그을려 태우고 나면 다시 고기 도감 하르방이 나설 차례다. 돼지가 매달리기 전에 이미 많이 갈아두었을 법한 짧고도 날카로운 칼을 다시 한 번 다듬고 제단이 된 보리짚단 앞으로 성큼 다가서서는 돼지의 배를 단칼에 가르고 한쪽 팔을 넣어 훑듯이 배 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 커다란 대야 속에 담는다. 쏟아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야는 다시 다른 대야로 교체되고 사내들은 양동이와 대야에 내장들을 분리하기에 바빴다. 한 양동이에는 간과 콩팥이 담겼다. 검붉은 간과 고동색의 콩팥은 노란 양동이 안에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내들은 당당하게 품삯이라도 받는 것처럼 양동이 주위에 모여 사발에 소주를 붓고 시뻘건 간과 콩팥을 칼로 끊어 굵은 바닷소금에 찍어 들이켰다. 그러던 중에 다시 다음 돼지가 끌려 나왔다. 그렇게 돼지들은 한 마리씩 자기 차례랄 것 없이 끌려 나와 같은 방식으로 결혼식의 재료가 되었다.
돼지 간과 콩팥 등을 생식하는 풍습은 제주의 풍토병이 되었다.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대낮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던 선생님을 보았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은 그때도 항상 마을의 가장 똑똑한 지식인 역할을 했는데 그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제주 말로 ‘쏠(쌀)’ 들었다고 말하는 돼지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크기 쌀알만 하고 살갗으로 그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머리로 올라가면 간질병 증세를 보였다. 마을에는 그런 사내들이 여럿 있었다.
사내들은 다 삼촌이었다. 형이라고 하기에 나이가 많으면 모두 삼촌이었다. 삼촌의 부인도 모두 삼촌이었다. ‘그 집 여자 삼촌’ 정도로 불렀다. 삼촌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간 한 점을 굵은 소금에 찍어 멀지 않은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를 불렀다. 달려가서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받아먹었다. 잠시 전까지 생명을 유지했던 내장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굵은 소금이 흩어져 있었다. 마치 향이라도 피운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그것은 분명히 맛있었다. 아직 온기가 느껴지고 싱싱했다. 그걸 먹어야 했다. 남자라면. 특히 마을에서 사내 축에는 들지 못했으므로 그걸 용감하게 먹어야 했다. 매번 계집애 같다고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았던 외할아버지 앞에서는 허연 비계만 골라 먹고, 점심 보신탕 심부름을 하면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용감하게 그것을 먹어야 했다. 그러면 외할아버지에게서 칭찬을 들었다. 식당 앞에 묶여있던 백구의 모습이 뚜렷하게 지나쳤지만, 여느 소년들처럼 남자가 되고 싶었다.
돼지들은 임시 부엌으로 쓰이는 창고로 보내졌다.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끓고 있었고 여자 삼촌들은 순대를 만들 재료만 빼고는 몽땅 그 안에 넣었다. 그 안에는 오늘부터 삼 일간 계속해서 삶아질 돼지고기와 온갖 부산물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창자 안에 속을 채우면 이 역시 솥으로 들어가긴 매한가지다.
낮부터 생간과 콩팥으로 막걸리도 아니고 맛난 소주를 들이켠 삼촌들은 멍석을 깔고 넉둥배기(제주 윷놀이, 작은 윷을 술잔에 넣고 던진다)를 시작한다.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지만, 이날은 아직 고기를 먹지 못한다. 내일 손님들에게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 삼촌들은 갯바위에서 가장 흔한 해초였던 몸(모자반)을 고기를 삶는 솥에 넣어 끓여 내었다. 몸국이다. 몸국은 그렇게 잔칫날이나 초상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고깃덩이나 몇 가지 부산물이 국물에 섞여 있기도 했고, 넉둥배기는 싸움이 나서야 끝났다. 첫판부터 계속해서 두 배로 판돈이 뛰는 노름판은 멍석에 그어진 금을 따라서 두 패로 나뉘고 윷은 간혹 서기도 해서 거칠고도 웅장한 함성이 마을의 늦은 밤을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