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 질 수록 부족한 것들이 있다
치앙마이에 온 지 보름이 지나자 생활은 점점 능숙해져서 어디에서 맛있는 빵을 파는지 낙농업이 없는 태국에서 어디서 치즈나 땅콩버터를 구할 수 있는지, 어느 식당이 점심이 맛있는지 알게 되었다. 새로 산 서랍장에 무엇이든 차곡차곡 마치 제자리인양 채워지듯 그렇게 생활은 촘촘해지고 시간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다.
아침은 사다 둔 빵과 무려 로열 프로젝트 슈퍼에서 사 온 샐러드를 먹고 아직 남아 있는 예가체프 커피를 에어로프레스(amazing for traveler)로 내려 마신다. 그 후에 몇 시간이든 끄적거리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고 반찬 없는 볶음밥(카오 팟)이나 덮밥(랏 카오)을 사 먹은 뒤 카페에 가서 글을 쓰거나 지금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한다. 그리고 가장 더운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서 수영장에 풍덩 빠져서 한 시간가량 놀이인지 운동인지를 하고 나면 기분이 훨씬 좋아져서 ‘역시 살아있다는 건 이런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밤이 오면 미리 점 찍어 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거나 아니면 도시락을 사고 잊지 않고 물 한 통을 산 후에 이제는 안면이 있는 경비 아저씨의 눈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밤이다.
어찌보면 무료하고 도무지 이러려면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사이 사이에 있는 틈새들에서 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을 버릴 데가 없으니 다른 사람이 내게 끼어들 틈새도 없어서 매번 혼자 다니게 된다. 이렇게 보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