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냉장고를 사 드리기 위해 너를 만나는 거라고!
머리가 온통 하얗고 그나마 몇 가닥 남지 않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타고 뒤에 간호사인지 아내인지 모를 태국 여인이 끌고 있다. 사랑을 표현하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이제 옆 파라솔에 앉아 그녀가 떠 먹여주는 요구르트 같은 것을 먹고 있다. 아마 그녀는 여러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 간호사, 청소부나 요리사, ·······.
쇼핑몰이나 동물원에 가도, 동네 카페에서도 그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보인다. 아주 늙은 서양 할아버지와 젊은 태국 여자. 대부분 잇산 여자들이라고 들었다. 태국 동북부 잇산은 예전 크메르(캄보디아) 영토이기도 하고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며 미군의 기지로 태국 정부가 통째로 내주기도 했던 우돈타니와 같은 도시가 있어 서양인들과의 접촉이 쉬웠다고 한다.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진다. 태국 사람들은 음식은 잇산 음식을 최고로 치면서도 뜻밖에 그 지역을 업신 여기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다른 흔한 풍경은 한국 남자와 태국 여자가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다. 한국 남자와 태국 여자가 같이 앉아 있다고 다 이상해 보이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손시늉을 해서 음식을 권하다가 남자는 이내 술이 잔뜩 취해버리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본다. 그외에도 매일 매일 클럽에 가는 사람들. 묘한 술집에 가는 사람들.
태국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들 자기 나라에서는 하지 못한 것을 하고 싶어서 오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예쁘기로 소문난 치앙마이 여자. 이 도시의 북쪽에는 많은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녀들도 가세해서 북부의 가장 큰 도시 치앙마이는 그쪽으로도 유명하다. 몽, 아카, 카렌, 여러 소수 민족의 여자들.
‘뿌잉’은 ‘여자’라는 태국말이다. 그런데 ‘치앙마이 뿌잉’이라고 하면 뭔가 의미가 더해진다. 거기다 입술을 히죽거리며 ‘치앙마이 뿌잉’이라고 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치앙마이에는 ‘치앙마이 뿌잉’들을 만나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가끔 태국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너는 왜 태국 와이프가 없어?’라고 내게 말한다. 음. 나도 알아. 많은 사람이 그런다는 것. 그런 목적으로 오기도 한다는 것.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여자들은 그 돈으로 고향의 부모님에게 냉장고도 사드리고 한다는 걸 안다. 누구에겐가는 천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천국도 돈으로 살 수 없다. 냉장고를 사드리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너의 천국이 내겐 지옥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내게는 권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