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지완 Feb 24. 2016

옆방의 그녀

빠이에서 치앙마이 가는 길

빠이에 두 번째 왔다는 옆 방갈로의 여자와 치앙마이로 가는 버스표를 샀다. 빠이와 치앙마이를 오가는 미니밴은 선착순으로 버스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 오늘 갈까, 내일 갈까 망설이는 빠이의 느림보 여행자들에게 확신에 찬 선택을 하게끔 하는 수단이다. 나와 그녀는 꽤 오랫동안 망설이다 샀기 때문에 맨 뒷좌석만 남아 있었다. 미니밴 맨 뒷자리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일단 좌석이 좁고 뒤로 제쳐지지 않으며 휴게소에서도 제일 늦게 내리고 가장 먼저 타야 한다.


생각보다 일찍 치앙마이 근교 도시인 매림(Mae Rim)이 보였다. 버스에 탄 지 이제 겨우 세 시간을 넘겼을 뿐이니 불편한 뒷좌석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서 치앙마이 아케이드 터미널까지 다시 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치앙마이 아케이드 버스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는 전쟁을 치를 시간이다. 


우선 가장 간단하게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공공 썽태우를 타는 것이다. 가격 흥정도 없고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일도 없다. 하지만 공공 썽태우의 가장 큰 단점은 밤에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 방의 그녀와 함께 내렸고 그녀는 타패게이트로 가고 나는 치앙마이 대학 후문으로 간다. 1번 공공 썽태우를 타면 이 모든 게 한 방에 해결된다. 1번 썽태우는 터미널을 지나 와로롯 마켓과 나이트 마켓과 타패 게이트를 지나 선데이 마켓이 열리는 라차담넌 거리를 관통해서 왓 프라싱과 쑤언덕 문을 지나 치앙마이 대학 후문에서 영업을 종료할 것이다.


옆 방의 그녀가 참겠다고 하는 걸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한 사이, 거짓말처럼 마지막 1번 썽태우가 내 눈앞에 섰고 조금 망설이듯 서 있다가 체념한 듯 출발해 버렸다. 그리고 곧 그녀가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 옵션 중 가장 좋은 방법을 우리는 놓쳐 버렸다. 그때 옆에서 관광 경찰 제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태국 경찰이 왜 그리 딱 붙는 제복을 입는지는 이제 관심이 없다. 어쨌든 아주 친절하게 우리를 반대편 길로 안내해서 손수 빈 썽태우를 잡아 주면서 하는 말씀. 


“원래 200밧인데 내가 150밧으로 깎았어. 저 아가씨는 100밧만 내면 되고.”


옆 방의 그녀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터미널을 나가 조금 걷다가 썽태우를 잡기로 해서 태국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자기가 그 방향으로 가니 같이 타자고 하는 것 같았다. 따라가서 썽태우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니


“너는 100밧. 저 사람은 50밧.” 이라고 말했다.


옆 방의 여자도 나도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고 이미 차에 탄 내가 길을 물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기사는 꺼지라는 손동작을 하더니 떠났다.


옆 방의 여자가 화라도 난 듯이 갑자기 걸었다. 너무 빨라서 내가 쫓지 못할 정도로. 혹시 내가 그 썽태우를 탔어야 했나? 한참을 쫓은 후에 ‘걸어서는 못 가요. 걸을 수도 있는 거리지만 너무 힘들어서 안 돼요.’라고 내가 말했다. 걱정했냐며 옆 방의 여자가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툭툭을 탔다. 100밧 부르는 걸 80밧에. 그 대신 나는 치앙마이 대학 후문이 아닌 그녀가 내리는 라차담넌 거리에 같이 내려야 했고 그녀가 숙소를 잡는 것 까지 도와줘야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배가 고프고 숙소 앞에는 멋진 식당이 있었다. 다음에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집이었다. 인터넷 평가도 아주 높고. 그러다 맥주를 마셨다. 낮의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온 피로감과 그녀는 며칠 간의 안식처를 찾았으니 맥주 마시기에 좋았을 것 같다. 내게는 아직 집에 가야 한다는 부담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밤이 늦을수록 집에 가기가 힘들어진다. 꽤 변두리이니까.


“한 병 더 마실까요?” 옆 방의 그녀가 말했다.

“그러죠.” 거절 못 하는 내가 말했다.

“이제 가야겠네요. 늦으면 집에 가기가 곤란해요.” 빈잔을 보며 말했다.


나가자마자 마침 썽태우가 왔다. 시내 중심부인 라차담넌 거리에서 도시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랑머처(치앙마이 대학 후문)까지 승객은 나 혼자였다. 도착해서 20밧을 주니 조수석에 있는 아마도 썽태우 기사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40밧이라고 했다. 뒤에 덧붙이는 말은 ‘멀리 왔고 다른 승객도 태우지 못했다.’는 것 같다. 20밧을 더 쥐여주고 서로 ‘캅쿤카’와 ‘캅쿤캅’을 주고받았다. 


아직 여행에서 만난 이성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모른다. 같은 남자끼리도 그렇지만 대게 남자는 내게 연정을 품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옆 방의 여자가 내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데도 내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걸 확연히 알려 주기도 어렵고 잘못 했다가는 어떻게 해도 나쁜 놈 소리를 면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걸 설명하는 것 또한 정말 힘들군.


호기심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빠이 이모저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