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말을 걸 때》

치유

by Jeeae

1장. 말이 없는 아이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아끼는 아이였다.


사람들은 종종 오해했다.

차갑다, 무뚝뚝하다, 예의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아이의 세계는 조용했다.

소리는 있었지만, 대부분 마음속에서만 울렸다.

누군가 웃으면 따라 웃고 싶었고,

누군가 울면 다가가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 모든 감정은 가슴 안에서만 맴돌았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어른들은 쉽게 물었다.

아이에게 그 질문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을 뿐인데.


아이에게 말이란

문장이 아니라, 용기였다.



2장. 친해지기 전까지의 시간


아이는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주 오래.


첫인상은 늘 같았다.

조용하고, 낯을 가리고, 어색한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마음을 열면 완전히 달라졌다.


말이 쏟아졌고

웃음이 늘었고

감정이 살아 움직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 문 앞에서 돌아갔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이 사람은 나랑 안 맞아”라며.


아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괜히 마음을 줬다가 잃는 게 두려워서.


친해지기 전까지의 시간은

아이에게 시험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만

아이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3장. 무대 위의 침묵


아이에게는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음악이 흐르면

생각이 사라졌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감정이 형태를 가졌다.


그때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소리를 멀리서 들었다.


무대 위에서조차

아이의 마음은 늘 조용했다.


그 침묵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집 같은 것이었다.



4장. 상처를 주는 말들


말은 참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하나가

사람을 며칠, 몇 달, 몇 년씩 괴롭히기도 했다.


아이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것들로

비난받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았다.


그날 밤

아이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죽고 싶다는 말과 닮았지만

조금 달랐다.


그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5장. 그래도 살아 있는 이유


아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얼마나 버텨왔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다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


그 모든 게

아이에게는 작은 기적이었다.


아이는 완벽하지 않았고

강하지도 않았지만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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