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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Nov 30. 2021

헤어스타일과 직장생활

  우리 엄마는 머리카락이 파마한 듯 뽀글뽀글한 아이를 낳았다. 엄마도 미처 몰랐는데, 아빠의 할머니가 그렇게도 심한 곱슬머리셨다고 한다. 증조 할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받은 내 머리카락은 10살이 되기 전까지는 봐줄만했다. 어린 아이의 조그만 얼굴에 부스스하게 꼬불거리는 머리는 귀여움을 보탰다. 그러나 10살이 넘으며 윤곽에 각이 지고  짱구 이마는 넓어진 채 안경까지 쓴 내 얼굴에 곱슬머리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중학교 시절 머리카락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정점을 찍었다. 여자 외모의 8할은 헤어스타일이라던데.. 내 헤어스타일은 가뜩이나 평범한 외모의 8할을 깎아버렸다. 당시 미용 기술로는 부스스한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성질만 부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채로 살았다. 앞머리는 유난히 더 곱슬거리기 때문에 뒤로 넘겨 똑딱이 핀 몇 개로 고정하고 나머지 뒷머리는 모두 합쳐 머리끈 한 개로 묶었다.

  헤어스타일을 포기한 채 3년을 보낸 성과는 있었다. 기대했던 대학교에 들어갔다. 내 머리를 펴줄 미용 기술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나 이 미용실 저 미용실을 전전했다. 나를 더 예쁘게 만들어 주면서도 관리하기 편한 스타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곱슬머리의 강점을 살려 아예 볶아버리자는 생각에 웨이브펌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헤어젤의 도움 없이 자연스럽고 깔끔한 웨이브 머리를 만드는 건 불가능 했다. 그렇게 볶는 펌, 펴는 펌, 각종 헤어크림과 젤에 시달리던 머리카락의 멜라닌 색소는 30대 초반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각종 펌도 모자라 이제는 염색까지.. 내 머리카락은 내 인생 최대의 난제이자 영원히 답을 주지 않는 숙제이기도 하다.

  아직도 나는 매일밤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일과를 생각한다. 지금 감고 자?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감아? 곱슬거리는 힘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내 머리카락.. 밤에 감고 자면 볼륨감이 없어지고, 아침에는 말려서 원하는 모양으로 드라이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내 머리카락으로 살아보지 않는다면 이 고통의 정도를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이게 그렇게나 심각한 문제인가? 오늘 저녁 퇴사하는 후배와의 회식에서 내가 흘린 눈물은 머리카락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데.. 힘들고 고되지만 그 어느 미용사보다 내 머리의 성질을 잘 아니, 아는 만큼 최대한(?) 예뻐보이게 할 수는 있잖아.. 이런 머리로 이 정도 미모(?)를 유지하는 게 어디인가.. 내 머리카락이 내 적성과 밥줄과 노후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까. 아예 할머니가 된다면.. 더 이상의 펌도 염색도 없이 힘이 조금 빠져 덜 부스스한 네츄럴 컬리 헤어로 살아갈 수 있겠지.. 최소한 적당히 펴는 펌을 한 머리를 짧게 잘라 바싹 말린 후, 쿠루프를 사방에 말고 1시간 정도 후에 빼서 잠들면, 다음 날 아침 롤파마를 살짝 한 커트 머리의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내 특수한 머리카락을 다듬는 좋은 방법 한 가지를 알았으니.. 19년째를 맞이하는 내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이나 더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이번에 상무로 진급한 친한 동료이자 언니이자 상사인 k에게 유치하게 행동했던 내 모습이 내 머리카락보다 백배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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