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는 얼마 전에 엄마를 잃은 슬픔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얼마나 심장이 뜯기는 것 같은지…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장례식에 왔던 회사 사람들에게 쓰는 감사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하나 받았다고 한다. 내가 속한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10년 전 어머니를 잃은 그녀는 처음에는 인생의 반을 잃어버린 느낌이지만 점점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동료는 다시 강조한다. 그녀처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라고…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하시면서 원칙과 프레임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원칙이 생겼다. 애사에는 참여해야 하고 경사에는 가지 않는다. 조의금은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10만원에 사비 10만원을 더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녀가 설명하는 감정을 절대로 느낄 수 없다. 내가 어떤 위로를 해도 그녀는 위로받지 못한다. 나는 어머니를 잃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므로…
내가 그녀와 어머니를 잃은 타인들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오만하지는 않는다. 특히 불치병으로 충격과 간병의 고통이 컸던 그녀와 그녀 가족의 지난 시간을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0대 중후반인데도 집중할 남편과 사랑을 쏟을 아이가 없는 싱글이기 때문에, 사춘기 소녀처럼 부모 잃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고 싶지는 않다는 원칙(?)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다. 동일한 경험이 없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녀는 싱글이라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자녀의 입장을 벗어나 독립된 어른이고 싶은 것 같다. 그렇게 어른답게 그녀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고 싶다.
대선 캠페인 중에 어느 댓글을 읽었다.
“결혼 안해보고 아이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 될 자격 없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일을 할 자격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경험의 과정에서 적절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감정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간접 경험으로 더 풍부한 인사이트와 성찰을 통해 필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법륜스님이 결혼이나 출산 경험 없이 셀 수 없이 다양한 가족들이 겪는 문제 앞에서 깨달음를 설파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나도 내가 경험한 것들을 뽐내며 타인을 소외시키고 자만심에 빠져있지는 않을까. 누군가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려 할 때 단지 경험 유무만으로 그의 자격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매일 겪는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