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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May 15. 2021

1인 생활자 시대에 필요한 것

얼마 전 우리 팀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전자회사에서 고객 트렌드를 연구하는 팀을 맡은 지 어느새 6년 차다. 매년 연말이면 일부 인원이 다른 조직으로 가거나, 다른 조직 인원이 우리 팀으로 들어오는 식의 조직개편이 있다. 연중에는 주로 퇴사로 인해 사람이 빠지기는 해도 새로 들어오는 일은 없는 편인데, 올해는 예외다. 우리 회사가 휴대폰 사업을 접기로 하면서 해당 본부 직원들이 다른 조직들로 분배(?)되었고, 우리 팀에도 그중 한 명이 들어왔다. 나보다 16살은 어린 20대 후반 밀레니얼 세대. 부서 배정 전에 꼭 우리 팀에 오고 싶다고 자신을 좀 더 주의 깊게 봐달라고 정성스러운 이메일까지 썼던 당찬 친구다. 불행히도(?) 빈자리가 팀장 앞뿐이라 나와 마주 보고 앉아야 하는 막내 직원. 실장님께 인사시키고, 간단한 면담을 하고, 점심도 사준 후 자리에 앉아 문득 생각한다. ‘내가 싱글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어야 하나?’


지금은 꽤 많이 둔해지고, 걱정의 수위도 낮아진 편이다. 39살에 팀장이 되면서 내 나이 이상의 사람들과 미팅이 잦아지면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끔찍이도 싫었다. 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족 고객에게 가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에 있다 보니, 소위 모두가 정상(?)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가정 하에 미팅이 진행된다. '우리 남편은 이래요, 우리 와이프는 아니던데, 우리 애들도 그렇더라고요' 등등. 그리고 오가는 대화 속에 나에게도 질문이 떨어진다. '김 팀장님 남편이 이렇다면 어쩌겠어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질문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다. 저들에게 상식인 남편과 아이가 없는 내 처지(?)가 부끄러웠다. 동시에 그들의 상식 밖(?) 삶을 살고 있다는 내 대답에 당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마에 맺히던 땀이 흘러내리고 붉어진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는 것이 참 싫었다. 다시 새로 만난 그들은 팀장쯤 된 내게 남편과 자녀가 있으리라 예상하고 대화를 했다. 나는 다시 당황했고, 당황하는 그들 때문에 힘들어지는 일들이 빈번했다. 내가 그 상황에서 매번 힘든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정을 만들지 못한 루저라는 생각이 내게도 깔려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건 나와 같은 비혼 싱글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출간한 책 <나는 사별하였다>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이정숙 씨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사별 후 건강검진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울먹이며 들려주었다. 수면 위내시경을 위해 보호자 정보를 적으라는데, 남편을 잃은 자신은 적을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맙소사... 불과 1주일 전 건강검진 접수 중에 나도 똑같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사별한 자, 결혼하지 않은 자, 그리고 혼자인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을 텐데, 접수증의 보호자란은 왜  그대로 있는 걸까?


나는 정확히 1인 가구는 아니다. 70대 노부모님과 한 집에 산다. 그러나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그 밖의 시간에도 필라테스 센터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글쓰기 수업에 나간다. 설사 집에 있다 해도 주로 내 방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주말을 제외하면 식사도 거의 직장 또는 밖에서 해결하고, 가전과 같은 공용 제품을 제외한 모든 쇼핑도 혼자 한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활 방식이 아닐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활을 이미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예정인데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몇 년 전 우리 팀에서 1인 생활자 시대라는 트렌드 리포트를 썼다. 1인 "가구"가 아니라 1인 "생활자"라고?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1인 가구 비중이 적게는 30%, 많게는 50%를 넘었다. 그러나 사실 혼자 생활하는 사람 수는 훨씬 더 많다. 한 집에 산다고 해서 혹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늘 누군가와 함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에는 미혼이나 이혼보다 사별로 인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법적으로 2인 이상의 가구로 기록되어 있는 가정에도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기러기 아빠, 형제나 자매 혹은 친구와 동거 중인 자, 공유 주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부터 각 방 생활하는 부부나 각자의 생활시간이 천차만별인 중고등학생을  3-4인 가족에 이르기까지... 같은 공간에 함께 살더라도 생활과 소비는 분리된 사람들의 비율까지 따지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이것은 모름지기 사람이란 태어나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금실 좋은 부부라도 한 날 한 시에 죽는 행운을 얻기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1인 생활자라고 또는 살면서 한 번쯤은 1인 생활자로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1인 생활자 시대라는 리포트를 경영진 또는 외부에 설명할 때도 다음과 같은 나의 발언에는 싱거운 웃음이 따른다.

"이 말인즉슨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한 번쯤은 혼자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웃음은 '정말?'이라는 공감보다 '설마'라는 비공감에서 터지는 듯하다. 많은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나도 그러하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지난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 중에 공약 1호로 내세웠던 1인 가구 특별대책 TF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30%가 넘는 1인 가구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이란다. 1인 가구 수요 조사를 통해 5대 고통 즉, 안전, 질병, 빈곤, 외로움,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2030년이면 한국의 1인 가구가 33% 이상으로 가장 많고 3-4인 가구는 각각 30%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데, 1인 가구를 관리하는 정책이라니 아이러니하다. 1인 가구를 고령, 저소득, 취약계층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책 방향이다. 홍은전이 <그냥, 사람>에서 말했듯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과 나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오늘날 미국 성인 인구의 25퍼센트는-35년 전보다 두 배로 는 숫자다-혼자 살고 있다. 모종의 불행한 이유로 혼자 살게 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이혼, 두려움, 지리, 그 밖에도 갖가지 운명과 타이밍과 상황의 장난으로), 그렇다고 해서 혼자라는 사실이 본질적으로 안타까운 상태인 양,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당연히 취하지 않을 상태인 양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잘못된 시각이다.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42쪽)


1인 가구를 안타까운 상태 혹은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면 당연히 취하지 않을 상태로 인식한 지원 정책은 출발점으로 좋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신체적/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1인 가구들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아닌 1인 생활자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취약 집단에 대한 지원 개념을 넘는, 정상 가정 그리고 보편적 삶으로의 인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훈 시장의 특별 대책보다 같은 달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안이 더 반갑다. 가족 형태를 가리지 않고 모든 가족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없이 모든 가족이 보편적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나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시작한 청약 통장을 들고서도 아무런 가점을 받을 수 없다. 회사에서 지원받는 배우자 건강검진권을 부모님 건강검진으로 바꾸지 못해서 아쉽다. 너무 아플 때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18년쯤 일했으면 2-3개월 휴직 정도는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필라테스 센터에서 "어머님"이라는 호칭보다 "회원님"이란 호칭으로 쭉 불리고 싶다. 무엇보다 혼인, 자녀 관련한 대화보다 개인 삶의 비전과 각자가 선택한 다양한 가정의 형태 대한 대화가 일상적이기를 가장 희망한다.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24쪽)


비단 나와 같은 싱글뿐만이 아니라, 고시원에 사는 20대 청년도, 육아에 치여 외로운 밀레니얼 주부도, 아내를 잃은 중년 남성도, 자녀를 출가시킨 노부부 불가피한 혹은 다르게 선택한 가정 형태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호모 사피엔스는 혼자일 때도 여럿일 때도 위험을 감수하고 산다. 캐럴라인 냅이 말하듯, 고통은 혼자일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족 계획 법안이 통과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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