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과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을 읽고...
얼마 전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소설 <거짓말이다>의 저자, 김탁환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양재에 있는 회사에서 칼같이 퇴근을 해도, 강의 시작 30분 후에야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강의실에 도착한 시간에, 작가님은 본인이 왜 <거짓말이다>라는 장편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막 마치신 듯했다. 이후로 왜 그리고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작가님의 설명을 통해 소설 쓰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소설을 쓰는 목적과 순서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의 일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 <표현의 기술> 서두에 의하면, 어느 건축 디자이너도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강의를 듣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건축 디자이너는 본인의 생각을 유시민 작가에게 전함으로써, 이 세상에 <표현의 기술>이라는 책이 나오는 데에 큰 기여하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히는 문제하고 똑같았어요. 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말이 이 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 4-5)
생각해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일들의 원리는 유사하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문제들을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직업 아닌가. 글쓰기 또한 그러한 직업 중의 하나이겠지만, 김탁환 작가의 강의와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14년간 같은 직종에서 일하면서 깨닫지 못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회사에서 주야장천 쓰는 보고서도 하나의 '글'이라는 것을.
이 책은 <글쓰기 특강>, <논술 특강>에 이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안내서이다. 그의 이전 책들과 다르게,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지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이 중심을 이루고, 그와 유사한 경험이나 생각에 대한 정훈이의 짤막한 만화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형태의 책이다. 그러나 책의 3분의 2 지점에서 유 작가의 글은 끝을 맺고, 나머지 3분의 1은 정훈이만의 표현의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그의 자전적인 만화로 마무리된다. 이는 글이 중심이고, 삽화는 거들뿐인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작가'와 '만화가'의 공동작업 결과였다. 역시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유 작가님!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들을 유형 별로 묶어 정리하고 작가의 의견을 덧붙여 다듬은 에세이이다. 그러다 보니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고 순서대로 설명하는 가이드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글 쓰는 과정에서 늘 궁금했지만 알기 어려웠던 것들 즉, 글을 쓰는 이유, 책을 읽는 이유와 방법, 이념의 반영, 악플 대응, 표절의 정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의 특성, 글의 종류에 따라 잘 쓰는 방법 등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각종 기술들'이 사례와 함께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표현 기술들 속에서도 이들을 관통하는 네 가지 정도의 큰 맥락이 존재한다.
첫째,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것과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 사이에 울타리를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생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글은 저절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정치적 목적을 잘 이루려면 아름답게 글을 써야 합니다. 저는 그 둘을 굳이 나누려는 태도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편향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는 오로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 실감 나게 문자로 표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p. 32)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역사에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 그러나 유시민 작가는 그중에서 마지막 이유 즉,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 위함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나머지는 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작가나 칼럼니스트와 같은 전문 직종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일터에서 쓰는 이메일이나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더 나은 의사결정을 통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둘째, 글을 쓸 때에는 어떤 문제에 대해 쓸 것인지를 결정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든, 자료를 찾기 전에 먼저 질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을 잘 만들면 글은 이미 절반은 완성한 거나 다름없어요. (p. 194)
유시민 작가는 이 문제를 질문이라 했고, 김탁환 작가는 핵심 질문이라 했다. 나의 일터에서는 이것을 Key Question이라고 한다. 내가 팀원으로 일을 할 때에는 Key Question이 명확해야 좋은 결론이 나왔다. 이제 팀장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니, Key Question이 명확한지 아닌지에 따라 팀원의 결과물에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좋은 글 또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하다. 핵심 문제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사유하는 직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를 찾을 수는 없다. 직접 경험이 어려울 때에는 독서라는 아주 편리한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 단 책을 쓴 사람에게 충분히 감정을 이입해서 읽어야 직접 경험과 같은 효과를 누리고, 평가와 비판까지 할 수 있다.
셋째,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와 공감이 쉬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것도 많고 글 쓰는 기술도 좋은 사람이 독자가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로 남의 공감을 받으려면 타인의 생각과 시선과 감정으로 자신이 쓴 글을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정보와 지식과 논리를 지녔고 아무리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독자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베스트셀러 글'은 쓰지 못합니다. (p. 133)
아무리 좋은 지식, 논리, 생각, 감정을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는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평이라면 예비 독자의 입장에서, 자기소개서라면 채용담당자의 입장에서, 보고서라면 의사결정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이 좋은 글이고, 이를 통해 글쓴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고객의 특성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사업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이 내가 다니는 연구소의 주요 업무이다. 그러나 수년 동안 쓰고 또 써도, 연구원들에게 좋은 보고서를 쓰기란 쉽지 않다. 14년간 해온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좋은 보고서를 쓸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있다. 보고서를 문서라기보다 대화의 매개라고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내 보고서를 막 받아본 경우일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라고나 할까.
유시민 작가는 책날개에 쓰이는 자기소개에서조차 상대방을 배려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현대사에 대한 책이라면 현대사를 체험한 유시민을,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면 작가로서의 전문성을 갖춘 유시민을 묘사하였다. 문득 <거짓말이다>라는 책날개에 쓰인 김탁환 작가의 소개말이 떠오른다. '소설가' 단 한 단어. 이 사무치도록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쓴 이에 대한 소개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시각과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놀라운 사실은,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말이 아닌 글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글 쓰는 사람이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만큼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한 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글을 씁니다. 예전에는 말로 하던 많은 것을 지금은 글로 하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 '필담'의 시대입니다. '이장님 방송'은 시골에만 남아 있고 인터넷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 카카오톡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내부 회의까지도 인터넷 메신저나 인트라넷이 대신하는 추세입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전자결재를 한다는 것은 곧 글이 말을 밀어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보다 글이 더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된 것이죠. 대가족과 작은 지역 공동체가 있던 생활공간을 다양한 동호회가 차지했고, 동호회 내부 소통 역시 말보다는 글이 맡고 있습니다. 다들 일터에서는 업무 때문에 글을 쓰고, 일터 밖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려고 글을 씁니다. (p. 230-231)
이러한 필담의 시대에 문장을 쓰는 기술과 표현하려는 콘텐츠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읽는 이들의 감정 이입을 끌어낼 수 있는 마음씨나 인생관 없이 좋은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멋진 문장을 쓰려고 갖가지 기교를 부렸으나, 재미도 없고 공감도 되지 않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쓴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글을 읽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생각과 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정립해 나가라고 한다. 그리고 거꾸로 글쓰기를 통해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연습도 하라고 한다.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 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리,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근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에요. 체력, 돈,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p. 231)
<표현의 기술>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이란 나와 다른 이들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공감하거나 부딪히며 쌓아가는 시간의 모임이 아닐는지. 결국 이 책은 글로 표현하는 기술을 통해 삶 자체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주는 듯하다.
<표현의 기술>을 읽고 나니, 문득 JTBC의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인국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읽기와 듣기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고, 쓰기와 말하기는 나에 대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읽기와 듣기에 머무르지 말고 반드시 쓰고 말해야만 나의 것이 성립된다고. 나의 것이 성립되지 않으면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세상을 더 좋게 변화시키기 위해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세상의 변화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더 나다운 내가 되기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그로 인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겠다. 더 좋은 생각과 감정을 갖추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 글쓰기를 통해 더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가야겠다. 이러한 삶을 기원하는 유시민 작가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말아야겠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p. 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