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했다. 서운했다. 꽤나 아끼고 신경 쓰던 팀원이었다. 거칠게 생긴 외모와 달리 섬세한 감정을 가진 친구였다.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우쭈쭈" 해주어야 힘을 내어 일하는 아이 같은 멤버였다. 그 어떤 불손하고 불성실한 팀원보다 다루기 어려운 존재였다. 매일 트렌디하고 약간은 괴짜스러운 패션을 즐겼는데, 그 옷 등짝에 "Fragile"이라는 스티커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대학원 동기 중 부산, 김제 등에서 대학 강사 일을 하고 있는 J 언니가 일전에 그랬다. 강의를 열심히 듣는 친구보다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 친구가 언니를 더 긴장시킨다고. '왜 딴 데를 보지? 내 강의가 재미없나? 내 강의에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심플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팀원에게는 가치 있는 일을 주지 않고,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어렵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팀장 경험 몇 년을 거치면서, 근래에 세운 나만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예민한 팀원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본인은 힘들게 일하는데, 주변인들은 쉬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만 일감이 몰리는 일은 모르던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K의 경우는 달랐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인사이트, 전공 기반 통계/수학 지식에는 능했다. 그러나 회사가 요구하는 보고서 기반의 스토리텔링이나 효율적인 업무 진행은 부족했다. 야근, 특근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장점을 어필하려는 노력과 단점이 어우러져 오래 일해야만 했다. 입사 때부터 그렇게 꾸준히 성실성을 보였기 때문에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인사고과와 같은 객관적 점수를 말한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또한 근래 보기 힘든 성실함과 근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내 딴에는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임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관리자라면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휴가 1개월 동안 몰아쉬기'를 허락했다. 그가 취미이자 부업으로 회사 밖에서 하는 수입활동(?)을 높게 사고 인정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내가 열심히 해도 이 조직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말에 서운하고 말문이 막혔다.
그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지는 않으나, 인정은 받고 싶다고 했다. 공식적인 인정은 받고 싶지만 승진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인사고과는 연봉에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서 본인에게 아무 의미 없고, 회사 바깥 활동을 통해 소득은 늘리면 된다고 했다. 회사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인재 Pool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Pool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A 부서로 이동은 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이렇게 모순되는 요구를 하게 되는 것인가. 입사 5년 차, 어떤 프로젝트도 이끌어본 적 없고, 어떤 큰 성과도 달성해본 적 없는... 훌륭한 지원 역할을 통해 인정받은 후배의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몰라보였다. 한창 조직개편 시즌이라 여러 조직에서 성실한 주니어를 영입 중인 와중에, 몇 번의 제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우쭈쭈. 우쭈쭈"는 고작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외동아들을 키워낸 것인가.
일단은 팀장으로서의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했다. 1순위는 본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A부서로의 이동이고, 2순위는 인재 Pool에 들어가서 이 조직에 남는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결정 권한은 나에게 없기 때문에, 요구조건을 가지고 실장님과 그 상위 임원 면담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리고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데도 남들이 가진 것들을 탐내고 있는 것 같다고. 네가 받는 인사고과, 대내외적 인정, 타 부서와의 협력과제 등은 다른 친구들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기회라고. 기회를 갖지 못해 할 수 없이 휴식을 취하는 그들이 왜 부러우며, 네가 조절할 수 있는 업무시간과 건강 조절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이냐고. 강요하지 않는 "자발적 몰입"과 "타인과의 비교" 대해 주변을 탓하는 것은 A부서에 가도 마찬가지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현재 얻고 있는 것과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한 부연도 했다. 남들에게는 변명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꼰대로서 하는 충고가 아니라,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답답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시작한 말이었다.
나는 K를 우리 팀에 붙들 의욕을 잃었다. 30대 중반이 넘어 스스로의 행복의 원천을 모르고, 불행으로 몰아가는 그를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근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 등에 대한 환상박살(?)이 매우 반갑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임상심리학자인 허지원 교수는 팟캐스팅 "책읽아웃"에서 말했다. "수많은 정신/신체 질환이 일어날 확률을 모두 합치면, 카페에 100명이 앉아있다고 가정할 때 해당 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래서 그 질환을 갖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운을 누리고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아도 된다"라고. '나만의 인생 찾기', '퇴사' 등의 신드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었다.
내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면서 남들은 편한데 이게 뭐냐는 식의 불평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K를 원망하기보다 내 인생을 다시금 반추해 보기로 했다. 나는 혹시 양손에 원하는 것을 가득 쥐고, 둘 다 갖게 되면 너무 힘들고 둘 다 포기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없는지. 남들이 잠깐씩, 살짝, 예의상 혹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내뱉는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지며 거품 낀 자신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잘하는 부분은 더욱 발달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 이전에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지.
우연히도 어젯밤에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영어학습법으로 스타가 된 손성은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유튜브 콘텐츠와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그녀의 학습법을 따라 하다 멈춘 지 몇 달이 지났다. 여러 가지 계기로 그녀의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재기하던 참에 그녀의 인생 이야기도 다시 듣고 싶었다.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학비와 생계를 유지하며 대학에 다녀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강하기 시작한 영어강의에서 자괴감을 느낀 후 각고의 노력 끝에 유창한 영어실력과 학습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감동을 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다른 데 있다. 대학 시절 영어강의에서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그녀는 부족한 환경을 탓했다고 한다. 아버지 사업 실패, 스스로 벌어야 했던 학비, 그래서 가지 못한 유학이나 어학연수 등. 남들은 하는 것을 나는 하지 못해서 영어실력도 형편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영어 독학 선배의 노하우를 응용하여 자기만의 실력을 쌓아나가면서, 주변 환경을 탓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환경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마다 글을 쓰기를 잘했다. 오늘 느낀 이 감정을 친구들에게 떠들어봤자, 나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글을 통해 K에 대해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론이다. 말로 토해내기보다 글로 정리하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습관 만들기. 앞으로 또 어떤 부정적 감정으로 내 인생의 나침반을 재정비하게 될까. 삶에서 앞으로 일어날 부정적 감정이 궁금해지는 신기하고도 묘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