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got you so mad anyway?

미셸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 7, 늘 왜 화가 나 있을까?

by 영지
What's got you so mad anyway?
대체 무슨 일에 그렇게 화가 나시는데요?


미셸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 7, 오늘의 이야기는 미셸의 조부 댄디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미셸이 놀러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항상 뭔가에 화가 나 있다. 보다 못한 손녀 미셸이 할아버지에게 용감하게 내던진 질문이다. 가끔 조금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 댄디 할아버지. 그에게 미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어린 미셸은 결국 그런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If this were an American Dream story, Dandy, who arrived in Chicago in the early 1930s, would have found a good job and a pathway to college. But the reality was far different. Jobs were hard to come by.
만약 이것이 아메리칸드림 이야기라면, 1930년대 초에 시카고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좋은 직장을 구하고 대학에 진학할 길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일자리는 구하기 어려웠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표현이 미셸오바마의 자서전에 등장한다. 수많은 한국의 이민자들이 가졌던 비슷한 꿈을 그 땅에서 태어난 수백만명의 흑인들도 가졌단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차별은 낯선 땅에서 건너온 동양인보다 그곳이 고향인 흑인들에게 더 가혹했던 것 같다.


상상이 되는가. 흑인은 노조나 조합에 가입할 수 없기에 전문 기술을 가졌어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관리자급은 유럽 이민자들과 백인들이 당연하게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잡역부나 일용직 자리는 흑인의 몫이 된다.


이걸 오롯이 겪어 온 댄디 할아버지가 가졌을 사회에 대한 불만. 그리고 TV 속 수많은 흑인 청년들이 마약, 섹스, 폭력에 휘청거리는 모습에 그가 느꼈을 절망감. 미셸오바마가 회상하는 댄디 할아버지의 '분노(anger)'는 바꿀 수 없는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하는 미국 내 흑인 사회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비친 듯하다.


This particular form of discrimination altered the destinies of generations of African Americans, including many of the men in my family, limiting their income, their opportunity, and, eventually, their aspirations.
이런 특수한 형태의 차별 때문에, 우리 집안 남자들을 비롯하여 여러 세대 흑인들의 인생 경로가 바뀌었다. 그들은 수입, 기회, 결국에는 꿈마저 제약당했다.

미국 사회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많은 흑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할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숙명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였던 것일까. 백안관의 주인이 된 그녀는 댄디 할아버지의 '분노'가 아닌 그녀만의 현명함으로 미국 사회를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바꿔 나가는 시도를 한다.


패션 잡지 <보그>의 커버를 세 번이나 장식한 그녀. 상대적으로 백인이 주도하는 패션계에서 자신이 직접 모델로 나서는 기회를 적극 활용한다. 느긋하고 당당한 미소의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커버를 장식한 그 잡지를 보면서 흑인 모델 그리고 모델을 꿈꾸는 수많은 흑인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그렇게 그들에게 어떤 꿈이든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분노나 절망이 아닌 미국의 흑인들에게 당당하게 꿈을 꿔도 된다고. 그녀가 그랬듯이.

But still, Dandy would remain unable to see his children's accomplishments as any sort of extension of his... my grand father lived with the bitter residue of his own dashed dreams.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자녀들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서 위안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자신의 산산조각 난 꿈들이 남긴 씁쓸한 잔해를 그러안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도 점차 완화되고 댄디 할아버지 다섯 자녀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나름의 행복과 꿈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자식들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그도 위안을 받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그러질 못했다.


누구나 선택을 한다. 사회를 바꾸던가, 자신을 바꾸던가 혹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던가. 댄디 할아버지는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기에 그의 분노와 절망도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미셸은 그렇게 댄디 할아버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금은 슬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If my questions for Dandy were hard and unanswerable, I soon learned that many questions are just that way.
내가 할아버지에게 던진 질문은 어렵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질문이 그 밖에도 많다는 걸 나는 곧 깨달았다.

늘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할아버지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미셸은 스스로 결코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그 답을 가지고 있었다면 댄디 할아버지가 그토록 오랫동안 화를 내지 않았을 테니까.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넘쳐나는 세상의 이면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소녀 미셸 오바마. 앞으로 그녀 앞에 놓이게 되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 어린 미셸에게 댄디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세상의 적나라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불공정한 제도와 대를 잇는 차별과 가난 등등. 눈에 보이는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사회를 바꿀 것인가. 나를 바꿀 것인가. 나의 생각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댄디 할아버지처럼 종일 '화'만 낼 것인가. 나의 선택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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