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d was there to listen

미셸 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 5, 경청하는 아버지

by 영지
When somebody had problems with garbage pickup or snow plowing, my dad was there to listen
아버지는 사람들이 쓰레기 수거나 제설 작업에 관해 불평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요즘 시대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SNS 텍스트 메시지로 각자의 느낌과 의미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진 지금.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이고 능력일까? 미셸 오바마, 그녀가 진정한 '그녀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어린 시절 민주당 선거운동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한 경험을 중심으로 오늘 다섯 번째 비커밍 '필사'의 기록을 정리해 본다.



To my dismay, he never rushed anyone along. Time, as far as my father was concerned, was a gift you gave to other people.
나로서는 실망스럽게도, 아버지는 사람들의 말을 재촉하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시간이란 타인에게 베푸는 선물이었다.

시카고 사우스사이드(Southside) 지역 민주당 당원이었던 미셸의 아버지. 그는 지역구 주민들 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들을 정리하여 당에 전달하는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종종 미셸은 이런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선다. 어린 미셸에게 주민들의 시시콜콜한 얘기에 반응하고 경정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곤혹스러웠을 터. 하지만 당시에는 한없이 지루했던 이 시간이 이후 그녀가 정치인의 아내가 되어 백악관의 여주인이 되었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He clucked approving at pictures of cute grandkids, patiently enduring gossip and long litanies of health woes, and nodded knowingly at stories about how money was tight. 아버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손주 사진을 과연 귀엽다는 표정으로 들여다보았고, 시시한 소문이나 건강상의 괴로움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참을성 있게 들었고, 살림살이란 왜 이렇게 늘 빠듯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의 사소한 일상에 귀 기울이는 능력.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 어린 공감을 하는 것.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부분 아닐까. 미셸의 아버지는 당원으로서 보다 많은 흑인들을 선거에 참여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또 최선을 다했기에 그는 그토록 오랜 시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반기고 그와의 대화를 기다린다. 진정성을 담은 작은 움직임이 가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셸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다.


미셸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했고, 심지어 낮에는 시 소속의 작은 사업소에서 기술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퇴근 후 기꺼이 자신의 남는 시간을 타인에게 선물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그의 이런 활동이 뭐랄까 깊은 경외심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상에서 그걸 실천했기에. 사실 주위를 봐도 그런 사람 별로 없지 않나.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어린 딸은 지루해서 죽을 맛이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만큼 좋은 부모교육이 있을까 싶다.


My dad had faith in his own utility. It was a point of pride. 아버지는 자신의 쓸모를 굳게 믿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자긍심이었다.

'에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요?' 지금까지 나는 이런 얘기를 참 많이도 들었고, 또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 속 감춰진 위대함을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평범함'은 누군가가 정의해 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단정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나름의 실천과 노력을 통해 위대한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 아니 그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미셸 오바마의 아버지가 믿었던 그 자신의 '유용성(utility)'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자신의 가치와 쓸모에 대해 스스로가 가장 먼저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우연히 누군가에게 그 능력이나 자질이 발견되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무모한 기다림 아닐까. 그런 면에서 미셸의 아버지는 자신의 쓸모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일상에서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결코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 오직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준다.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그는 누구보다도 멋진 '남편'이자 '아버지'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None of this would be easy or comfortable if it came to it, and there were, of course, no guarantees that any of us would survive. But if the very worst happened, we at least had a plan.
물론 막상 일이 닥쳤을 때 상황이 이렇게 쉽거나 편하리라는 법은 없었고,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살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에게는 최소한 계획이 있었다.

화재에 취약한 흑인 밀집지역,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미셸의 오빠 크레이그(Craig)는 이런 상황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늘 불안에 시달렸고, 급기야 미셸의 같은 반 친구 세 남매가 화재로 죽는 사고까지 일어난다. 온 가족은 화재에 대피하는 실제 훈련을 했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지시를 묵묵히 따른다. 늘 위험에 노출된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미셸의 가족이 실시한 '가족화재대피훈련'은 내게 참 신선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을 남긴다.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내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한국은 이미 '휴전'인 곳이었다. 언제든지 전쟁이 다시 터질 수 있는 '휴전이 일상'이 된 곳. 이런 나에게 미셸 가족의 화재대피훈련과 최소한의 대피 계획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배웠고 또 나의 아이에게 알려주었는가? 겨우 화재대비훈련이다. 너무 생뚱맞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땅에 당장이라도 뭔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긴장감이 있었음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뭐든 미리 대비해서 나쁠건 없지 않을까. 일상이 됐든 곧 닥쳐올 위험이든 '대비'(Preparation) 그 자체가 주는 의미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본다.




미셸 오바마, 그녀의 어린 시절 작은 에피소드들이 내게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필사'의 기록을 적어 나가면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었고, 또 그때마다 다른 측면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누군가의 일생을 어린 시절부터 읽어나가는 작업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앞으로의 필사의 작업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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