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one had scratched a line

미셸 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 4, 누군가 그어 놓은 상처

by 영지
Someone had scratched a line across the side of his be loved Buick
누군가 아버지의 아끼는 차 옆면을 가로로 길게 긁어놓았다

미셸의 가족은 한때 동네 이웃으로 가깝게 지냈던 스튜어트 가족이 새로 이사 간 시카고 외곽의 백인 밀집지역 '파크 포리스트'를 방문하게 된다. 두 가족은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 둔 아버지의 차(Buick)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란다. 날카로운 것으로 그들의 차가 심하게 긁혀 있었던 것이다. 그 동네의 누군가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셸 가족에게 그어 놓은 상처였다.


<5년 후 나에게 Q&A a Day>란 책을 아는가? 지난해 말 친한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알게 된 다이어리 책이다. 매일 하나의 질문이 나에게 주어진다. 총 365개의 질문(날짜별 다른 질문이 적혀 있다)에 3~4줄의 나만의 짧은 답변을 적는 형식이다. 그렇게 5년 동안 동일한 질문에 5번의 답을 적는 일종의 '질문과 답변의 기록'이다. 나는 이 다이어리를 지난해 11월부터 쓰기 시작했고 오늘도 내게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What makes you cynical?
나를 냉소적으로 만드는 것은?


오늘 내가 기록한 답은 "타인의 무례한 말이나 행동"이었다. 이 질문에 답한 후 읽은 미셸 가족의 일화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바로 예기치 않은 상처나 위험에 대한 '대비'(preparation)다. 일반적인 '냉소주의' 대신 그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했을까? 이번 주 미셸 오바마의 Becoming '필사'의 기록은 흑인 가족에게 결코 녹록지 않았던 현실에서도 세상을 결코 '냉소주의'로 보지 않았던 미셸 오바마와 그 가족들의 따뜻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해 봤다.



Preparation mattered
우리에게 대비는 중요했다


당시 시카고에는 주택 화재가 빈번했다고 한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흑인 밀집지역에서 화재를 미리 알려주는 경보기 등 안전시설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셸과 특히 그의 오빠 크레이그는 어릴 때부터 재난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미셸의 5학년 같은 반 친구가 포함된 세 남매가 화재로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이후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두 아이는 화재훈련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이 어린 아이들에게 삶은 그런 것이었다.


Our family was not just punctual we arrived early to everything, knowing that it made my dad less vulunerable, sparing him from having to worry about finding a parking spot that didn't require him to walk a long way or an accessible seat in the bleachers at one of Craig's basketball.
우리 가족은 시간을 잘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일에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어려움을 덜 겪을 수 있었지 때문이다.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든 오빠의 농구 시합에서 적당한 좌석을 잡는 일이든, 조바심치며 걱정할 필요가 없게 했다.

화재의 위험성에 노출된 집과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현실에서 그 가족이 선택한 것은 철저한 준비와 연습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불편함을 배려한 세심한 준비와 노력에 어린 두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모습이다. 이런 배려와 철저한 준비가 두 아이의 성장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The lesson being that in life you control what you can.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조였다

타인의 마음, 말과 행동 등 그것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와 같은 것들도 장기적으로는 통제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매 순간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문제와 과제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자조적인 '냉소주의'는 어떻게 보면 조금은 쉬운 선택지다.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작은 것부터 찾아서 그것부터 행동에 옮기는 적극성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미셸 오바마와 그녀의 가족이 가진 '통제 가능한 것의 최대한의 통제'. 이 신조가 내게 삶을 대하는 아주 '능동적'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대처로 이해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What was harder to talk about was Dad's disability - the obious but unstated truth that he couldn't readily leap from a window like the rest of us, and it had been years since we'd seen him run.
우리가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문제는 아버지의 장애였다. 아버지가 우리처럼 창문에서 쉽게 점프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말로는 꺼내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달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벌써 몇 년 전이었다.

아버지의 장애에 대해 가족끼리라도 선뜻 말할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장애에 대해 공개적으로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가족 모두 아버지의 불편함을 배려한 많은 노력과 준비를 묵묵히 하고 있었단 사실이다. 입으로 표현하는 말이 주는 무게감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없이 지켜보고 행동으로 배려해 주는 모습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Oh, good Lord, " Dad would say, shaking his head. "You're really going to do this?"
맙소사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로 이걸 꼭 해야겠니?"

'가족화재대피 훈련'에서 아들 크레이그가 바닥에 누워 연기 때문에 기절한 사람처럼 연기하라고 부탁했을 때 보인 아버지의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이의 지시에 묵묵히 따랐을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보여 준 아버지의 불편한 다리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더욱 빛나는 장면이다.

My father was not accustomed to being helpless. He lived his life in fefiance of that very prospect, assiduously looking after our car, paying the bills on time, never discussing his advancing multiple sclerosis nor missing a day of work.
우리 아버지는 무력한 존재가 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차를 관리하고, 제때 고지서를 지불하고, 악화하는 다발성경화증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직장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미셸 오바마의 인생에서 아버지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구나 나름의 힘듦을 지니고 산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어려움들을 헤쳐나간다. 그녀의 아버지는 신체적 장애를 오히려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삼은듯 하다.


my father loved to be the rock for others. What he couldn't do physically, he substituted with emotional and intellectual guidance and support.
아버지는 반석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몸으로는 도울 수 없어도 감정적, 지적 조언과 지지를 건네는 일을 좋아했다.

미셸 오바마의 아버지. 그에게 찾아온 '후천적 장애',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라는 피부색이 가진 또 다른 '선천적 장애'. 그는 그렇게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삶의 '장애'물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방식을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아이의 엄마인 나. 지금 나의 삶은 아이에게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리고 5년 후 '나를 냉소적으로 만드는것' 에 대한 나의 답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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