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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Dec 21. 2019

공무원들이 축구장에 가는 진짜 이유

행정의 높다란 칸막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공무원들의 족쇄가 되었다

흔히들 말한다. 칸막이 행정. 정말 문제 많다고. 솔직히 진짜 문제 다. 그럼 피할 수는 있을까.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안고 가는 아파트 대출금처럼 '칸막이'는 공무원 조직에 늘 있는 문제이자 고질병이다. 시청, 구청, 동 주민센터. 일반적인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는 조직 구조. 올해 나는 공교롭게도 이 세 조직에 모두 근무하는 영광?을 누렸다. 짧은 기간 역동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행정 내 조직 간 상호작용을 골고루 맛볼 수 있어서 보람 있기도 했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특히, 시청의 '칸막이'가 만들어 내는 동 주민센터와 구청 부서의 이상한 풍경은 유난히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마, 후반전도 보고 가요."

"갈 때는 지하철 타고 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니까. 전반전만 보자."

"싫어요! 후반전까지 다 보고 가고 싶어요."(고집스럽게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 있다)


수년 전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함께 보러 간 어느 축구 경기에서 나눈 대화다. 경기를 끝까지 보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 나는 어쩔 수 없이 후반전 끝날 때까지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상대에게 몇 골을 더 먹는 걸 내 눈으로 다 확인하고 와야 했다. 사실 그 날은 우리 시 소속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다른 도시로 원정 응원을 간 것이다. 원래 타야 하는 구청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시의원님들이 가득 탄 의회 버스를 얼떨결에 타고 갔다. 버스 안에서 아이는 의원님들이 내미는 간식을 받아먹으며 연신 재잘거린다. 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다. 심지어 축구 경기에 심취? 해 인원체크가 이미 끝난 경기장을 서둘러 떠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주말 오후 축구장 응원이 아이에게는 즐거운 볼거리가 된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했을까.


사실 나의 공직 생활 절반의 기억이 구청과 동 주민센터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중 많은 시간을 나는 축구장, 야구장, 종합운동장 그리고 각종 행사장에서 보냈다. 봄, 가을 가끔은 겨울까지. 스포츠와 행사의 시즌. 나는 아이와 함께 경기장의 회색빛 스탠드 빈 공간을 채웠고, 행사장 무대 앞 또 다른 회색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수년 동안 평일 저녁과 주말 오후 나는 그렇게 시청 '칸막이'가 만든 다양한 '인원동원'의 주인공이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공간에 휩쓸려 돌아다녔다.


왜 뜬금없이 '시청 칸막이'가 튀어나왔을까. 다채로운 장소로의 (구, 동 직원과 주민들) 인원 동원 뒤에는 시청 부서들의 '나는 모르쇠' 공문이 있기때문이다. 아직도 본청의 많은 부서들이 자체로 기획을 했든 지시사항이든 행사를 기획하고 대규모 경기를 유치할 때 우선은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 참여대상 '500여 명', '1,000명' 등 보기에 규모도 크고 그럴듯한 계획(안)이 예산부서 등 사전 검토가 필요한 본청 부서들의 '협조와 검토' 결재라인을 무사통과하고 최종 결정권자의 '결재'를 받아낸다. 나조차도 시청에서 일할 때 비슷한 행사 계획서를 여러 번 만들었고 또 그럭저럭 치른 경험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계획서 자체가 가진 치명적인 '구멍'을.


행사나 경기장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행사와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 아닐까. 그런데 적지 않은 행사 계획서에 이들에 대한 내용이 단 몇 글자로만 표현된다. '동별 OO명', '구별 OO명'. 시청의 부서들이 칸막이로 공간이 구분되듯이, 각 부서가 만들어 내는 공문들도 그 '칸막이'를 넘지 못한다. 아니 사실 침범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제 시청의 다른 부서에서 구와 동에 수백 명이 넘는 주민들을 초청? 한 사실이 오늘 또 다른 시청 부서의 비슷한 인원의 초청이 필요한 행사 개최에 영향을 줄까 안 줄까. 사실 전혀 영향이 없다. 그냥 한다. 주민 동원능력의 문제는 원래 하부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쉽게 치부된다. 시청 부서간 '수평의 칸막이'와는 또다른 상하 조직간 '수직의 칸막이' 모습 아닐까. 원래부터 그래 온 듯한 이상한 공직의 인원동원 문화는 이렇게 여전히 단단하고 건재하다.  


'각 동별 50명 참여' 협조 공문이 시청 A과에서 각 구청과 동 주민센터로 발송된다. '구별 취합 후 O월 OO일까지 명단 제출'이라고 공문 본문에 명문화되어 딱 박혀 있다. 이제 행사를 주관하는 시청 담당자에서 구청 담당자로 공이 넘어온 것이다. 구 담당자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동에다 별도의 공문을 만들어 발송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부 메일 망을 활용해 동 주민센터 담당자들에게 일제히 명단 서식을 붙여 뿌린다. 이제 마지막으로 동 주민센터 공무원에게 넘어 간 인원동원이라는 공. 그들은 일제히 단체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애걸복걸이든 반강제든 어떻게든 공문에 명시한 인원수는 채워서 명단을 보내야 하기에. 취합 마감시간. 전화 돌리기는 다시 구청, 시청 역순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행사장에 몇 명이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낯선 참가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한 최종 명단을 받아 든 시청 담당자. 그는 마지막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구청으로 날아든 새로운 공문 한 장. 시청 B과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동별 10명, 구별 취합 OO까지'. 그나마 인원이 적어서 다행인 걸까. 새로운 공문은 구청과 동 주민센터 공무원들의 또 다른 한숨을 만들어 낸다. 내가 더 안타까운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놈의 시청 칸막이는 여전히 높고 오히려 더 '두터워'졌다는 것이다. "공문 보냈으니, 그냥 채우세요!" 공문이라는 족쇄에 갇힌 공무원들. 내가 왜 수많은 행사장과 경기장에 아이의 손을 이끌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조직 바깥의 누군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 근무했던 동 주민센터. 나의 옆자리 직원이 주로 했던 일이 바로 행사장 인원동원이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거의 붙들고 살았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열리는 시청 주관 행사장에 거의 멤버가 바뀌지 않는 단체원과 주민들을 이끌고 동 주민센터 현관 문턱이 닳도록 바쁘게 들락날락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한번 단체원 몇 명을 행사장에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구청에서 근무하게 된 나는 이제 그를 쪼아대는? 상급기관 공무원이 되어 있다. 기한 내 명단이 안 오면 그에게 전화로 메신저로 독촉도 하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도 낸다. 나라고 이런 내 모습이 왜 씁쓸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나중에라도 시청에서 내가 직접 기획하는 행사가 있다면. 무엇보다 구청과 동 주민센터로 발송하는 공문없이 부서에서 참가자를 직접 모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보려 한다. 될지 안될지는 그때가서 또 고민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은 단순한 '다짐'에 불과한 이 생각. 미래의 한순간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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