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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05. 2020

공무원들 사적인 모임 도대체 왜 만들까

7년을 몸 담은 모임을 그저께 탈퇴했다!

"개인적인 일로 OOO회는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종종 얼굴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댓글이 없다)

"혹시 결산 관련 궁금하시면 따로 연락 주세요."

(여전히 댓글이 없다)

(OOO님이 나갔습니다)


그렇다. 내가 공직에 들어와 장장 7년을 함께 어느 사모임의 탈퇴 인사다. 그저께 2019년도 결산자료 공지를 마지막으로 그 모임과도 나는 '안녕'을 고했다. 7년이나 동고동락한 모임 치고는 끝이 너무 조용했다. 한편으론 시원하고 또 한편으론 씁쓸했다. 꼭 이래야만 하는 걸까. 이럴 거면. 공무원들 사조직 도대체 왜 만들까 싶은? 뭐 그런 순간이랄까.




이곳저곳 다양한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적인 모임들이 만들어진다. 이 모임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꽤 오래된 인연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정리한 것도 바로 이 모임이 되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한때나마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모임을 챙겼던 나인데. 지금은 세상 부담스러운 자리가 되었다. 지난 연말 모임. 참석 여부를 묻는 톡방 공지에도 나는 아무런 댓글을 달지 않았다. 사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식으로든 해석되는 것. 그것조차도 싫을 때가 있는가. 바로 그런 거였다. 그때 난 결심했다. 이 모임을 더 이상 나갈 수 없음을. 그러면서 떠올렸다. 내가 처음에 왜 이 모임에 들어왔을까. 내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이 모임이 변한 것일까.


마침 개인 톡으로 누군가 내게 물어온다. 무슨 일 있냐고. 아무 일도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변한 거라고. 부담스러운 모임이 된 것 같고 더는 함께 하는 게 의미 없는 일 같다고. 그제야 "그래, 편하게 살자."며 내 말 뜻을 이해한 듯 답변이 왔다. 그랬다. 변한 건 내가 맞다. 항상 그래 왔던 공무원 사조직.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는 것일까. 누군가는 말하겠지. '이제 좀 컸다고 저러고 나가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 마음 깊은 곳 또 다른 나는.


수년 전 대규모 행사 추진을 위해 임시로 꾸려진 조직에서 함께 하면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국장, 과장, 팀장, 7급 주무관 등 20여 명의 대규모 사조직. 서로 밀어주고 댕겨주며 한때 정말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모임의 중심이 된 국장과 과장이 퇴직을 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사실 공무원들의 사적인 조직은 정말 마음이 잘 맞아서? 그런 모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승진과 보직에 대한 챙김과 네트워크 관리가 중심이다.


단톡 방 분위기가 그걸 말해 준다. 소소한 일상의 나눔? 거의 없다. 모임 공지와 참석여부에 대한 댓글. 승진인사 후 축하의 댓글과 감사의 댓글. 필요에 의해 모였고.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한 공지와 필요한 댓글만이 단톡 방을 둥둥 떠다닌다. 실제 모임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의례적인 인사와 썰렁해지는 분위기를 애써 끌어올리는 '건배사'와 대부분은 의미 없는 '술잔'들의 부딪힘. 사실 지겹다. '뭣하러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면서까지 런 걸 '' 해야 할까.' 내가 변한 게 맞다!


반면, 나의 공직 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공무원들과의 작은 모임이 하나 있다. 10년이 넘은 인연. 멤버는 달랑 6명이다. 당시 팀장님과 언니들, 친구 그리고 동생까지. 작년 연말 모임. 나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모임 장소를 찾아보고 단톡에 올려 멤버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나름 분주하게 만남을 준비했다. 모임 당일 4명이 모였다. 밤늦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일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를 보듬어 주었고. 또 치유받았다. 헤어짐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랬다. 지겹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본 사람들인데 정이 많이 들었다. 편했다. 나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때론 심각했고. 때론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이라면.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낸다. 설렘을 담은 발걸음으로. 나는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공무원들의 사적인 모임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 맞는 걸까. 각자 나름의 우선순위에 따라. 무척 다양한 모습일 테지. 나는 분명 변한 게 맞는 듯하다. 불과 몇 년 전 경쾌한? 때론 경박한 웃음으로 이런저런 모임을 찾아다니던. 그 공무원은 어딜 갔을까. 무엇이 나를 변하게 만든 걸까. 그 답을 당장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원하는 방향은 맞는 듯하다.



띠링띠링.

"팀장님! 오랜만이에요."

"그려. 무슨 일 있어? 뜬금없이 무슨 선언을 하고 그랴. 어디 가?"

"아니에요. 그냥 이래저래 모임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어디 먼데 가는 건 아니지? 아예 얼굴 안 보고 살 거야?"

(웃음)"아니거든요. 팀장님 나중에 따로 얼굴 한번 봐요."

(안도의 웃음)"그래. 따로 얼굴 한번 보자고."


탈퇴 인사를 하고 몇 분 뒤 걸려 온 전화였다. 걱정 반 궁금반으로 직접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던 어느 팀장님의 전화 한 통. 조금은 씁쓸했던 그 순간. 내 마음을 툭툭 다독여 준 무엇이었다. 한때 모임에서 친했던 분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몇 초의 통화도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내가 인연의 끈을 너무 쉽게 놔버린 걸까. 아직도 혼란스러운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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