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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19. 2020

어느 공무원의 인사발령

6개월 동안 정들었던 구청 부서를 떠나다!

"카톡!"

오랜만에 즐긴 평일 오전의 휴식. 지난 주말 당직 근무 후 주어진 달콤한 대체휴무의 날. 나는 단골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이것저것 끄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 즈음 시청 후배 공무원이 톡을 보냈다. 무슨 일이지?


"영전 축하드려요."

* 영전 : 동에서 구청으로. 구청에서 시청으로. 즉, 상급기관으로 부서이동을 축하하는 말

(후배는 내 이름이 들어간 인사발령문 페이지를 캡처해서 이미지를 보내왔다)

"OO국으로 가시네요~!"

"OO국이네"

(속으로 잠시 어리둥절했다.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고마워. 이제 자주 봐"

"네! 오시면 자주 봐요~"


공무원의 인사발령. 1월은 정기인사가 있는 달이다. 다시 본청으로 올라갈 시기가 온 나에게 '이번엔 어디든 가겠군'.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휴일 오전에 인사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대부분 전보(부서 간 이동)나 승진 인사는 퇴근 시간 즈음에 하는 경우가 많다. 보직(부서에서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마음에 드는 직원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도 있기에.


무엇보다 승진에서 떨어진 직원들이 자리에 앉아서 느낄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 그에 대한 나름 배려가 들어간 것이리라. 승진자와 떨어진 직원. 시청의 좋다고 느껴지는 자리에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직원. 짹각짹각 인사발령의 시간. 같은 부서 30~40평 좁은 공간에 그렇게 극과 극의 감정을 가진 공무원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인사와 관계없는 동료들은 어떨까. 대부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 축하의 말도 위로의 말도. 그 어떤 것도 애매한. 바로 그런 순간이 있다. 뭐 그중 누군가는 큰소리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지만. 그래도 수년간 공직을 경험한 고참 직원들은 기다린다. 각자의 격한 감정이 조금 사그라질 때까지. 나는 그걸 '배려'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인사발령 직후. 같은 부서 물리적 공간의 모습은 이렇다. 적어도 지금까지 공직에서 내가 느낀 '보통의' 부서들은.


그럼 온라인 공간은 어떨까. 같은 띠의 동기들 십여 명이 모인 톡방이 있다. 이번 인사로 누군가는 승진을 했고 또 누군가는 떨어졌다. 승진 인사발령 직후 그 공간 안에서. 차마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승진했으니 축하해 줘야지.' 그렇게 축하의 말과 신나는 이모티콘 하나를 더 넣어서 단톡방에 바로 '툭'하고 날렸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승진한 동기보다 나름의 사정으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말 없는' 동기들에게 마음이 더 갔다. 그리고 승진한 동기에게는 따로 톡을 보내서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줬다. 그럼 띠동갑 톡방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오프라인 공간보다는 조금은 더 즉흥적인 감정이 흐르는 곳이 바로 온라인 그 공간 아닐까. 그랬다.


카페에 앉아서 내가 어떤 업무를 맡을지 그리고 같은 부서 동료들이 어디로 발령 났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았다. 조금 지나자 우리 팀 톡방에도 인사발령 파일이 올라왔다. 나를 포함 2명이 본청으로 옮기게 되었다. 나의 이동은 예상했지만 다른 팀원의 발령은 팀장도 나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아쉬움과 축하의 메시지들이 톡방을 가득 채운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한 나에게 팀장은 두 명이나 보내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고 하신다. 내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뱉은 말이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묻어났다. 인사발령 다음날 우리 팀과 바로 옆의 팀은 함께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벙개 회식'을 했다. 그동안 직원들과 못다 한 이런저런 얘기들. 팀장님들께 하고 싶었던 말 등등. 구청에서 6개월을 근무하면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옆 팀 동료들과 술잔을 '꽝꽝' 부딪히며 같은 부서 동료임을 느낀 것 같다. 공무원의 인사발령은 그렇게 잊고 있던 '동료애'까지 발령 낸 걸까.


어제와 오늘 주말 내내 나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어제는 내 자리로 오는 직원에게 업무를 알려주기 위해. 오늘은 그동안 내가 만들어 낸 서류들을 노란색 파일철로 분류해서 캐비닛에 정리하는 일과 책상의 개인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마침 팀장님이 당직실에서 하루 종일 일직을 서는 날이란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 구청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근처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일직 근무자 4명이 먹을 수 있는 음료와 쿠키를 샀다.  물론 팀장의 단골 메뉴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포함했다.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뭐랄까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정이랄까. 그렇게 간식을 들고 찾아 간 당직실. 2명의 여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다. 팀장 민원 때문에 마침 현장에 나가고 없다. 사정을 설명하고 간식이 든 봉투를 불쑥 내민 나에게 직원들은 당황하면서도 금새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나는 사무실로 올라 와 한참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얼마 후 팀장님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2층 사무실로 들어오신다. 손에는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인 팀원이 '왠지 모를 뿌듯함'담아 사드린 '따아' 한잔이 자랑스럽게 들려있다. 모르겠다. 오늘따라 나는 그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OO씨 가면 나는 뭐하고 지내지?"(목소리에 힘이 없다)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웃음을 담아보려 하지만...)

"아니에요, 팀장님. 그냥 담담해요."(급하게 얼버무린다)


며칠 전 인사발령은 나에게 그리고 팀장에게 복잡미묘감정들까지 소환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뭐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교통사고처럼 만들어지는 인연들과. 지금 '이별'이란걸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진짜' 이별이 될지 또다른 인연의 시작이 될진 또 두고봐야겠지만. 이번 이별은 유난히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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