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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Dec 02. 2019

'왜 질문을 안 하지' 공무원 회의실 풍경

사실 아무도 담당 공무원의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공무원의 회의 문화? 솔직히 문화라고 부를만한 게 있기라도 한 걸까. 지금까지 수백 번의 회의를 준비하고 또 참여했건만, 나는 왜 '공무원들의 회의(meeting)'라는 지점에서 여전히 멈칫하는 걸까. 그 어떤 공간보다 많은 시간을 회의실에서 보냈건만. 공무원의 '애매한' 미팅 문화. 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주 사적인 '내 맘대로' 들여다보는 공무원 조직의 회의실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 각 OO에서 오셨는데. 의견 있으시면 한번 말씀해 보시죠?"

"안녕하세요! 오늘 팀장님이 출장 중이시라 대신 온 OOO 주무관입니다."

(옆에 앉은 다른 팀장이 나를 한번 쳐다본다)

 (살짝 머뭇거리다가)"오늘 회의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을 계기로 OO의 역할을 다시금 재검토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팀장이 나를 다시 쳐다본다. 그만하라는 신호인가?)

"암튼,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 기관이 주관한 회의에 팀장을 대신해 내가 참여한 회의실 풍경이다. 사실 더 할말이 있었지만 못했다. 옆에 앉은 다른 팀장의 계속되는 눈길에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것이 그만하라는 신호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수많은 회의를 준비하고 경험했던 나의 '여섯번째 감각' 그만하조용히 있으라고  신호를 준. 나는 또 굴복했다.


사실 공무원 조직 회의에서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소중하게 취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팀장, 과장, 국장이 함께하는 회의에서는 더욱 보기 드문 풍경이다. 옆에 앉은 팀장에게 그리고 과장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그 위의 상사인 국장 앞에서 실무자가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얘기한다? 너무 나댄다고 찍히기 딱 좋다. 뭐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여전히 강력한 수직적 조직문화는 공무원들의 회의실, 그 공간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누군가 질문을 한다. 과장이 먼저 의견을 얘기한다. 팀장이 동조하는 의견을 붙인다. 그럼 실무자는? 업무수첩에 그 내용을 똑같이 받아 적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고. 정확히 따라 적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팀장에게 내용이 맞는지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으로 안심을 시키는 눈치 빠른 실무자도 있다.


아주 드물게 이런 경우가 있다. 눈치 없는 실무자가 상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의견을 대뜸 얘기하는 경우. 실무자가 나름의 의견을 시작하면, 팀장이 그를 쳐다본다. 뭐 그냥 말을 하니까 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한테 얘기를 먼저 해야지. 먼저 하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런 눈빛이다. 사실 내가 8~9급 때 자주 겪은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나 업무를 절대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는 공무원들의 불문율이 있다. 각종 민원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뱉은 말이 족쇄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검증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입 밖으로 내놓는걸 극도로 싫어한다. 행정의 신뢰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때론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이나 의사결정을 만들어 내야 하는 회의장에서. '왜 질문을 안 하지.' 꾹 다문 공무원들의 입은 양방향 꽉 막힌 교통정체마냥 내겐 답답한 그 무엇이었다.

"OOO 주무관, 그거 할 수 있어? 확인하고 얘기한 거야?"
"나중에 안되면 국장님한테 어떻게 보고할 거야?"
"예산은 있어? 예산부서에 직접 가서 설명할 거야? 돈 줄 것 같아?"
"계획만 세워놓고 발령 나는 거 아냐?"
"싸질러 놓고 가면 다음 담당자는 뭐가 돼?"
"다른 거 할 것도 많은데 굳이 이거 해야 해? 하고 있는 거나 잘하지, 왜 일을 만들어?"


회의에서 미리 보고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고, 확인받지 않은 새로운 사업이나 아이디어를 내뱉은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심지어, '쟤, 너무 나댄다', '지가 뭔데 상사들 건너뛰고 그런 걸 맘대로 얘길 해...' 등등. 조직에서 실무자들이 위로 층층 겹겹 상사분들을 모셔놓고 하는 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슬프지만 그렇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문화가 있을까. 바깥 세상은 하루하루 정신없이 변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의 회의장 풍경은 10년 전 그때와 변함이 없다. 그래서 회의실은 나란 공무원에게 여전히 힘 빠지는 공간이다. 실무자들의 신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회의장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미리 보고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았고, 확인받지 않은' 새로운 사업이나 아이디어는 일단 공무원 조직에서는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회의라고 하는 게 어떤 모습일까. 이미 보고되고, 검증되고, 확인받은 것들을 확인하는 자리다. 미리 보고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고, 확인받지 않은 의견은 회의를 주재하는 가장 높은 의 몫으로 남겨진다. 실무자의 역할은 그걸 잘 받아 적어 회의 결과보고서에 잘 정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 업무들이 공정성, 특혜시비가 관련되어 있다. 잘못된 의사결정은 실무자부터 그 사업을 결정하는 결재라인에 있는 공무원들 모두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회의문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결국 공무원들의 회의는 보다 안전한 의사결정을 위한 확인 과정에 불과하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또 다른 리스크를 담고 있기에 선뜻 그 자리에서 좋다 나쁘다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공무원들의 회의실 풍경 그렇다. 조직도의 직제 순서대로 부서장들이 각잡고 앉아 의견을 발표한다. 부하직원들은 뒤에서 일제히 그걸 따라 적고 있다. 어느 부서를 가든 회의실, 공간의 모습은 늘 비슷하게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그러니 질문을 하는 사람은 누가 될까. 늘 상사의 몫이다. 부하직원이 질문을 하는 경우는 딱 하나. 상사가 말한 내용을 다시 확인할 때다. 그런 회의들이 반복되다 보니, 갓 들어온 신규공직자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널찍한 회의장 작게나마 비집고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없다. 긴장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서, 듣고, 메모하고, 정리해서, 보고하고, 확인받으면 된다. 실무자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회의란 무엇인가.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가장 좋은 의견을 찾으려고 모이는 자리 아닌가. 어찌보면 담당 실무자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모든 회의자료를 준비한다. 준비 과정에서 그들만큼 회의 자체, 아니 회의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지만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 담당자는 회의장 뒤편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긴다. 국민의례를 위해 누군가는 애국가를 틀어야 하고, 팀장이나 과장이 발표를 하면 스크린을 조작하고 노트북 다음 페이지 '엔터키'도 눌러야 한다. 회의실에서 담당 공무원은 그렇게 한쪽 구석에서  과제들을 가지고 나름   애쓴다.


과연 어떤 것이 가장 효율적인 회의일까.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담당 실무자의 의견을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 회의실'들락날락' 해야만 할까. 미래 어느 순간. 내가 부서장이 되어 회의를 주관할 때. 과연 나는 실무자들의 의견을 궁금해 하기는 할까. 나 또한 회의장 탁자 위가 아닌  뒤편 오디오와 컴퓨터를 조작하는 '기술자'로 그들을 인지하지 않을까.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담당자는 현수막을 걷어내고 명패를 치우고 아무렇게나 탁자에 던져놓고 간 서류들을 챙긴다. 그들은 또 그렇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맡은 일을 한다. 허가를 내고, 정책의 세부내용을 짜고, 민원응대 전화를 받는다. 그들이 바로 담당 공무원들이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탁자가 놓인 회의실. 그 공간에서 그들이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풍경.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주무관님, 혹시 지금 회의장 확인 좀 해 주시겠어요?"

"지금? 그럼 가봐야지. 우리 막내 주무관님이 어떻게 준비하셨나 궁금하네요."

(곧 회의가 열리는 2층 회의실로 들어선다)

"와우! 완벽하네요. 메인석 물 잔만 갖다 놓으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놓친 게 있는지 주무관님 최종 확인이 필요했어요."(웃음)

"배운 대로 너무 잘 준비했네요."(나도 웃음)


그날 팀의 막내 주무관은 회의장 첫 번째 세팅을 완벽하게 해냈다. 스스로 뿌듯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나는 회의장에서 실무자가 어떻게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지 그에게 한 번도 말해 준 적 없다. 그럴 필요도 또 이유도 없었기에. 조금은 답답하고 씁쓸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반짝이며 회의 준비에 한창인 후배 공무원의 열정이 나를 다시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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