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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13. 2019

시청 9급공무원, 그녀는 왜 왕따가 되었나

이제 나는 그 반대편에서 '또다른 나'를 본다

"OOO 주무관 말이야. 왜 인사를 안 해?"

"그러게 나한테도 그러던데..."

"처음엔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직원들한테도 그러더라고요."


얼마전 같은 부서 직원들과 합석한 자리에서 부서의 어느 직원에 대해 나눈 대화? 아니 '뒷담화'다. 사실 나도 '그 직원'을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속 시원한 반응이 없어서 혼자 민망했던 적이 있었다. 나를 피하는 건지 부담스러운 건지 사실 좀 애매했다. 동시에 궁금했다. '왜 그럴까' 그런데 부서의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녀의 그런 모습은 조금은 남다르게 보인 듯했다.


한참을 그 직원을 성토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따돌림의 기억. 왜 하필 그 순간에. 기억 상자 속 맨 아래 꾹꾹 눌러 놨던 그 시간이 떠올랐을까. 그때의 내 모습과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하지도' 않는다는 그 직원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 왜 그랬을까. 내가 경험한 공직에서 따돌림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서러움이 덮어버린 어느 회식의 기억

그날은 시청 인근 식당에서 부서 회식을 하는 날.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나는 조용히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마침 열려있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7년 전 12월의 밤. 차가운 겨울 공기가 훅 들어온다. 번화가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눈 앞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제서야 나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화려하기만 했던 색색깔의 불빛들이 순간 뿌옇게 보였다. 그토록 바라던 본청 근무에 대한 환상도 그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주류가 비주류 속으로...

공직에 들어와서 동 주민센터에서만 근무했던 나. 시의 정책을 만들고 대규모 행사를 주관하는 본청 부서의 근무. 당시 내게 그건 두려우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더군다나 부서장과 동료들이 일반행정직이 아닌 다른 직렬이었기에 더욱 대하기가 어려웠다. 공무원 조직에서 행정직은 (지자체마다 다소 편차가 있겠지만) 주류 그룹이다. 무엇보다 인원수가 절대적으로 많다. 거기에 인사권과 예산편성 등 핵심업무를 맡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타 직렬(토목, 건설, 건축, 환경, 전산 등등)은 그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적은 인원이라도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주류인 행정직들의 힘에 맞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조직 권력의 속성 아닐까. 그렇게 소수직렬이 주류인 부서에서 나는 처음으로 본청 근무를 시작했다. 주류가 비주류 속으로 불쑥 들어간 것이다.


높기만 했던 직렬의 벽에서 날아온 매몰찬 메아리들

사실 난 타고난 능력자는 아니다. 노력파에 더 가깝다.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 매번 절대적인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사람이랄까. 단순한 기안문 하나 올리는 것부터.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동에서의 민원업무와 시스템이 전혀 다른 민간기업에서의 경험. 그건 그냥 의미없는 두 줄짜리 텍스트에 불과했다. 작은 것 하나 물어보기가 어려운 분위기를 아는가. 그들에게는 이미 익숙해져서 당연한 업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직원에게는 세상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물어보다 "그런 건 규정부터 찾아봐" "그런 것도 안 하고 거저 얻으려고 해?""행정직이 그런것도 몰라?" 사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서러웠다. 조금은 더 살갑게 말해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식의 핀잔과 구박들이 다양한 버전의 메아리처럼. 직렬이라는 높다란 벽을 한번 더 치고. 가속도가  붙어서 나에게 되돌아왔다. 


어리숙한 나는 그렇게 왕따가 되었다

업무를 의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런 걸 살펴볼 여유도 눈치도 당시 내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의 태도와 말투, 옷차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한다는 느낌까지. 내 편이 한 명도 없다는 절박함은 일상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업무에서도 동료들과의 태도에서도. 따돌림이었다. '왕따'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차가운 겨울날 동료들이 즐겁게 회식하는 그 순간. 건물 옥상에서 터트린 나의 눈물은 사실 당시 부서장의 역할이 컸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부서 직원이 있었다. 물론 부서장과 같은 직렬이었고 평소 아끼는 부하였다. 그날 회식자리에서 보란 듯이 그 직원에게만 아이 갖다 주라며 챙겨주는 부서장. 그걸 보며 '아무렇지 않은척'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내 모습. 그 순간 내 마음속은 그동안 쌓인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어리숙한 데다 찌질한 모습까지 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슴 시린 서러움을 피해 또 다른 한겨울 시린 공기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따돌림' 그 기억보다 더 아쉬운건...

직렬이 주류인 부서에서 어리숙한 데다 눈치도 특별한 능력도 없었던 7년 전 내 모습. 그들에게 내가 왕따가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아니었을까. 애매한 태도와 말투.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주었던 상처. 그들도 모르게 나에게 주었던 상처. 그렇게 함께 한 2년의 시간. 지금은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업무적인 용건 외에는. 직렬 간의 벽이 아닌 나의 어리숙함과 무지에서 온 애매한 태도. 뭐 그런 개인적인 것들이 당시 따돌림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그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면. 내 마음속 이야기에 한 번이라도 귀기울여 주었더라면. 나는 그 긴 시간을 '따돌림'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을텐데. 지금 돌이켜보니. 딱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이 바로 아쉬움이다.


'왕따였던 나'  반대편에서 바라보다

내가 직원들과 함께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던  '그 직원'.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7년 전 '왕따였던 나'를 떠올렸다. 행정직이 대부분인 부서에 소수직렬인 그녀는 나보다 한참 후배다. 주류 속 비주류. 그리고 뭔가 애매해 보이는 태도와 말투들. 다른듯 묘하게 닮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우린 너무 쉽게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닐까.(공무원 조직에서 직원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평가는 나름 의미를 가진다. 특히, 직속 상사나 같은 부서 직원들의 평가는 더 그렇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 내면은 전혀 다른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직원들과의 대화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같은 부서 직원인데...' '그녀를 좀 더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연신 스치고 지나간다. 따돌림의 기억 속 내가 가졌던 '그 아쉬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게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며칠 후.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 직원'과 휴일 당직실 근무를 같이 하게 된다. 직원 3명이 2~3평 남짓 좁은 사무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수시로 울리는 민원 전화를 받아 접수하고 필요하면 현장에 함께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하루 종일 지켜봤다. 오후 6시가 되어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시간. 같은 건물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한번 더 눈에 들어왔다. 잠깐 스치듯이 인사를 하며 그녀에게 가졌던 첫 느낌과 그날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직원으로 기억될까.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하지만 당직실 근무 후 그녀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긴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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