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other was a realist

미셸 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9, 어머니는 현실주의자였다

by 영지
She was a straight-down-the-line realist,
어머니는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였다.
just controlling what she could.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면서 살뿐이었다.


미셸 오바마 Becoming. 그 아홉 번째 필사의 기록을 시작한다. 오늘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고 어머니를 기억하는 미셸의 이야기는 과연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사실 나는 현실주의자라는 단어보다 그 뒤의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면서 살뿐'이라는 말. 요즘 코로나 쇼크로 조금은 버거운 일상을 아이와 함께 경험하고 있는 내게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My mother maintained the sort of parental mind-set that I now recognize as brilliant and nearly impossible to emulate a kind of unflappable Zen neutrality.

어머니가 부모로서 지킨 마음가짐은 아주 훌륭하고 나로서는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는 선불교적 중용에 가까웠다.

'평정심'은 늘 그렇게 인생의 화두가 된다

'unflappability' 동요하지 않음, 평정, 냉정함. 지금 나이를 충분히? 먹은 내게도 '평정심'은 가장 어려운 태도중 하나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어린 미셸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늘 한결같은 태도와 감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사실 내 기억 속 엄마의 모습도 비슷하다. 격하게 울고 있는 모습도, 들떠서 웃고 있는 모습도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때로는 격한 감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단지,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엄마가 가장 슬퍼했던 때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어느 봄날. 등교시간이 30분 이상 걸리는 꽤 먼 곳에 학교를 다니던 언니와 나. 그날 학교를 가지 않은 걸 엄마에게 들켰다. 엄마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딸에게 매를 들었고 우리는 정신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날 일을 그 후로도 꽤 자주 떠올렸다. 물론, 그 이후 나는 절대로 학교를 엄마 허락 없이 빼먹지 않았다. 가끔씩은 격한 감정이 필요한 때도 있는 걸까.

I had friends whose mothers rode their highs and lows as if they were their own, and I knew plenty of other kids whose parents were to overwhelmed by their own challenges to be much of a presence at all.

친구들의 어머니 중에는 아이의 감정 기복을 자기감정처럼 고스란히 받아 안는 분도 있었고, 자기 문제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여 아이의 삶에는 존재감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분도 있었다.


아이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감정 기복을 자기감정처럼 고스란히 받아 안는'. 아이가 가지는 감정에 공감은 하되 같이 휘말리지 않는 것. 사실 나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일상에서 아이와 양치질하는 일, 숙제하는 일, 게임하는 것 등등. 크고 작은 일로 쉽게 화를 내는 내 모습. 매번 '평정심'을 되뇌며 다짐을 하고 또 해보지만, 막상 그 상황에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는 건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아이가 사춘기를 향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질 텐데. 앞으로 계속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controlling what she could' 그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미셸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하나씩 작은 것부터 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통제 가능한 것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가끔씩 이렇게 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란 인간을 바라보는 연습. 반성 그리고 변화를 위한 노력 정도? 지금은 적어도 내가 아이의 삶에서 존재감이 없는 엄마는 아닐 거라고 소심하게 나를 위로해 본다.


My mom was simply even-keeled.
어머니는 그저 한결같았다.
She wasn't quick to judge and she wasn't quick to meddle.
쉽게 판단하지 않았고, 쉽게 참견하지 않았다.
Instead, she monitored our moods and bore benevolent witness to whatever travails or triumphs a day might bring.

대신 우리 기분을 면밀히 살폈고, 무엇이 되었던 그날 우리가 겪은 시련이나 성공을 자애롭게 지켜보는 증인이 되어주었다.


무조건 아이 편이 되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witness' 증인. 아이가 바깥세상과 매일매일 교감하면서 얻는 수많은 감정, 성공 그리고 실패. 이것에 대해 엄마는 늘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맞는 것일까. 때론 세상의 냉정함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나도 처음 육아를 시작했을 때 세상의 민낯을 어디까지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일 맞는 것일까 고민했었다. 지금 내가 찾은 답은 하나씩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그때그때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속도의 조절이 아닐까 한다.


When things were bad, she gave us only a small amount of pity, when we'd done something great, we received just enough praise to know she was happy with us, but never so much that it became the reason we did what we did.

상황이 나쁠 때라도 동정은 아주 약간만 표시했다. 우리가 뭔가 잘 해내면 딱 적당한 정도로 칭찬하여 자신도 기쁘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그 이상 지나치게 칭찬하여 우리가 어머니의 칭찬을 바라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엄마'라는 자리의 권력화

'100점 맞으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점수가 낮으면 엄마가 화를 내니까. 엄마가 이걸 하면 좋아하니까 난 이걸 해야 돼.' 이런 마음들이 바로 엄마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아이의 걱정 또는 감정 아닐까. 아이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기대감 때문에 무언가를 하게 되는 것. 적당히 칭찬하고 또 적당히 위로하는 것. 그 균형이 참으로 어렵긴 하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그래서 어렵다.


Advice, when she offered it, tended to be of the hard-boiled and pragmatic variety. "You don't have to like your teacher." She told me one day after I came home spewing compliants. "But that woman's got the kind of math in her head that you need in yours. Focus on that and ignore the rest.

드물게 조언할 때는 냉정하고 실용적인 조언을 주는 편이었다. "선생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단다." 어느 날 내가 씩씩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자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머릿속에는 네가 배워야 할 수학 지식이 담겨 있어. 그 점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렴."


'선생님은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어!' 그럴까?

선생님이란 자리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과 존중에 대해서. 그것이 학생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자리가 맞긴 하다. 하지만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닐까. 아이들에게도 사람이든 사물이든 나름의 호불호가 있고 그것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미셸 어머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선생님이 이유 없이 싫었다. 그래서 일본어 시간에는 일부러 영어책을 펴놓고 공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적은 최하를 받았고, 결국 내신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의 냉정하고 실용적인 조언이 필요한 이유 아닐까. 미셸에게는 다행히 그걸 세심하게 들어주고 유심히 관찰해 주는 '엄마'가 있었다.


She loved us consistently, Craig and me, but we were not overmanaged. Her goal was to push us out into the world. "I'm not raising babies," she'd tell us. "I'm raising adults"

어머니는 한결같이 오빠와 나를 사랑했지만, 우리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목표는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늘 "난 아기가 아니라 어른을 키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목표는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어른으로 잘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도 완전한 어른이 아닌데 미숙한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내가 통제 가능한 것을 통제할 뿐'이라는 말처럼 일상에서 아이와 겪게 되는 사소한 문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결과가 보이지 않을까. 사실 여기에 써놓기도 민망한 표현이지만, 지금은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목표 하나만 생각하자. '내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나 세상에서 홀로 서게 될 어른 한 명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She listened, but she didn't abslove him from the choice at hand. Instead, she returned him to his agony with a blithe shrug of her shoulders. "Handle it how you think best."

어머니는 차분히 들어주었지만, 오빠가 내려야 할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빠를 고민의 구렁텅이로 돌려보냈다.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렴."

아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

'Handle it how you think best'. 아이 티셔츠 하나를 골라도,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도. 심지어 반려묘 배변 모레를 사는 문제까지. 나는 가능하면 아이에게 결정하도록 한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은 모두 아이에게 결정하도록 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미셸 오바마의 어머니는 그 이유를 너무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이의 인생은 결국 아이의 것이다. 엄마가 언제까지 아이를 대신해서 결정해 줄 수 있을까.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받아들이며, 나름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조금씩 선명하게 다듬을 가고 있을 아이에게 엄마라는 자리는 결국 조력자로 남는 것이 맞지 않을까. 미셸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그 누구보다 독립적이며 존경받는 여성 리더로 평가받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Our decisons were on us. It was our life, not hers, and always would be. 오빠와 내 인생은 각자의 것이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늘 그럴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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